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해당화

- 한용운作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찍 왔나 두려워합니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못 들은 체 하였더니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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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름없이 꽃을 주워서 입술에 대고 “너는 언제 피었니” 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그래요. 해당화 피기 전에 당신께 간다고 말하였으나 사람의 일은 계절과 다르더군요. 지난겨울, 봄은 까마득히 멀어 나는 내 할 일을 다 마칠 줄 알았지요. 아무려면 발 없는 봄보다 발 있는 내가 먼저 당신께 당도할 줄 철석같이 믿었지요. 나는 젊고 패기 넘쳐 세상 모든 외진 곳에 주리고, 눌리고, 넘어진 사람들 일으켜 주고도 해당화 피기 사흘 전에 너끈히 도착할 줄 알았지요. 야속한 봄바람이 내 등을 타 넘을 때 당신 생각 떠올랐지만 나는 가까운 눈물부터 훔쳐 주어야 늦게 만나도 당당하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의 일은 봄과 달라서 꽃이 피어도 아프지만, 사람의 일이 봄과 달라서 아픔도 꽃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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