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파이낸셜 포커스] 14위 은행 수장 한 명 못 정하는 한국…우리 금융 현실, 정말 이정도 인가

● 수협은행 사상 초유 권한대행 사태

정부측 vs 중앙회측 접점 못 찾아

행추위 재공모서도 후보 못 정해

후임 없이 이 행장 오늘 임기 만료

"내부갈등 장기화땐 사고 우려 커"



자산 28조원, 국내 은행 서열 14위의 수협은행이 석 달 가까이 은행장을 뽑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우리 금융 수준이 겨우 이 정도냐’라는 자조가 나오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수협은행 행장추천위원회는 전날에 이어 이날 회의에서도 3명의 최종 후보군 중 행장을 추천하지 못했다. 행추위는 지난달 1차 공모 후 의견합치에 실패하면서 재공모를 실시했지만 이번에도 행장 후보를 뽑지 못하고 오는 20일 다시 회의를 열 계획이다. 수협은행은 이날 후보가 나오기만 하면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곧바로 여는 등 절차를 압축해 수장 공백을 없앤다는 복안이었지만 결국 행장 추천 실패로 행장 대신 사상 초유로 권한대행을 선임했다. 권한대행은 비상임이사인 정만화 수협중앙회 상무가 맡기로 했다.


수협은행장 선출이 꼬일 대로 꼬인 것은 행추위의 정부 측 위원과 수협중앙회 측 위원들이 각각 관료 출신 인사와 내부 인사를 고집하고 있어서다. 5명으로 구성된 행추위는 4명의 동의를 얻어 최종 후보를 낼 수 있다. 현재 정부 측 사외이사인 송재정 전 한국은행 감사, 임광희 전 해양수산부 본부장, 연태훈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은 이원태 현 행장의 연임을 주장하는 반면 박영일 전 수협중앙회 경제사업 대표, 최판호 전 신한은행 지점장 등 수협중앙회가 추천한 사외이사 2명은 은행 내 2인자인 강명일 상임감사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협은행 내부에서는 IBK기업은행 등이 내부 출신 은행장을 배출하면서 “이번에는 수협도 내부 인사가 은행장이 돼야 한다”는 여론이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구나 수협중앙회가 수협은행 지분을 100% 보유한 만큼 사실상 정부의 입김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는 것이 수협은행 내부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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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부 측은 2001년 이후 수협은행에 1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정책자금 집행 기능이 남아 있는 만큼 금융정책 경험이 있는 관료 출신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수협은행은 “관료들이 자리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고집을 부린다”고 하고 있고 정부 측에서는 “아직 수협은행은 내부 인사가 수장을 맡을 정도로 자립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감정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행장 자리 하나를 놓고 이전투구를 하다 보니 권한대행 체제가 장기화될 우려마저 나온다. 이렇게 되면 신사업은 물론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대한 대응도 늦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권한대행 체제에서 누가 신사업을 발굴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겠느냐”며 “당장 수협은행의 건전성이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출범과 함께 세운 경영 목표를 추진하기는 상당히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은행장 선출 갈등으로 내부가 어수선해지면서 금융사고나 모럴해저드 발생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나온다. 이런 와중에 최근 감사원의 예금보험공사 감사에서 수협은행 직원들의 비위 사실이 다수 드러나면서 도덕성에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됐다. 한 예로 수협은행의 한 지점장은 30억원의 대출 심사를 하면서 대출신청자의 신용등급이 낮아 대출한도가 나오지 않자 자신의 전결로 신용등급을 조정해 대출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함께 수협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실명제 위반을 포함해 2015년에만 6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지난해 3·4분기에도 1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하면서 고객들의 불안도 확산되고 있다. 은행장 선임이 늦어지면서 노조도 뒤늦게 반발하고 나섰다. 수협은행 노조 관계자는 “외부 인사든 내부 인사든 후임 은행장을 빨리 결정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행추위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행장 선출을 둘러싼 정부와 수협중앙회 간 다툼이 결국에는 수협은행은 물론 대한민국 전체 은행권에 대한 신뢰와 이미지 추락을 불러오고 있다.

김흥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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