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는 카드업계의 후발주자다. 경쟁사보다 한 발 늦은 2001년에 시장 진출을 선언했지만, 이후 카드업계에 돌풍을 일으키며 현재는 업계를 이끄는 강자의 반열에 올라있다. 이 같은 성장의 비결은 차별화된 마케팅에서 찾을 수 있다. 현대카드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마케팅 활동을 통해 카드업계를 넘어 국내 산업계 전반에 ‘마케팅의 힘’을 각인시키고 있다. 국내 금융업계 마케팅의 새로운 이정표를 써 내려온 현대카드의 마케팅 전략을 살펴보자.
“콜플이 온다고?”
지난해 11월 23일 정오 무렵, 국내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는 온통 ‘콜플’이라는 단어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는 ‘콜플’, ‘인터파크’, ‘시계’, ‘예매’ 등이 하루 종일 올라있었다. 콜플은 영국 출신 유명 록밴드 ‘콜드플레이(Coldplay)’의 준말이다. 콜드플레이의 한국 공연이 확정되자 국내 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로 콜드플레이 공연 예매 서버가 열리고 불과 2분여 만에 1차 판매좌석이 모두 매진됐다.
슈퍼콘서트로 마케팅 패러다임을 바꾸다
콜드플레이의 공연을 성사시킨 주역은 바로 현대카드였다. 현대카드는 지난 2007년부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라는 문화마케팅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해외 유명 아티스트들을 섭외해 공연을 제공하는 행사로, 4월 예정인 콜드플레이를 포함해 지금까지 총 22팀의 국내외 아티스들이 이 슈퍼콘서트를 거쳐 갔다. 1회 슈퍼콘서트의 문을 연 팝페라 보컬팀 ‘일디보’를 시작으로 여성 팝아티스트 비욘세, 세계 3대 테너 중 한 명인 플라시도 도밍고,‘비틀즈’ 멤버 중 한 명이었던 폴 매카트니 등 장르를 막론한 유명 아티스트들이 슈퍼콘서트 무대에 올랐다. 매년 2~3번 꼴로 개최된 슈퍼콘서트는 현대카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 마케팅 활동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고 있다.
해외 아티스트 사이에서도 현대카드 슈퍼콘서트의 위상은 꽤 높은 편이다. ‘팝 디바’ 휘트니 휴스턴(2010년)과 팝 아이콘 중 한 명인 레이디 가가(2012년)가 월드투어 첫 무대로 슈퍼콘서트를 선택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슈퍼콘서트가 처음 시작될 당시만 해도 현대카드의 마케팅 전략에 의문부호를 다는 이가 적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대개 유명 해외 아티스트들의 내한공연은 전문 기획사가 준비하고 운영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슈퍼콘서트의 출연자들은 웬만한 공연 기획자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천문학적인 몸값을 자랑하는 아티스트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카드회사 현대카드가 이들을 초청하겠다고 하자 대다수 업계 전문가들은 뜬금없는 일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현대카드의 이른바 ‘상생 파트너십’이라는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현대카드는 타이틀 스폰서이자 주최사로서, 공연 실무와 함께 공연기획사들에겐 취약한 광고, 홍보, 부대행사 등을 모두 책임지고 있다. 공연기획사는 무대 연출과 아티스트에 집중할 수 있어 보다 완성도 높은 공연을 진행할 수 있다. 현대카드는 슈퍼콘서트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슈퍼콘서트의 성과는 슈퍼콘서트 티켓 결제 시 현대카드를 사용하는 비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첫 슈퍼콘서트 때 64% 가량이었던 현대카드 결제 비율은 세 번째 콘서트에선 74%, 이후 콘서트에선 90% 내외를 기록했다. 슈퍼콘서트는 현대카드로 결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실하게 자리 잡으면서, 자사 카드의 고객 유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현대카드의 슈퍼시리즈 마케팅은 현대카드가 문화공연 애호가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 그 동안 국내에 쇼핑이나 주유, 금융 등에 특화된 카드는 있었지만, 문화공연에 특화된 서비스로 성공을 거둔 카드는 없는 상황이었다. 문화이벤트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건 분명했지만, 쇼핑이나 주유처럼 생활 체감도가 높은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현대카드는 여기에 주목해 각 카드 별 특화 혜택에 추가로 슈퍼시리즈 할인 혜택을 전 고객에게 조건 없이 제공했다. 현대카드의 ‘지갑 내 점유율’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슈퍼콘서트는 국내 산업계 전반을 통틀어 가장 극적이면서도 놀라운 마케팅 성공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허지성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말한다. “슈퍼콘서트 성공의 키워드는 바로 진정성과 차별성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우리 고객들을 위한 문화 이벤트는 우리 스스로가 주도한다’는 진정성과 경쟁사에선 경험할 수 없는 차별화된 혜택이 성공을 이끈 원동력이 된 거였죠. 그런 과정에서 현대카드 고객들은 일종의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고객들이 그 경험을 타인에게 전파하면 현대카드는 또 다른 고객들을 유치할 수 있습니다.”
현대카드의 차별화된 마케팅은 정태영 부회장이 현대카드 경영 전면에 나선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기발한 마케팅과 통념을 깨는 디자인 혁신
2001년 출범한 현대카드는 초기만 해도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모기업인 현대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현대카드는 그룹 내 금융 서비스사로 주로 자동차 관련 금융서비스를 담당하고 있었다. 현대카드의 차별화된 마케팅은 정태영 부회장이 현대카드 경영 전면에 나선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해 현대카드는 이른바 ‘알파벳 마케팅’을 처음 선보였다. 2003년 현대카드 M을 시작으로 C, T, K, A 등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시장을 세분화하고, 이를 상징하는 알파벳을 브랜드 전면에 내세웠다. 이 같은 알파벳 마케팅은 소비자가 각 카드의 혜택을 쉽게 인지할 수 있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카드 종류별 상품의 특성을 명확히 전달 하는데에도 기여했다. 예를 들어 현대카드 C는 ‘체크(Check)’ 카드의 C를 의미하고, 현대카드 M은 다양한 곳(Mutiple)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후 현대카드는 각각의 알파벳 특성에 따라 다양한 회사들과 제휴를 맺고 혜택을 주는 독특한 마케팅으로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예컨대 현대카드 S의 경우, 샘소나이트, 소니 같은 알파벳 ‘S’로 시작되는 브랜드에서 사용하면 할인혜택을 주는 방식이었다.
현대카드의 마케팅 전략은 카드시장 경쟁구도에도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당시만 해도 카드업계에선 각각의 개별 상품이 아닌 기업 브랜드를 앞세워 마케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 같은 상황에서 각각의 카드에 알파벳을 입힌 현대카드의 전략은 경쟁사와 명확히 구별되는 강력한 차별화 포인트로 작용할 수 있었다. 이후 현대카드는 금색, 은색 일변도였던 카드 색깍에 변화를 주는 이른바 ‘컬러 마케팅’에도 뛰어들었다. 네온, 망고, 체리 같은 감각적인 비비드 컬러의 현대카드 디자인에 젊은 소비자들의 관심이 쏟아진 건 당연한 결과였다.
2005년 9월 현대카드는 ‘슈퍼시리즈’로 불리는 문화마케팅 이벤트도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첫 스타트는 이른바 ‘현대카드 슈퍼매치’였다. 여자 테니스계 월드스타 마리아 샤라포바와 비너스 윌리엄스의 맞대결을 한국에서 개최한 것이었다. 이는 어떤 기업도 시도해 보지 않은 파격적인 행보였다. ‘카드사가 웬 테니스 경기?’냐는 냉소가 쏟아져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슈퍼시리즈를 고안한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테니스는 인기 스포츠는 아니지만 동호회를 중심으로 충성도 높은 팬들을 많이 확보하고 있었다. 유럽 귀족과 성직자들이 즐긴 스포츠라는 프리미엄 이미지도 갖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슈퍼매치는 언론의 뜨거운 관심 속에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슈퍼매치’라는 이름은 흥행과 재미를 동시에 제공한다는 용어로 지금도 라이벌 구단이 맞붙는 프로 스포츠 경기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현대카드의 이 같은 혁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 선보인 ‘세로 카드’는 알파벳, 컬러, 문화에 이어 ‘디자인’에 포커스를 맞춘 새로운 마케팅 시도로 주목을 받고 있다. 세로 카드는 말 그대로 기존 가로 개념으로 정형화돼있는 카드에 전면 세로형 디자인을 도입한 깜짝 리뉴얼 카드였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가로로 마그네틱을 긁던 방식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IC칩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실물카드 결제 방식이 변경돼 이에 걸맞은 변화를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카드의 디자인 혁신은 세로 카드에서 멈추지 않았다. 카드번호와 글로벌 제휴 브랜드 로고를 뒷면에 배치한 신선한 도전도 카드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카드업계가 ‘핀테크’ 등을 활용한 상품 및 서비스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디자인에 승부를 건 현대카드의 역발상 전략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