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가 ‘국가 안보’까지 거론하며 외국산 철강재 수입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국내 철강업계는 ‘갈 데까지 가고 있다’며 잔뜩 긴장하는 분위기다. 미 정부는 최근 몇 년 간 굳이 국가 안보를 들먹이지 않고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수입 철강재에 고율의 반덤핑·상계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보호무역주의 장벽을 쌓아 왔다.
◇ ‘국가안보’는 명분...보호무역 강화하려는 전략 =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외국산 철강재 수입을 제한할지 검토하겠다며 이유로 든 ‘국가안보 위협’은 보호무역을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징벌적 수준의 반덤핑과 상계 관세율을 부과하는 것이 국제 통상 분쟁의 빌미가 될 소지가 있다고 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트럼프 행정부가 55년 된 무역확장법 조항을 되살려 국가안보를 이유로 철강 수입에 새 무역 장벽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962년 제정된 무역확장법 232조는 국가 보안상 이유로 긴급 무역제재를 허용하는 강력한 법이다.
철강업계 고위 관계자는 “지금까지 미국이 반덤핑과 상계관세를 도구로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취했는데, 이제는 아예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까지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통상 분야의 한 전문가는 “후판(선박용으로 주로 쓰이는 두께 6㎜ 이상 철판)의 경우 군함 건조 등에 쓰일 수 있기 때문에 국가안보와 완전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일반 범용 철강재에 대해서까지 수입 제한 조치를 취하려는 것은 무리수”라고 지적했다.
◇ 위기의 韓 철강 = 이런 가운데 미 상무부는 한국을 포함한 10개국으로부터 들여오는 보통과 특수 선재(wire)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착수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 새로운 반덤핑 조사를 시작한 것은 처음이다.
미국 철강업계는 반덤핑 조사에 착수해달라며 미 상무부에 제출한 청원서에서 한국산 선재 덤핑 마진이 33.96~43.25%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현지 시장 거래가의 최대 43% 수준 낮은 가격에 팔았으니 반덤핑 관세를 부과해달라는 것이다. 한국의 대미 선재 수출 규모는 지난해 9만5,000톤으로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많다.
이번에 조사에 착수한 선재 말고도 한국산 철강은 이미 미국에서 고율의 반덤핑·상계 관세를 부과받으며 2014년 60억달러 수준이던 대미 수출은 지난해 35억달러로 급감했다. 전반적인 수출 감소 시기인 점을 감안 해도 대미 수출 감소 폭이 유독 컸다.
미 상무부는 최근 한국산 유정용 강관에 대해서도 1차 연도 연례재심 반덤핑 최종 판정에서 예비 판정 때보다 높은 수준의 마진율을 확정했다. 넥스틸이 8.04%에서 24.92%로, 현대제철이 5.92%에서 13.84%로 올라갔다. 통상적으로 최종 판정이 예비 판정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앞서 미 정부는 포스코 후판에 대해서도 11.7%의 반덤핑·상계관세를 부과했다. 한국산 열연·냉연 제품에 대해서도 ‘폭탄’ 수준의 관세율이 부과되며 사실상 수출이 막힌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