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옆에 저 숫자는 뭐지?”
21일 경남 김해의 가야CC(파72)에서 개막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즈. 리더보드 위쪽에는 김민선5, 김자영2, 이정은6 등 이름 뒤에 숫자가 붙은 선수들이 유독 많았다. 국내 여자대회를 자주 보지 않았던 시청자라면 당연히 궁금할 만한 부분이다.
특히 김민선5(22·CJ오쇼핑)는 이날 1라운드에서 버디만 6개를 몰아쳐 6언더파 공동 선두에 올랐다. 박성현의 뒤를 이을 차세대 장타여왕으로 주목 받는 김민선은 압도적인 드라이버 샷 거리와 정확한 중장거리 퍼트로 시즌 첫 승이자 통산 4승 전망을 밝혔다. 또한 김자영2(26·AB&I)와 이정은6(21·토니모리)은 2언더파 공동 9위. 2012년 3승을 챙겼던 ‘얼짱골퍼’ 김자영2는 올 시즌 부활 조짐이 뚜렷하고 이정은6은 2주 전 데뷔 첫 승 달성 뒤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외에도 이선화(공동1위)와 박주영(단독3위)·박소연(공동7위)·김지현(공동9위)이 동명이인 골퍼다. 이번 대회 첫 라운드에서 9위까지 무려 5명의 동명이인 골퍼가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름 옆에 숫자를 가진 선수들의 활약이 이같이 두드러지면서 일반 팬들의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이름 뒤 숫자는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가 동명이인 선수들을 구분하기 위해 붙이는 번호다. 번호는 입회순서에 따르는데 상금 지급 때 빚어질 혼선을 피하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이번 대회 120명의 출전자 중 이름 뒤에 숫자가 따라오는 이른바 ‘넘버드 플레이어’는 15명에 이른다. 최혜정2·김규리2·김도연3 등이다. ‘박주영들’ 중 가장 먼저 입회해 숫자를 피한 박주영(27·호반건설) 등 ‘1번’ 선수들을 포함하면 동명이인 출전자는 더 많다. 박주영은 5언더파 단독 3위에서 데뷔 첫 승을 노린다. 공동 선두 이선화(31)도 2명의 이선화 중 1번 선수다.
21일 현재 협회의 정회원은 총 1,150명. 협회 자료에 따르면 이 가운데 동명이인은 76개 이름의 176명에 이른다. 정회원은 정회원 테스트를 통과, 투어 참가자격을 가진 골퍼를 말한다. 이정은이 6명으로 가장 많고 김민선·박소현·박주영·신지은·이수진이 각각 4명이다. 이정은3는 일본 투어에 진출한 후 이지우로 개명해 활동 중이지만 KLPGA 등록명은 여전히 이정은3로 남아있다.
‘1번’ 이정은은 지난 1998년 입회한 뒤 이듬해 3개 대회에 참가한 후로는 투어 활동기록이 없다. 그렇다고 이정은2가 이정은이 될 수는 없다. 협회는 “탈퇴회원이 생기더라도 한 번 부여된 숫자는 변경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굳이 변경하려는 선수도 없다고 한다. 한 번 정해진 숫자에 오히려 애착을 가지는 선수들이 많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닉네임에 숫자를 넣거나 골프볼 등의 용품에 숫자를 새기는 식이다. 과거 이정은5가 우승했을 때 이정은4의 아버지가 축하전화 ‘폭탄’을 맞는 일도 있었지만 선수들은 “계속 쓰다 보니 정들었다” “팬들이 더 잘 기억해준다” 등의 이유로 자신의 이름에 따라오는 숫자에 큰 거부감없이 활동하고 있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이름 대신 숫자로만 ‘파이브’ ‘식스’로 불리기도 한다. 입회순서가 애칭이 된 것이다.
물론 이름 뒤에 숫자를 붙이는 것 자체가 싫은 선수도 있다. 2009년 KLPGA 투어에 데뷔한 이수지2는 이듬해부터는 아예 이심비로 개명해 활동했다. 특정 숫자를 꺼려 다른 숫자를 택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4’는 피하고 싶은 숫자다. 김민선5는 순서대로면 김민선4여야 하지만 협회에 요청해 ‘5’를 받았다. 김민지도 세 명뿐이지만 김민지5까지 있다. 김민지5는 2013년 입회하며 “4는 물론 3도 개인적으로 꺼린다”는 이유로 ‘5’를 요청했다. 협회 기록물이나 방송중계에서는 편의상 이름 뒤 숫자를 그대로 살리지만 신문기사에서는 보통 숫자를 빼고 나이와 후원사를 넣어 구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