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은 순수한 사람”
“맨발로 무대에 오르면 되게 자유로워요.”
“연극 무대, 진짜 살아있는 기분 느끼게 해”
배우 조동혁이 대학로 무대에서 혼신을 불태우는 중이다. 특히 불안감으로 몸부림 치면서 모든 관계를 파멸로 몰고 가는 ‘장정’ 조동혁의 모습에서 열정 속에 자멸하는 한 인간의 처절함을 되돌아보게 한다.
극작가 겸 연출가 조광화의 대표작 ‘미친키스’는 1998년 초연된 이후 2007년과 2008년 공연됐다. 이번 네 번째 무대는 조광화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그의 작품들을 다시 선보이는 ‘조광화전(展)’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조동혁은 2010년 선보인 연극 ‘폴 포 러브’ 이후 7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올랐다. 또 한 번 조광화 연출과 의기투합한 무대이다. 조 연출의 콜에 대본도 읽지 않고 바로 ‘네’라고 답한 조동혁은 연극의 엄청난 에너지에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조광화 연출님이 부르길래 대본을 읽지도 않고 한다고 했어요. 좋은 연극이 있으면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타이밍도 맞았어요. 나중에 합류해서 대본을 봤는데 가능할까 생각하게 될 정도로 힘들고 배우가 해야 할 것도 많더라고요.”
‘미친키스’는 시나리오 작가이자 흥신소 직원인 ‘장정’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인간들의 상실감과 허무함, 심적 고통과 환희 등을 세밀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장정은 히스클리프의 열정에 집착하고 그처럼 되려고 했고, 되라고 했지만 결국 모든 캐릭터가 이도저도 아닌 열정에 잠식되었다. 등장인물은 모두 누군가를 간절히 원하며 사랑에 목말라한다. 하지만 간절함은 오히려 과도한 열정과 집착으로 이어지고 결국 그들이 맺는 관계는 파멸로 끝난다.
사랑을 잡으려다 결국 공허한 파멸에 이른 ‘장정’을 두고 그는 “장정은 순수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일단은 순수한 사람이에요. 사랑을 하면 이 여자가 내 여자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사랑하는 남자 같아요. 그게 안 되고 자꾸 멀어지니까 일탈도 했다가 다른데서 사랑도 갈구해요. 동생이 안착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게 마치 자신의 모습 같기도 해서 괴로워해요. 참다 참다 동생에게 못 할 말도 하고요. 장정이 착해서 비극으로 치닫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어요.”
순수한 장정에게선 조동혁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애써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조동혁의 20대와 닮아있었다.
“어릴 때는 집착이 강했어요. 마치 그게 다 인 것처럼요. 지금은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고, 다른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요. 사회생활 하다보면 그런 게 있잖아요. 그래서 또 집중해서 빠져들고 사랑 속으로 들어가기가 힘든 것도 있죠. 가끔 어릴 때 그런 감정들이 기억이 안날 때가 있어요. 연극을 하면서 그 감정을 끄집어 내고 싶은데 말이죠. 그러다 조금씩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되살아나던걸요.”
많은 연극 배우들이 베테랑 조광화 연출과 작업하고 싶어하지만, 온 몸을 내던지길 원하는 조연출과의 작업은 절대 만만치 않다. 그는 “정말 집요 하세요. 그 점이 정말 좋아요”라고 말하며 웃는다.
“연출님은 감각적인 것, 감정적인 것 무엇 하나도 놓치지 않는 분이에요. 그 작품에 대해 너무 잘 알아서 이 부분은 모르겠지 해도 끝나고 딱 말하세요. 어떻게 보면 배우로서 피가 마르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지만 도움 되라고 하는 말이라 좋아요. 배우가 작품에 잘 흡수되라고 하시는 말씀이잖아요. 그만큼 집요해서 더 좋아요.”
‘미친키스’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허무함과 고독함이라는 심리를 극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배우들은 연기하는 내내 맨발로 열연을 펼친다. 그렇기에 ‘미친 키스’는 무대와 객석 모두 예민한 촉감이 전파처럼 전달된다.
“맨발로 무대에 오르면 되게 자유로워요. 뭔가 신경을 안 써도 되는 부분이랄까. 무대와 하나가 된 기쁜 느낌이 들어요. 저는 이런 감정을 처음 느껴봐요. 발바닥에 대한 감각을 공연 내내 느끼니까 되게좋습니다. 편안하고”
연극 속에선 조동혁이 상의 탈의 하는 장면을 만날 수 있다. 더블 캐스팅 된 뮤지컬 배우 이상이이 함께 모두 노출 신을 연기하면서 탄탄한 복근을 자랑한다. 정작 돌아오는 답은 ‘몸 만드는 데 에너지를 쓸 여력이 없다’고 했다.
“상이가 덩치도 좋고 몸도 좋아요. 예전이었으면 함께 출연하는 배우에게 안 지려고 노력했을 텐데 이번 연극은 그걸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몸 만들기에 에너지를 쏟으면 혼신의 연기를 못할 것 같더라고요. 일단 몸보다는 연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게다가 저랑 상이가 나이대가 달라요(웃음) 전 나이가 들어서 체력이 달려요. 상이는 젊으니까 운동도 연기도 다 열심히 잘할 수 있는데 전 힘드네요.”
모델로 먼저 연예계에 뛰어든 조동혁은 스물일곱, 조금은 늦은 나이에 드라마 ‘파란 만장 미스 김 10억 만들기’로 배우가 됐다. 이후 드라마 ‘영재의 전성시대’ ‘야차’ ‘감격시대:투신의 탄생’ ‘나쁜 녀석들’ 과 영화 ‘미인’ ‘심장이 뛴다’ ‘세상 끝의 사랑’ 등에 출연 해 선 굵은 연기를 선보였다. 어느 덧 15년 차 배우이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고 했다. 7년 전 첫 연극 때보다 한층 더 많은 깨달음을 안기고 있다고 한다.
“요즘 이렇게 정열적으로 뭔가를 해본 경험이 없어요. 몇 년 동안 작품을 연달아 하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어요. 건강도 나빠졌어요. 스스로는 나 자신이 나태해졌다고 생각했죠. 이 작품에이 힘은 들고 쉽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진짜 사는 것 같아요. ”
조동혁의 심장은 다시 한번 새롭게 뛰고 있었다. TV나 브라운관 연기에선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무대에서 연기할 때는 자유로워요. 카메라 연기는 그 앵글 안에서만 움직여야 하니까 답답한 느낌도 있거든요. 저희 연극은 다시 한번 사랑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에요. 세 번째 연극이요? 제가 7년 강조했으니까 좀 더 빨리 불러주시지 않을까요. ‘미친키스’를 사고 없이 마무리하는 게 제 목표에요. 앞으로도 좋은 연극이 있으면 또 하고 싶어요.”
한편, 연극 ‘미친 키스’는 배우 조동혁, 이상이, 정수영, 김로사, 전경수, 김두희, 오상원, 이나경, 심새인 등이 출연한다. 5월 21일까지 대학로 TOM극장 1관에서 공연된다.
/서경스타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