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410호 회의실. 조세제도를 총괄하는 기재부 세제실의 최영록 실장을 비롯한 국장 4명, 담당 과장 4명이 한 팀을 이뤄 특정 세목을 담당하는 과장과 주무서기관을 가운데에 두고 다그쳐 물었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현실성이 너무 떨어지는 것 아닙니까?” “해외에서 시행하고는 있다지만 우리는 국민 정서상 반발이 심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 설득하시겠습니까?” 회의 내내 진땀을 흘린 해당 과장은 숙제를 한가득 떠안은 채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기재부 세제실이 바짝 긴장한 채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다. 유력 대선후보들이 법인세 인상 등의 공약을 쏟아내는 가운데 대선 이후 10여년 만에 조세체계의 대수술이라는 ‘세금전쟁’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세제실은 만반의 준비를 위해 군대에서 유래한 ‘레드(RED)팀’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운영 방식은 이렇다. ‘조세정책심의회’라는 세제실 내부 회의에서 악역을 전담하는 레드팀을 둔다. 각 세목 담당 과장, 주무서기관·사무관을 불러다 놓고 세제개편 아이디어를 들으며 반대 논리를 제시해 허점을 집요하게 캐묻는다. 세제실의 한 관계자는 “서로 공격하고 방어하는 치열한 토론을 벌여 논리를 완성해나간다”며 “토론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 의외의 소득을 얻기도 한다”고 말했다.
현재 레드팀은 최 실장과 세제실 국장 4명, 특정한 담당 세목이 없는 4명의 조세총괄국 과장 등 총 9명의 조세정책심의회 ‘당연직’ 의원들이 맡고 있다. 회의 분위기는 실제 전투처럼 살벌하다고 한다. 세제실의 한 관계자는 “레드팀이 ‘심문’이라는 표현을 써도 무방할 만큼 상대를 강하게 압박한다”며 “마치 형사 법정을 방불케 한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얼굴을 붉히며 치열하게 자신의 논리를 주장하고 허점을 지적받은 쪽은 바들바들 떨 정도로 분위기가 달아오른다”고 말했다. 검증을 받는 해당 과는 당연히 압박을 받는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장에게 지적받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레드팀에 속한 같은 과장급에게 지적받는 것이 싫어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귀띔했다.
현재 주된 토의 내용은 오는 7월 중순에 발표하는 ‘2017 세법 개정안’에 담을 아이디어, 쟁점 세제 등이다. 조세 정의를 위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어 하지 못했던 정책, 차기 정부의 정책 방향과 맞는 세제 아이디어, 벤치마킹할 만한 해외 사례 등을 활발히 제기하고 검증한다. 4월에 세 번 회의를 열어 모든 세목을 한 번씩 다뤘고 이때 나눠준 숙제를 5월1일 다시 점검할 예정이다. 회의 시간은 8시간 이상으로 잡아놓아 ‘마라톤회의’를 예고했다. 방어하는 쪽은 프레젠테이션(PT)까지 준비해 대선 전 마지막 점검에 나선다.
유력 대선후보들이 대기업에 대한 과세 강화, 부자 증세, 일감 몰아주기 과세 강화 등을 천명한 만큼 전례 없이 치열한 공방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제실 관계자는 “조세 정책 방향이 10년 만에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전 세제실 직원들이 긴장하고 있다”며 “차기 정부의 정책 방향을 사전에 점검하고 대비하는 데 상당 부분의 시간이 할애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레드팀은 본래 군대에서 적의 입장에서 아군을 공격하게 하고 여기서 드러난 취약점을 개선하는 데서 유래했다. 해외에서는 공공기관·사기업·언론사 가릴 것 없이 보편화된 제도다. 기재부 내에서는 예산실이 1970년대부터 시행했고 세제실이 2015년 10월부터 벤치마킹했다. 2015년 연말정산 파동이 나며 ‘세제실이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져 있었다’는 자성론이 제기된 후 재발 방지를 위해 시작됐다.
세제실은 당시 기재부 내 전용 회의실에 공개적으로 ‘현판식’까지 열어 의지를 보였다. 지난해에는 뜸하다 최근 새 정부 출범에 앞서 조세 전반에 걸쳐 점검할 것이 많아지자 다시 활성화됐다. 세제실은 토론 과정이 힘들지만 결국 세제실과 우리나라 세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레드팀에 속한 한 고위관계자는 “세제는 천차만별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며 “레드팀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세제실에 잠재된 집단사고의 함정에서 벗어나 여러 관점에서 현실적인 발전 방안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각 과장들이 압박을 받더라도 결국 완성도 높은 정책을 내놓으려면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