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의 유통사·수입상들에 싱가포르는 ‘쇼케이스’입니다. 싱가포르를 둘러보고 잘되는 브랜드가 있으면 그걸 찍어서 자신들의 나라에도 소개하죠. 동남아에서는 싱가포르가 소득 수준도 가장 높고 유행을 선도하는 나라니까요.(아모레퍼시픽 싱가포르 법인 관계자)”
싱가포르는 동남아는 물론 아시아 전역에서 글로벌 브랜드의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이다. 세계적인 명품기업 LVMH의 뷰티 편집숍 세포라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 아시아 최대 매장을 냈다. 싱가포르가 동남아 지역의 유행을 이끄는 ‘트렌드 세터’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주변 국가는 물론이고 중국과 중동 지역에서 다양한 관광객들이 싱가포르로 원정 쇼핑을 온다.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싱가포르에 진출해온 한국 화장품과 식품 브랜드는 한류를 넘어 품질과 서비스로 현지 고객들은 물론 싱가포르를 찾는 해외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현지인들의 화장습관 바꾼 K뷰티=1년 내내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싱가포르의 여성들은 색조 화장은 고사하고 로션도 잘 바르지 않는다. 그러나 K뷰티가 전파되기 시작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싱가포르의 ‘명동’인 오처드로드의 주요 상점가 곳곳마다 설화수와 후·이니스프리·더페이스샵·토니모리·잇츠스킨 등 한국 화장품 매장이 없는 곳이 없다. 싱가포르 최대 쇼핑몰 아이온오처드에 위치한 라네즈 매장 관계자는 “습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촉촉한 느낌의 ‘윤광’ 화장이 인기”라며 “기초 화장도 스킨-로션-크림 3단계에서 시작해 한국처럼 4~5단계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싱가포르의 또 다른 쇼핑 거리 탬핀스에 위치한 더페이스샵 직원 엘미(26)씨도 “한국 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자연스러운 화장법과 컨투어링 화장법이 유행”이라고 전했다.
한국 화장품이 싱가포르 여성들의 일상으로 파고들었다면 국내 식품 기업들은 고급 이미지로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다. SPC의 파리바게트는 프리미엄 베이커리를 콘셉트로 고급 식재료를 사용한 샌드위치와 샐러드 등을 선보이고 있다. 가격이 한국보다 1.4배가량 비싸지만 점심 무렵에는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말레이·인니·중동에서 원정쇼핑 와요”=싱가포르는 중국과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중동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나라다. 일종의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하고 있다. 오처드로드 위즈마 아트리아에 위치한 에뛰드하우스 직원도 “싱가포르 고객이 대부분이지만 에뛰드하우스 매장이 아직 없는 중동지역에서 많은 고객들이 온다”고 말했다. 에뛰드하우스는 올해 말 아모레퍼시픽 브랜드 중에는 최초로 중동 두바이에 1호점을 낼 예정이다.
국내 기업들은 싱가포르를 베이스캠프 삼아 동남아 시장 진출의 고삐를 죄고 있다. 김동섭 아모레퍼시픽 아세안 헤드쿼터 매니저는 “해외 고객이 많은 싱가포르 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 위주의 매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며 “지난 1월에는 싱가포르에 동남아 환경과 여성들의 피부를 연구하기 위한 연구소도 설립했다”고 전했다.
신수철 SPC 싱가포르 법인 팀장 역시 “장기적으로 싱가포르와 베트남에 연구개발(R&D)센터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며 “채식 메뉴 등 현지인의 입맛에 맞는 메뉴 개발로 동남아 시장 공략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 등 현지 문화 반드시 살펴야=싱가포르는 규제가 엄격한 국가다. 이렇다 보니 현지에서 직접 사업을 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규제와 독특한 문화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가장 큰 문제는 채용이다. 싱가포르는 자국민의 취업을 장려하기 위해 현지인 정규직 3명을 뽑아야 외국인 직원을 2명 채용할 수 있도록 비중을 정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싱가포르 진출시 치열한 경쟁은 염두에 둬야 한다. 한 예로 수많은 외식 업체들이 싱가포르에 뛰어드는 까닭에 2010년 싱가포르에 진출한 CJ푸드빌의 한식 프랜차이즈 ‘비비고’는 지난해 7월 4개 지점을 모두 닫았다. 한국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매드포갈릭 역시 싱가포르에 두 개의 매장을 냈지만 하나를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