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스타 문화

[인터뷰]‘오를란도 핀토파쵸’ 정시만, 무대 위 부끄럽지 않은 성악가를 꿈꾸다

“빛을 따라 오래 오래 건강하게 노래하고 싶어요”

2012년 SBS TV ‘놀라운 대회 스타킹’ 특별기획 용사킹의 주인공은 육군 파리넬리 정시만이었다. 정시만 씨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주요 아리아 ‘축배의 노래’를 완벽하게 소화하는가 하면, 샤이니 종현이랑 고음 지르기 내기까지 하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2016년 그는 육국 파리넬리가 아닌 카운터테너 정시만으로 무대에 올라 당당히 음악성을 인정받았다. 국립오페라단의 ‘오를란도 핀토 판쵸’ 주역에 다시 한번 초청 돼 오는 10일과 12~1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주인공 이야기다.




카운터 테너 정시만 /사진=조은정 기자카운터 테너 정시만 /사진=조은정 기자


국립오페라단이 ‘바로크 오페라 발굴’이라는 유럽의 오페라계의 트렌트를 선도하며 호평을 이끌어낸 ‘오를란도 핀토 파쵸’는 비발디는 특유의 천재적인 음악성이 어우러진 오페라이다. 바로크 음악 특유의 생동감과 풍요로움이 돋보이는 이번 작품은 8-9세기에 걸쳐 서유럽의 통일을 이끌고 황제에 즉위했던 샤를 대제의 12 기사 중 한 사람인 오를란도를 중심으로 엇갈리는 7각 관계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정시만은 ‘오를란도 핀토 파쵸’에서 용맹한 기사 ‘그리포네’ 역을 맡았다. 오리질레와 티그린다 두 여인을 사랑하는 ‘나쁜 남자’이지만 결국 옛 연인인 오리질레와 결혼하며 막을 내린다. 한국에서 첫 오페라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그는 “최선을 다했던 공연인데, 크리틱도 좋게 나와 행복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지난 2016년 공연은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바로크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었다는 점 외에도 실력파 카운터테너 2명(이동규· 정시만)을 한 무대에서 만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오페라 애호가들의 쾌재를 부르게 했다. 이에 대해 정시만은 “동규 형이 정석으로 길을 닦아놓으셔서 후배인 제가 좀 더 수월하게 걸어갈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음악계가 너무 힘들잖아요. 그 중에서도 성악가, 또 동양인 카운터테너가 살아남긴 더 힘들어요. 그래서 다른 길로 빠지는 경우가 많아요. 딛고 일어서야 할 게 많은거죠. 홍혜경 선생님이 말씀하셨듯, 백인 성악가랑 동양인 성악가 2명이 있다고 했을 때 누구를 캐스팅 할 까요? 결국 백인 성악가가 유리해요. 그만큼 저희들은 노래를 더 열심히 해야 해요. 세계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이동규 선배 같은 분들이 있어 후배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카운터 테너 이동규, 정시만(오른쪽)카운터 테너 이동규, 정시만(오른쪽)


풍부한 성량과 맑은 음색이 일품인 정시만은 6살부터 고등학생 시절까지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아이 같이 고운 목소리를 들은 교회 선생님의 제안으로 카운터테너 길에 들어섰다. 미국 뉴욕에 있는 매네스 음악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독일 알렉산더 지라르디 국제 성악콩쿨에서 최고 영아티스트 상은 물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콩쿠르 뉴욕주 우승에 카네기홀에서 솔로 공연까지 했던 실력파 가수이다. 미국 오페라 인덱스 국제 성악콩쿨 우승으로 뉴욕타임즈에 소개되며 미국에서 주목 받고 있는 성악가로 떠오르기도 했다.

인터뷰로 만난 정시만씨는 친근하고 겸손한 태도로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한 자리에 있던 이동규씨가 “성대를 뜯어가고 싶을 정도로 노래를 잘 하는 친구이다”고 말해도 “아니다”며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제가 잘나서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음악이란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무대에선 자신 있게 해야 하는 건 맞아요. 하지만 매번 고민하고 연습하는 그런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전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제가 겸손하다기 보다는 그게 관객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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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그는 학구적인 성악가이다. “학구적이어야 무대에서 더 즐길 수 있다고 봐요. 실제로 그렇게 하고 싶어요. 나를 보여주겠다가 아닌 ‘내가 공부한 것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커요. 음악이란 게 언어, 딕션은 기본이고 작곡가의 시대 배경에 대한 공부 등 준비하고 갈고 닦아야 할 게 많아요. 하나 하나 열심히 공부를 한 만큼 무대에서 더 잘 표현 될 수 있다고 봐요. 모든 분들이 제 음악을 듣기 위해 오는 건데 부끄러운 성악가가 되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끝까지 공부하는 성악가가 되고 싶어요.”

2010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정시만은 이동규의 뒤를 이어 한국 카운터테너의 위상을 널리 알리고 있다. 그의 원칙 중 하나는 “주객이 전도 된 공연은 하지 않겠다”이다.

“자존심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무대가 작다고 해서 결코 작은 공연은 아닙니다. 작은 소극장 공연은 괜찮아요. 고아원 혹은 양로원 공연도 환영해요. 대신 술자리나 밥을 먹는 자리에서 노래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주객이 전도되는 공연은 안 하고 싶어요.”

정시만은 “음악은 중독이다”고 말했다. 특히 무대에 섰을 때 느껴지는 ‘빛’이 좋았다고 한다.

카운터테너 정시만카운터테너 정시만


그리포네 역의 카운터테너 정시만은 국립오페라단 주역 오디션을 통해 발탁되어 지난해 <오를란도 핀토 파쵸>로 한국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으며 다음 시즌 한국 카운터테너 최초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소속가수로 활동 할 예정이다.그리포네 역의 카운터테너 정시만은 국립오페라단 주역 오디션을 통해 발탁되어 지난해 <오를란도 핀토 파쵸>로 한국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으며 다음 시즌 한국 카운터테너 최초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소속가수로 활동 할 예정이다.


“리사이틀은 무대에서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좋습니다. 그래서 레퍼토리를 고를 때도 제가 공감 할 수 있는 걸 골라요. 제가 공감해야 다른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페라는 제가 한 번도 못해본 경험을 해 볼 수 있어 좋아요. 바람둥이 그리포네 역은 그래서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전 실제로 바람을 피워본 적이 없어서(웃음) 빛을 따라 오래 오래 건강하게 노래하고 싶어요. 100살까지 노래하는 거요? (깜짝 놀라며)노력해보겠습니다.”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정시만은 다음 시즌 한국 카운터테너 최초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게 됐다. 여기서도 그의 겸손한 답변이 이어졌다.

“메트로 폴리탄 캐스팅 디렉터에게 감사하게 연락에 왔어요. 게스트 신분이고, 아직 데뷔 하기 전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데뷔하면 소식 알려드리겠습니다.(웃음)”

무대 위 부끄럽지 않은 성악가를 꿈꾸는 정시만과의 인터뷰는 진솔함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그는 “오페라 ‘오를란도 핀토 파쵸’는 오페라 초보자인 어머니가 보고 정말 재미있게 감상한 작품이다” 며 “퀄리티가 세계 최정상급이다”고 엄지를 치켜 들었다. 끝까지 무대를 즐기고 싶다는 정시만의 2번째 국내 오페라 무대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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