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에게 미래 비전을 제시해 얻어낸 승리가 아닌 탄핵과 촛불민심이 안겨준 승리.’
문재인 대통령 승리의 일등공신은 탄핵 정국이라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은 일치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19대 대선이 7개월이나 앞당겨졌고 이에 따라 대통령 감으로 거론되던 수많은 잠룡들이 문 대통령의 ‘대세론’을 뒤집을 시간적 여유를 얻지 못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대선 활주로가 너무 짧았다”며 “군소 후보가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이름과 비전을 알리고 세력을 키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고 말했다.
실제 당내에서 문 대통령의 강력한 경쟁자로 거론되던 안희정 충남도지사나 이재명 성남시장의 경우 짧은 경선 일정 탓에 제대로 승부를 겨뤄보지 못했다. 특히 안희정 지사는 ‘선의’ 발언으로 주춤했던 지지율이 다시 오름세로 돌아서자마자 경선이 끝나버려 아쉬움을 남겼다.
보수 단일화도 마찬가지 운명에 처했다. ‘반문연대’ ‘빅텐트’ ‘3자 단일화’ 등 수차례 물밑에서 시도된 합종연횡이 현실화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때문에 대선 내내 정치권에서는 ‘탄핵 정국의 최대 수혜자는 문재인’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기존 정당, 특히 보수 정당이 갈가리 찢어진 다자구도 상황에서 가장 안정적인 지지기반을 보유한 후보가 승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했다.
탄핵 정국은 구도(프레임) 싸움에서도 문 대통령에게 우위를 안겨주었다. ‘적폐청산’ 내지 ‘정권교체’ 프레임이 보혁·안보 프레임을 압도하면서 우측(보수)으로 경사졌던 대선 운동장이 10여 년 만에 다시 좌측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이번 선거의 시대 정신은 적폐청산”이라며 “정치공학적으로 수많은 승리 요인을 거론할 수 있지만 가장 본질적인 것은 부조리와 반칙, 특권에 반발한 촛불민심에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부응한 것처럼 보인 게 승리 요인”이라고 말했다.
위기도 있었다. 유목민처럼 떠돌던 중도·보수층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황교안 국무총리, 안희정 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게 안착할 조짐이 보일 때마다 ‘대세론’은 흔들렸다. 위기의 정점은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30% 후반대까지 치솟으면서 양강 구도를 형성했던 지난달 10일 전후였다. 하지만 반 전 총장과 황 총리는 스스로 뜻을 포기했고 안희정 지사는 당내 세력 부족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으며 안철수 후보는 TV토론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 중도·보수층을 결집해내지 못했다. 막판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보수의 적자를 자처하면서 표몰이에 나섰지만 ‘친박당 후보’라는 태생과 시간 부족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북풍’도 ‘촛불’을 끄지는 못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기습적인 국내 배치와 김일성 생일(태양절)을 전후로 한 북한의 도발로 ‘북풍’이 일었으나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다. 오히려 “한국에 사드 비용 10억달러를 청구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은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에게 호재가 됐다.
과거의 패배를 반면교사 삼은 것도 승리 요인으로 꼽힌다. ‘친문’ vs ‘반문’ 프레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골수 친문 세력을 후방 배치했다. 5년 전 18대 대선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중도층과 호남의 ‘반문’ 정서를 자극하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덕분에 ‘반문 연대’의 동력은 상실됐고 호남은 전략적으로 문 대통령에게 표를 몰아줬다.
산토끼 사냥보다는 집토끼 지키기에 주력하면서 관리 모드로 일관한 것도 주효했다. 측근들의 잇단 말실수로 “정권을 잡은 듯 행세한다”는 뒷말이 나올 때마다 즉각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등 발 빠르게 사태를 수습했다. 막판 대선의 최대 변수로 등장한 TV토론에서도 ‘공격’보다는 ‘수비’에 치중하면서 지지층 이탈을 막았다. 홍형식 소장은 “문재인 캠프 측은 선거 기간 내내 ‘지키기’에 주력했다”며 “특히 최대 약점인 반문 정서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극도의 주의를 기울인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능현·김기혁기자 nhkimch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