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핵심 측근들과 러시아가 유착해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 ‘러시아 커넥션’ 수사의 최고책임자인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전격 해임하면서 정국에 파란이 일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과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이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특별검사를 해임한 사건인 ‘토요일 밤의 학살’과 판박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러시아 커넥션이 ‘제2의 워터게이트’ 같은 ‘미 헌정의 위기’로 비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과 로드 로젠스타인 법무 부장관의 건의를 수용해 코미 국장을 해임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코미 국장은 오는 2023년까지인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FBI를 떠나게 됐다. 이날 해임 결정은 이례적으로 코미 국장 본인이 통지를 받기도 전에 방송을 통해 먼저 공개됐다.
보도에 따르면 코미 국장의 해임은 러시아 커넥션 수사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 때문이라는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다. NYT가 입수한 인사 서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코미 국장에게 “러시아 커넥션 수사에서 나는 제외됐다고 세 번이나 알려줘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수사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난 셈이다. 로젠스타인 부장관도 “클린턴 e메일 스캔들에 대한 조사 결과를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혀 클린턴에 대한 불기소 처분이 경질의 주요 이유였음을 시사했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FBI의 수사 독립성을 해쳤다며 워터게이트 파문 당시 닉슨 대통령이 관련 수사에 직접 개입한 ‘토요일 밤의 학살’과 이번 결정을 비교하고 있다. ‘토요일 밤의 학살’은 닉슨 대통령이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도청 배후에 자신이 있다는 증언이 나오자 백악관으로 수사범위를 좁히던 특별검사를 전격 해임한 사건이다. NYT는 코미 국장이 대선 전 e메일 스캔들 재수사를 발표해 당선의 ‘1등 공신’이었을 때는 그를 “강단 있다”고 치켜세우다 러시아 커넥션에 대해 미 의회가 청문회를 열고 신구 정권의 갈등까지 표면화하는 등 논란이 일자 수사 최고책임자를 경질했다며 “미 헌정 사상 첫 대통령 사임을 초래한 워터게이트의 교훈을 잊었다”고 비판했다. 코미 국장의 해임이 미 헌정의 정신인 수사 중립성까지 훼손한 원칙 없는 결정이라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토요일 밤의 학살’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둘러싼 논란을 증폭시켜 닉슨 대통령 퇴진의 결정적 근거가 됐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이번 결정에 대해 공화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고조되는데다 민주당에서는 “수사 중립성을 담보하기 위해 특별검사를 임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코미 국장 해임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리처드 더빈 민주당 상원의원(일리노이)은 “FBI 수사를 중단시키거나 개입하는 시도는 심각한 위헌 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NYT는 FBI 내에서 코미 국장의 후임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이 임명될 수 있다는 설이 돌고 있다며 이 경우 수사 개입 논란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