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문재인 시대-문제는 정치다<1>] 과거 정권 장관은 '얼굴마담'...비서실이 내각 주물러 '사실상 군림'

■무너진 인사·견제시스템

막강한 비서실·문고리 권력이

인사관여·개인 민원까지 요구

대통령-장관 직접 소통해야

제대로 된 정책 수립 가능해

文정권, 장관에 인사권 주되

책임묻는 정치 구조 만들어야



“박근혜 정부 시절 장관들은 심한 말로 ‘얼굴마담’이었습니다. 정부 업무명령 체계는 ‘청와대 비서실→각 부처 차관→국장 및 실무진’으로 이뤄졌고 장관은 없었습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지난 정부의 업무 체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이 각 부처 장관의 의견을 듣고 업무를 지시하는 것이 상식인데 대통령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은 비서실이 장관은 건너뛰고 차관 이하와 업무를 좌지우지했다는 것이다. 그는 “국무회의도 장관들이 사진을 찍는 그 이상, 이하의 자리도 아니었다”며 “이번 정부에서는 비서실을 줄이고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이 난상토론을 해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가 한국의 경제·사회 전반의 발목을 잡은 데는 이렇듯 국회뿐 아니라 청와대 문제도 만만찮았다. 대통령의 강력한 권한을 등에 업고 비서실이 비대해졌다. 이들을 견제할 시스템이 없다 보니 비서실이 내각 위에 군림했다. ‘문고리 3인방’, 최순실 국정농단에 이은 초유의 대통령 탄핵도 청와대의 전횡과 이에 대한 ‘체크 앤드 밸런스’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라는 게 대다수의 평가다. 전문가들은 인사검증도 받지 않는 청와대 비서실의 힘을 빼야 비선이 개입할 여지도 줄고 각 부처의 다양한 목소리가 살아나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11일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은 “청와대가 계속 커지면서 지금은 비서관·행정관이 일선 공무원 인사까지 관여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청와대 비서실 몸집을 줄이고 대통령이 각 부처 장·차관과 직접 소통해야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의 청와대는 큰 전략만 짜고 부처에 미주알고주알 관여하지 않았는데 이전 스타일로 돌아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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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박근혜 정부를 경험한 관료들은 이 같은 시각에 동의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 비서실의 힘이 세고 지시사항도 많다 보니 대통령 의중이 아닌 비서실 소속원의 개인 민원이 섞여 내려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며 “청와대가 축소되면 대통령, 각 부처 장관이 국가를 위한 일만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인사권 전횡도 심했다. 기재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때는 고려대 출신들이 잘나갔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호남 출신이라고 고위직 승진이 막히고 대구경북(TK) 출신은 중용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출신 지역만으로 인사가 이뤄지다 보니 일할 맛도 떨어졌던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청와대발(發) 낙하산 문제도 심각했다. 사회공공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때(2013년 2월~2016년 9월 말 기준) 임명된 공공기관장 중 26.9%(108명)가 낙하산 인사로 분류됐다. 연구원은 대통령과 인연을 맺거나 정부·자유한국당 주요 인사를 낙하산으로 보고 분석했다. 상임감사 중에서는 63%(87명), 비상임이사 중에서는 18.4%(171명), 상임이사 중에서는 5.5%(23명)가 낙하산이었다. 업무 연관성이 없는 사람이 기관장으로 가면 기관의 업무 역량과 사기도 떨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해법은 없을까. 핵심은 대통령이 막강한 인사권한을 내려놓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경제부처의 한 장관은 “장관에게 인사권을 주고 책임을 묻는 풍토가 조성돼야 하는데 노무현 정부 이후 청와대 내에 인사수석실이 만들어지면서 인사권을 청와대로 가져갔다”며 “이후 계속 각 부처 장관들에게 힘이 실리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사권이 청와대에 있다 보니 겉으로는 책임내각제를 내걸고 있지만 각 부처 직원들은 장관이 아닌 청와대만 바라보며 공식 행정 체계가 마비됐다는 이야기다.

현재 헌법·국가공무원법 등에는 총리, 각 부처 장관 등이 인사를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지만 사실상 청와대가 인사권을 쥐고 있었다. 법대로 인사권한을 이양하되 책임은 묻는 구조가 돼야 한다는 제언이다. 현재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는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만 7,000여개, 간접적으로는 2만여개다. 직접적으로는 △국무위원을 비롯한 장·차관 △4대(국정원·검찰·경찰청·국세청) 권력기관장 △대법원·헌법재판소·감사원 등 헌법기관장 △산하기관장 △각종 위원회 등의 임명권을 가진다./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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