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황석영 "5·18 대중에 알리고 환기시키는 게 우리 임무"

창비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32년 만에 개정증보판 발간

숨겨진 공저자 이재의·전용호 씨 이름 함께 밝혀

황석영(가운데) 작가가 11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개정증보판 발간 기자간담회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창비황석영(가운데) 작가가 11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개정증보판 발간 기자간담회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창비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알리는 최초의 르포르타주로 제5공화국 당시 ‘지하의 베스트셀러’로 통했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이하 ‘넘어넘어’)’가 출간 32년만에 처음 개정증보판으로 나왔다. 그 사이 출판사는 풀빛출판사에서 창비로 바뀌었고 표지에는 수년간 숨겨졌던 공저자 이재의, 현장 증언 수집 등을 맡았던 전용호의 이름 석 자도, 이들의 방패막을 자처하며 이름을 빌려줬던 황석영의 이름 뒤에 나란히 놓였다. 첫 발간 당시 황 씨는 이 책의 단일 저자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감수·자문 역할을 맡았고 자료 수집과 초고 작성을 맡은 이는 전남대 학생 신분으로 5·18을 겪었던 이재의, 전용호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넘어넘어’가 출간되자마자 황 씨는 수사기관에 연행됐고, 당시 책을 펴냈던 풀빛출판사 고 나병식 대표는 구속됐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엄혹한 시절을 살아남은 저자들이 내용을 두 배 가까이 늘린 600페이지로 보강하고 새 표지를 입은 책을 들고 다시 모였다.

11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개정증보판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황석영 작가는 “5·18 광주민중항쟁은 보수정권을 거치며 왜곡, 은폐됐고 교육현장에서도 잘못 가르친 탓에 광주 지역의 중고생들마저 잘 알지 못 한다”며 “대중적으로 알리고 환기시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2013년부터 개정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집필진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공식 명칭과 달리 ‘민중항쟁’이라는 용어를 썼다. 황 작가는 “5·18 당시 광주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 대부분이 노동자 계층이었고 당시는 시민의 출현 이전이라고 보는 게 맞다”며 용어사용의 근거를 설명했다.

2013년부터 개정 논의를 시작했으나 5·18 관련 군(軍) 기록물, 전두환·노태우 재판, 국회 청문회 기록 등 비공개 내용까지 최대한 수집해 보강하다 보니 시간이 더 걸렸다. 특히 이번 증보판에는 5·18특별법에 따라 기소·유죄 확정 판결받은 전두환 등 16명을 제외한 공수부대 현장 지휘관(대대장급)들의 만행을 실명 비판하는 내용도 처음 실렸다. 또 5월21일 도청 앞 집단 발포를 정점으로 보는 기존 관점과 달리 20일 광주역 학살을 시작으로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 위해 관련 자료들을 최대한 모았다고 설명했다. 항쟁의 당사자 외에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내외신 기자들의 증언과 기사 등을 통해 입체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데도 힘썼다. 이재의는 “27일 도청 진압작전 상황을 남파 공작원의 공작극 등으로 왜곡하는 이들이 많다”며 “이날의 실체적 진실을 보여줄 수 있도록 각 방의 상황은 물론 옆 건물에서 외신기자가 목격한 내용까지 최대한 생생하게 묘사해 입체적으로 당시 상황을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현시점에서 넣을 수 있는 내용은 모두 넣었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다. 이재의는 “80년 당시 재판 기록이나 5공 당시 기록물들은 모두 진실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자료들이지만 여전히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공개가 안 되고 있다”며 “그나마 이번 책에는 2007년 과거사위원회 조사 때 나온 일부 자료를 넣었지만 아직도 공개되지 않은 자료들이 무수히 많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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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각각 1985년 1999년 발간됐던 일본어판과 영문판 역시 개정판을 발간하고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쉽게 5·18의 역사를 익히도록 150~200페이지 이내로 쉽게 풀어쓴 책도 발간할 계획이다.

황 작가는 출간 소회를 밝히며 “옆에 앉은 이들은 당시 홍안의 청년들이었는데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됐다. 이들을 보면 그때 죽은 청년들의 이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며 “평생 광주가 나를 놓아 주지 않은 덕분에 다른 길로 가지 않고 내 문학의 특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회고하기도 했다. 1976~1985년 광주와 해남에서 살았던 황 작가는 1984년 당시 10년간 이어졌던 ‘장길산’ 집필을 막 마치고 이들의 제안을 받게 된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서 쉽게 구속하지 못 할 것이라는 기대감과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보자는 계산으로 이름을 흔쾌히 내줬던 황 작가는 “열흘간 구금됐다가 풀려났지만 이후 베를린 문화행사 참여를 빌미로 해외 출국을 강요 받았고 이후 해외를 전전하다 망명 4년, 징역 5년 등 약 13년을 글을 쓰지 않고 활동가 같은 삶을 살았다”고 토로했다. 이런 황 작가에게 이재의와 전용호는 “광주의 많은 이들에게 황석영은 ‘사랑하는 형’이다. 우리가 가야 할 감옥을 대신 가주신 작가님을 ‘형님’이라고 부르고 있다”며 이따금 눈시울을 붉혔다.

정상용 간행위원회 위원장은 “광주항쟁에서 보여준 민초들의 민주의식이 6월 항쟁, 그리고 이번 촛불시민혁명에서 재현됐다”며 “5·18 당시 행방불명돼 지금까지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이들이 60여명이 넘는데 이들에 대한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새 정부에선 토대가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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