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당시 경제 관료 인맥들이 변방에서 중앙무대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전직 관료들의 모임인 ‘10년의 힘’과 부총리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이용섭 전 의원을 단장으로 했던 선거 당시의 비상경제대책단, 옛 경제기획원(EPB) 출신들이 주축이다. 과거 참여정부에서 장차관급으로 활동했던 인사들로 대선 공약은 물론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인사권에서도 ‘어드바이저(자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문 대통령의 공약을 다듬어 100일 계획을 짤 ‘국가기획위원회’와 앞으로 출범할 각종 위원회를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관계는 물론 민간 기업들 사이에서도 참여정부 당시의 관료와 청와대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인사들과의 교분 방법을 찾느라 부산한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 청와대와 부처 장관 인선 과정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그룹이 비상경제대책단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다른 자문단과 달리 대책단을 3차례나 찾을 정도로 애착이 컸다. 대책단 단장을 했던 이용섭 전 의원은 참여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과 국토부 장관 등을 역임하는 등 핵심에 섰던 인물로 문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하다. 이 전 의원은 국회의원을 지냈음에도 후보 시절 문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각별했다. 이 때문에 현 정부 총리와 경제부총리 등의 강력한 후보로 꼽혀왔다. 대책단 멤버였던 김수현 세종대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참여정부의 핵심 경제 브레인이었다. 참여정부 당시 도입된 종합부동산세와 각종 부동산 대책의 얼개를 짰던 인물이다. 김 교수는 청와대 정책실장 등에 강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 대책단에는 또 참여정부 당시 국제담당차관보와 조달청장을 지낸 김성진 현 화우 고문이 포함돼 있는데 김 고문 역시 금융 부문 등의 경험을 살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동걸 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역시 참여정부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대책반에서 일했으며 현 정부의 입각 대상으로 꼽힌다.
또 하나 주목할 그룹들은 대선 당시 캠프 외곽에서 자문 그룹으로 활동했던 ‘10년의 힘’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요직을 맡았던 인사들로 60명에 이르는 매머드급이다. 변양균 전 정책실장,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윤덕홍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전윤철 전 감사원장, 조순용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참여하고 있다. 다만 이들은 단순 자문 역할에 그쳤기 때문에 현 정부에서 직접 자리를 맡을 가능성은 높지 않고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현시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변양균 전 실장이다. 그는 옛 경제기획원(EPB) 출신으로 기획예산처 장관 등을 지냈다. EPB의 전성시대로 꼽히는 참여정부 당시 핵심 관료로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부터 정책 자문에 깊숙한 역할을 했다.
초대 국무조정실장에 내정된 홍남기 전 미래부 차관, 7급 공채 출신으로 기획재정부 국장에서 1급인 청와대 총무 비서관으로 깜짝 발탁된 이정도 전 행정안전심의관 등이 변 전 실장의 작품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들은 변 전 실장의 비서를 지냈던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전직 장관 출신들이라 전면에 나서기는 어렵겠지만 위원회나 자문그룹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변 전 실장 외에도 EPB 인맥은 현 정부 핵심 줄기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경제 관료의 뿌리는 금융·세제의 재무부(MOF)와 기획·예산의 EPB가 양대 축인데 이들은 역대 정부에서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왔다.
참여정부에서는 EPB 전성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각 부처의 장차관을 독식했다. 권오규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변 전 실장, 장병완 전 장관, 김영주 전 산업자원부 장관, 김대기 전 정책실장, 김동연 아주대 총장(전 국무조정실장, 당시 기획예산처 국장) 등 EPB 출신들은 노무현 정부의 역점 사업인 비전 2030,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지방 균형 발전 등 굵직한 업무를 주도했다.
관계에서는 문 대통령이 국가 주도의 정책을 많이 시행할 것이라는 전망을 놓고 볼 때 EPB 출신들이 다시 한번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 재정을 통해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개를 늘리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EPB는 큰 그림 그리기에 유능하다. 특히 거시경제 정책을 짜는 데 기획력을 발휘해왔다. 변화와 개혁을 지향하는 참여정부와 궁합이 잘 맞았다. 참여정부의 정부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비슷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김동연 총장의 경우 정책실장과 경제부총리의 하마평에 꾸준히 오르내리고 있다. /세종=김정곤기자 mckid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