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모씨(33)는 ‘로봇’에게 매달 20만원씩 관리를 맡기고 있다. 신한은행의 모바일 자산관리 어플리케이션(앱)인 ‘엠폴리오’를 통해서다. 엠폴리오는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자산관리 서비스로, 로보어드바이저는 로봇(robot)과 투자전문가(advisor)의 합성어다. 고도화된 알고리즘과 빅데이터를 통해 프라이빗뱅커(PB) 대신 로봇이 자산 운용을 해 주는 것인데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실제 박씨도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일회성으로 한번 맡겨 봤는데 4월째 누적 수익률이 2.67%로 짧은 기간에 연간 정기예금 금리를 넘어서는 수익률을 얻어 계속 적립식으로 불입하고 있다. 박씨는 “일반 적립식 펀드상품은 한번 들고 나면 통장에서 금액만 빠져나가는데, 엠폴리오는 리밸런싱(포트폴리오 조정) 문자가 자주 와 ‘제대로 관리되고 있구나’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든든하다”고 말했다.
12일 은행권에 따르면 로봇을 통한 자산관리 서비스인 로보어드바이저가 기대를 뛰어넘는 수익률과 저렴한 수수료로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고객 자산가에 한정된 PB서비스를 받기엔 자산이 적은 젊은 층의 ‘영(young)머니’가 로보어드바이저 쪽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가장 먼저 선보인 것은 신한은행이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11월 ‘엠폴리오’를 출시하고 모바일 앱 내에서 로보어드바이저와 PB전문가 중 하나를 택일해 펀드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로보어드바이저를 선택한 19만1,000명 중 2만5,000명이 실제 펀드에 가입했다. 가입금액은 187억5,000만원으로 신한은행에서 모바일을 통해 판매된 펀드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신한의 이 같은 돌풍에 우리은행과, KB국민은행 등 다른 은행들도 로보어드바이저 자산관리 서비스를 상용화화를 준비하는 등 가세하면서 로보어드바이저에 대한 관심은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더구나 최근 금융당국이 실시한 로보어드바이저 1차 테스트에서 최근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의 알고리즘이 통과하면서 곧바로 상품출시가 가능해 다양한 종류의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만날 수도 있을 전망이다.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는 젊은 층들의 투자·여유자금을 상당 부분 빨아들일 것으로 은행권은 예상하고 있다. 은행 창구를 방문하지 않고도 모바일로 간단하게 확인하고 구매하거나 환매할 수 있어서다. 이외에도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통해 펀드를 구매하면 구매 수수료가 낮은 것도 실속을 챙기는 젊은 층의 구미를 당긴다. 또 실시간으로 자신의 펀드 상황을 확인하고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해주는 사후 서비스를 통해 만족도를 높였다는 평가다. 실제로 엠폴리오의 경우도 30·40대 직장인이 60%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미 엠폴리오는 은행 창구에서 펀드를 구매하면 받는 1% 내외의 판매수수료를 부과하지 않고 있으며, 인력이나 점포 등에 드는 고정비가 적은 인터넷전문은행마저 이 서비스에 뛰어들면 수수료를 더욱 낮출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영업을 시작한 케이뱅크와 다음달 오픈 예정인 카카오뱅크 모두 로보어드바이저 자산관리 서비스를 향후 제공할 계획이다. 핀테크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에서 로보어드바이저가 처음 나올 때 디지털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자산관리 수요로 급속히 확산됐다”며 “자산 규모가 큰 50~60대는 금융권 자산관리사를 만나서 관리받고 젊은 층은 로보어드바이저에게 주로 자산관리를 맡기는 식으로 나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현재 은행권에서 제공하는 로보어드바이저 자산관리 서비스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개개인의 성향, 상황에 따라 완전히 개인화된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위험성향별 알고리즘을 이용해 다소 정형화된 포트폴리오를 추천해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로보어드바이저 운영사들은 PB들이 개인 맞춤형 관리를 해주듯이 개개인에 최적화된 포트폴리오를 짜주고 사후관리를 해주는 서비스를 구축하고 있다.
다만 당분간은 이같은 개인화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이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고객과 만나지 않고도 온라인으로 투자일임 계약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고객을 대면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일임 계약을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로보어드바이저 운영사 관계자는 “비대면 일임계약이 허용되면 저렴한 수수료로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자산 설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으니 이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