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은 없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문제로 악화일로였던 한중 관계가 지난 10일 한국에 새 지도자가 선출되면서 단 며칠 만에 회복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11일 한중 정상 간 통화에 이어 중국 정부가 14~15일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한국 대표단을 초청한 것은 분명히 전향적 변화의 신호탄이다.
사드 배치의 결정 배경과 과정은 북핵 위협에 대한 대응이라는 겉으로 드러난 이유 외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드로 인한 외교 관계의 파국은 중요한 국가안보 사안을 다각적인 문제 검토 없이 결정할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였다. 그러나 4월 말 새벽 기습작전을 하듯 전격 배치된 사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전략적 결정에 따른 것인 만큼 즉각적 철회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 중국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화책을 펴는 마당에 신정부가 미국에 대놓고 반발하기란 매우 어려움을 중국 정부도 잘 알고 있다. 대신 중국이 원하는 것은 적당한 명분과 실질적 배려다. 그래야만 중국도 사드 난국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는 전부 혹은 전무 게임이 아니기에 양국이 윈윈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향후 한중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이 진정성을 잘 전달한다면 문제 해결에 더 가까워진다.
현재 사드 해법은 미중·한중·한미의 복잡한 관계변수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아직 들여오지 않은 사드의 추가 배치는 보류하면서 들여온 사드의 본격적 운용은 늦춘다. 운용하더라도 레이더 탐지는 압록강 이남에 한하는 대북용임을 약속한다. 대신 중국도 한국의 안보 위협에 대한 이해와 우리의 대북정책 지지를 분명히 표명한다. 한류와 한국행 관광을 포함한 경제보복을 바로 해제한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리셋(재설정) 천명과 함께 사드 갈등 해소를 위한 내용과 형식에 유연하게 접근한다면 양국 간 접점을 찾을 수 있다.
사드의 민감성을 낮추려면 갈등보다는 협력의 모습을 부각시켜야 한다. 사드도 결국 북핵 위협으로 배치됐기 때문에 대북정책의 공동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북한 문제로 한중 관계가 벌어졌지만 역으로 북한 문제로 한중 관계를 좁힐 수도 있다. 중국의 역할이 컸던 6자회담에 생명을 다시 불어넣고 중국의 쌍궤병행(雙軌竝行·비핵화 프로세스와 북한과의 평화협정 협상) 노력에 호응한다면 한반도에 훈풍이 불면서 사드 논란은 잦아들 것이다. 남북한을 중심으로 주변국과의 경제협력을 일대일로의 명분으로 추진한다면 중국으로서도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양국 간의 소통이 원활하면 중국과 한반도 평화와 미래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더 용이해질 것이다.
이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양 지도자 간의 신뢰 구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개인적 친밀도는 국가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취임 직후 보여준 문 대통령의 소통 중시와 열린 자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신뢰 구축에 큰 도움이 된다. 문 대통령은 이번 일대일로 특사단 외에 북핵과 사드 해결을 위한 특사단을 추가적으로 보내기로 했다. 향후 양국 정책상의 큰 부분은 기존의 안보실장과 국무위원 간의 전략대화를 경제 영역까지 포함한 전략경제대화로 격상해 논의하고 부족한 부분은 특사 파견을 적절히 활용한다. 공공외교는 중국이 최근 몇 년 집중하고 있는 만큼 한중 관계를 긍정하는 인프라로 유용하다.
시 주석은 문 대통령 당선 축하 통화에서 양국 간의 문제들을 구동존이(求同存異·공통점은 추구하되 차이점은 보류)가 아닌 구동화이(求同化異·공통점을 추구하고 차이점도 해결)하자고 했다. 이는 관계를 그럭저럭 유지하기 위해 이견을 덮고 가는 소극적 자세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나가자는 적극적 의미로 읽힌다. 신정부는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의 14일 새벽 탄도미사일 발사는 남북 관계의 개선과 안정이 녹록지 않음을 예고하고 있다.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지만 그럼에도 신정부의 대중·대북 정책에 일정한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올해 한중 관계에 다시 훈풍이 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