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생들이 직업과 진로를 선택할 때 경제학은 필수적인 학문이지만, 교과목으로 경제학을 선택하는 학생은 전체의 5%에 불과합니다. 무턱대고 경제학은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올해 처음 고인돌 강연을 맡은 박정호(사진)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연구원은 청소년들이 경제학 관련 지식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같이 말했다. 직업과 진로선택 그리고 경제학의 상관관계에 대해 그는 “4차 산업혁명으로 경제·사회의 환경이 격변하게 되면 현재 전망이 밝은 직업이 10년 후에도 계속 유망한 직업으로 남아있을지는 의문”이라면서 “산업과 기술의 흐름을 배우는 경제학에 대한 지식은 기술발전으로 인한 격변의 시대에 직업을 선택하고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은 서울경제신문 부설 백상경제연구원과 서울시교육청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생애 주기별 인문 아카데미로 올해로 5회째다.
2013년 출간한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총 2권, 한빛비즈 펴냄)’로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한 그는 예술, 문학, 디자인 등 인문학적 사례를 빌려와 경제학을 풀어내 ‘어렵다’고 여기는 막연한 선입견을 걷어내는 데 한 몫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로 사회적 기업을 설명하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서 분업과 생산방식의 개념을 풀어낸다.
국책연구소의 전문연구원 역할과 외부의 대중강연을 진행하느라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지만, 그는 생활 속 경제 지식을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사법연수원의 법관들은 물론 산간도서지역의 중고등학교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간다. 박 전문연구원은 “경제학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복잡한 수식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 진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경제학은 수학에 대한 부담이 압박으로 다가와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과목”이라면서 “수요공급의 법칙, 가격변화 등 경제학 원론에 등장하는 이론과 수식을 가르치기보다 역사, 문학, 예술 등 보다 유연한 상황을 예시로 제시하면 좀 더 쉽게 경제학 개념을 가르칠 수 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인 판단의 이론적인 근거가 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좀 더 편하게 경제학에 다가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6일 경동고등학교에서 열린 ‘세상을 보는 눈, 경제학’ 첫 강의에서 그는 단군신화에서도 경제학적인 요소를 찾을 수 있다는 설명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이날 강의는 서울시교육청 어린이도서관에서 지역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준비했다.
“단군이 이 땅에 올 때 혼자가 아니라 풍백과 우사 그리고 운사와 함께 왔어요. 자세히 보면 그들은 날씨를 관장하는 인물들이지요. 당시의 시대를 되돌아보면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이자 경제활동은 농사이며, 농사를 잘 짓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신화에서 강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통치 이데올로기가 담겨있는 건국신화, 즉 한 나라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경제라는 의미입니다.” 방과 후 도서관에 모인 학생들은 ‘경제학이 이렇게 쉬운거였어?’ 하는 눈빛으로 강의를 듣고 있었다.
경제학, 경영학 그리고 산업디자인을 공부한 박 팀장은 강의가 끝난 후 “학생들은 강의 내용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어 자신들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학과에 대한 설명이 더 도움이 된 것 같다”면서 “경제학과 경영학의 연구분야, 졸업 후 일자리 등에 대한 설명에 더 귀를 기울였다”고 전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묻자 그는 “적극적인 경제활동의 주체가 되고 건전한 소비자가 되는 데 필요한 생활 속 경제지식을 널리 전파하고 싶다”면서 “변하는 시대적 흐름에 떠내려가지 않고 사리분별을 해 가면서 스스로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지식이기 때문”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서울시교육청 산하 21개 도서관과 30여개 중고등학교를 찾아가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다양한 주제를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풀어내는 강좌를 오는 12월까지 개설해 나갈 예정이다./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