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실존 인물, 실제 역사를 다뤘기 때문만은 아니다. ‘역적’은 지난겨울부터 봄까지 함께 겪은 탄핵 정국을 떠올리게 했다. 현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와 닿는 상황과 대사들이 있었다. ‘역적’ 속 홍길동 사단의 성공은 그래서 특별했다.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는, 궁극적으로 같은 꿈을 꿈꾸는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주고 위로를 남겼다.
#1. 백성이 주인이다
“홍장군, 내 평생에 오늘처럼 신나고 상쾌한 날이 없었소. 오늘에야 처음으로 내 맘 가는대로 하고 살았소”
지난 26회에서 홍길동 사단은 관군과 맞섰다. 여기에 백성들이 힘을 보탰다. 전투를 배운 적은 없지만, 자신들을 지키려는 싸움에서 팔짱끼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 과정에서 한 백성이 목숨을 잃었다. 길동은 죽어가는 그에게 “이보시오. 이름이라도 일러주고 가시오. 내가 이름을 모릅니다”라며 이름을 물었다.
이날 방송은 해당 배우를 엔딩에 비췄다. 드라마의 주제가 효과적으로 드러난 연출이었다. 극 중 이름도 알리지 못한 단역의 존재감은 강렬했다. 무명배우가 맡은 단역일지라도 작품에 기여하는 바는 동등하다는 것을 일러줬다. 한 작품을 이루는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시청자들에게 진정한 주인의식을 던졌다.
#2. 당연한 차별은 없다
“겪어보니 어때. 아프고 울고 싶고 화가 나지. 그게 당연한 게야. 인간이라면 이런 대접을 받고 참을 수는 없는 게야”
참봉부인(서이숙 분)과 정학(박은석 분)은 신분에 따른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인물들. 길동과 길현 형제로 대변되는 약자들을 무시하고 천대해왔다. 세상이 바뀌고, 노비로 전락하게 된 두 사람은 비참한 삶을 살게 됐다. 참봉부인은 염병에 걸려 죽었고, 정학은 복수하겠다고 낫을 들었지만 감옥에 갇히는 신세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길동이 남긴 대사.
기득권 세력에게 경종을 울리는 한 마디였다. 조선시대는 계급 사회다. 낮은 신분은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였다. 과연 현재라고 다를까. 이제는 새로운 권력이 신분제를 대신했다. 권력의 종류도 다양하다. 직업과 자산은 물론 성별과 출신지역, 성적지향성까지 포함한다. 길동이 정학에게 요구한 것은 역지사지의 정신이었다. 미처 인지하지 못한 차별의식을 돌아볼 계기를 마련했다.
#3. 모이면 가능하다
“홍.첨.지.뎐”
누군가는 ‘역적’을 홍길동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역적’은 홍길동이 아닌 모든 홍첨지의 이야기였다. 가령이 쓴 이야기책의 제목이 ‘홍길동전’이 아닌 ‘홍첨지전’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소부리(박준규 분), 용개(이준혁 분), 일청(허정도 분), 세걸(김도윤 분), 끗쇠(이호철 분) 등 홍길동 사단을 비롯해 왕에 맞선 향주목 백성 모두가 홍첨지였다.
영웅 한 명이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다. 길동을 중심으로 힘을 모은 백성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추운 날씨에도 광화문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주말마다 모인, 총 천오백만이 넘는 촛불 말이다. 불가능해 보였던 왕권 교체, 헌정 사상 최초 대통령 탄핵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4.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금세 잊으셨소.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겠다 했지요”
길동과 평성군(최대철 분)에게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다. 폭군에게 벌을 내리자는 것. 이들은 연산을 끌어내리고 진성대군을 왕위에 올렸다. 이후 홍첨지들은 한가한 세월을 보냈다. 술을 먹고 게임도 했다. 그러다가도 백성들의 울음소리가 커지면 다시 나타났다. “평성군이 신선놀음을 한다. 뇌물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응징했다.
‘역적’은 마지막 회의 마지막 장면까지 깨달음을 줬다. 나란히 선 홍첨지들은 “끝이 있냐”며 “우리 홍첨지들은 이제 시작이요”라고 마무리 지었다. 국민들은 지난 탄핵 정국을 거치며 원하는 바를 이뤄냈다. 대선까지 치른 지금, 드디어 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역적’은 견지했다. 되찾은 주인의식, 권력에 대한 경계를 놓치지 않았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