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국민가수 장 자크 골드만의 노래 ‘일생 동안’이다. 뮤직 비디오를 보면 프랑스의 청년층과 기성세대가 나뉘어 서로 말싸움을 벌이듯 노래를 주고 받는다. 갈수록 생활 수준이 떨어지는 젊은 층과 한 때 성장을 일궜던 기성 세대간 갈등을 담고 있다. 한국에서도 세대 갈등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이번 대선도 ‘진보 대 보수’가 아닌 세대간 대결이었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하지만 한국의 세대 간극도 어느 한쪽의 편협함 때문이 아니라 서로 내밀한 속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청년층과 장년층 인터뷰와 최근 인크루트의 300명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어른 세대와 청년 세대가 서로에게 말하고 싶은 얘기들을 34가지로 정리해봤다..
[드로잉]세대갈등, 그들이 말하지 않는 이야기. 청년과 어른의 말못한 속마음 중 8가지 사례를 꼽아 영상으로 제작했다. |
청년들은 말한다. 어른들과 대화할 때 뭔가 답답하고 공감받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고. 단지 나보다 나이가 많고, 직함이 높다는 이유 외에 평가절하되는 불편한 시선을 느끼게 된다고. 우리들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서운하다. 여기 청년들이 맘속에 품고 있는 여덟가지 이야기가 있다.
13. “논리적으로 대답하는 건 따지는 게 아니에요”
어른이 말씀하시면 먼저 몸을 조금 낮추고 예의를 갖춘 뒤 얘기를 듣지만 어른들은 내 말을 듣지 않기도 한다. 한 번은 엄마와 한 번 크게 싸우고 다시 대화를 하려는데 답답해서 말을 이으려고 하자 “엄마 말 먼저 듣고 너 말 해”라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나도 빈정이 상할 수밖에 없고 주어진 시간에 잽싸게 말하려니 말이 빨라져 제대로 의사 전달이 안 된다.
어른들은 내가 먼저 말하면 내 말을 자르거나 논리적으로 반박할 경우에는 따진다고 욕먹는다. 결국 나만 혼나게 된다. “어른에게 건방지게, 버릇없이”라는 대답으로 돌아오면 더이상 대화하기 싫어진다. 젊은 사람들이 소통할 노력을 안 한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들은 수도 없이 얘기한다. 젊은 사람들의 자기주장이 없는 게 아니라 주장할 창구를 제대로 만들어주지 않는 건 아닐까.
14. “정치 참여에 대한 이중잣대”
부모님은 자식들이 사회 운동을 하는 것을 굉장히 꺼린다. 부모님이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했던 세대라 누구보다 진보적인데도 정작 자식이 사회운동을 하는 것은 강하게 반대한다. 부모님이 운동하다 투옥되신 적도 있고 학교를 다니며 불이익을 받았던 부분도 있다고 하신다. 물론 자식의 불이익은 감당하기 싫은 것도 일면 이해한다. 하지만 반대로 “요즘 청년들이 정치 참여도 안 하고 다들 자기 편한 것만 찾으려고 한다”고 비판하시는 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불편한 이중잣대가 정치에 참여하기도, 않기도 애매한 측면이 있다. 어른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우리가 주의 깊게 듣고 있다는 걸 잘 모르시는 것 같다.
15. “충동적 소비를 하는 건 소비 물정 모르는 게 아니예요”
화나면 충동적으로 비용을 지출하는 ‘시발비용’, 현재의 행복을 중시하는 ‘욜로족’ 등 젊은층을 비판하는 어른들이 많다. 한 번은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아서 질렀다’고 하자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상사의 시선을 느꼈다. 그는 다른 자리에서 “요즘 애들은 세상물정을 잘 몰라. 한 푼이라도 아껴서 모아야 하는 걸 모르고...”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그분께 말하고 싶다. 젊은 사람들이 인지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 소비를 하는 게 아니라고! 나도 평소에는 꼼꼼하고 합리적으로 소비한다고. 사실 충동적 소비 규모는 어른들이 더 심하지 않나? 우리보다 더 큰돈을 갖고 있어 순간 잘못 사용했다간 훨씬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자주 노출된다.
16. “오타쿠 갖은 취미생활을 무시하지 마세요”
어른들은 요즘 젊은 세대가 갖고 있는 취미에 쓰잘데기 없다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사회적 소통이 부족하고 자기 취미에 골몰하는 스타일을 ‘오타쿠’라고 하는데 그 수가 요즘 들어 더 많아진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페이스북, 익명 게시판 등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도 있다. 과거에는 마을 단위로, 쉬쉬하고 감추고 오타쿠의 생활이 밖으로 크게 노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특별한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고 SNS에 실시간으로 각자의 감정을 쏟아낸다. 그러다 보면 독특하다고 평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외부로 노출된다. 돌출적인 발언을 하는 젊은층을 욕할 게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해줘야 한다. 원래 인생은 다양한 개인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하지 않나.
17. “고가의 물건을 산다고 사치가 아니에요”
부모님은 나의 작은 사치에 대해 세세하게 이유를 묻기보다 왜 불필요한 물건을 사 오느냐고 먼저 말한다. 나는 향수를 모으는 것이 취미인데 그 취미를 어른이 이해하지 못한다. 어른들에게는 고가의 물건으로 인식되지만 우리 세대에는 그렇게 비싸지 않다. 미니어처도 있고, 시리즈로 사면 저렴하게 살 수도 있다. 나를 위한 작은 사치를 하면 보상받는 기분에 더 긍정적으로 살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나만의 유쾌한 세상살이 방식이라고 이해해주지 않으면 더 이상 말하기 싫어진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니라 단순 소비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18. “긍정적인 경험을 한 적이 별로 없어요”
한 번은 강연을 듣는데 강연자가 젊은 친구들은 평소 부정적이고 불만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력이 부족하다고,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내 노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더 억울한 것은 사실 우리 세대는 돌이켜보면 제대로 편하게 논 적도 없고 어릴 때부터 공부하고 줄 세우기 경쟁하느라 피곤에 절은 세대라는 점이다. 돈을 버는 재미도, 세상 알아가는 재미, 배우는 재미도 제대로 느낄 틈이 없었다. 늘 눈앞에 놓인 숫자의 경쟁 속에서 자기주장 제대로 내세워본 경험도 없다. 그런 우리에게 ‘부정적이고 불만이 많다’니. 그렇게 느끼지 않는 시스템 속에서 자랐다면 아마 나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19. “위로가 필요한 게 아니라 위로 듣는데 지쳤을 뿐”
극심한 취업난이 힘들다고 말하면 그 때는 위로를 해준다. 처음에 공감해주지만 취업에 필요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따져 들어갔을 때 결국 ‘내가 준비를 못해서’인 걸로 돌아온다. 만일 내 상황을 정말 100% 이해했다면 절대 핀잔은 주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어른들이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은 감사하지만 결국은 ‘내 노력이 부족하다. 너무 끈기가 없다’라는 문제로 좁혀진다. 그러면 어른들의 위로와 이해도 부담스럽게 된다. 나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위로도 이해도 듣기가 싫다.
20.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건 어른들 말을 잘 들었기 때문”
요즘 세대를 두고 어른들은 행동력, 실천의식이 약하다고들 말한다. 투표율이 가장 낮은 게 20대인 게 맞긴 하다. 지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도 20대가 촛불 집회에 나오지 않아 ‘20대 개새끼론’이란 말도 나왔다. 하지만 분명 어른들이 20대를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게 만든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이상적이다. 한국에서 정치는 할 것이 못 된다.”고 매번 말한다. 어쩌면 우리 세대가 정치에 무관심하게 된 게 어른들 말을 너무 잘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매번 그런 말만 듣고 보호 속에서 자랐다. 심지어 학교 학생회에 참여하는 것도 시간 낭비라 말리는 사람이 있다. 자꾸 ‘시간 낭비’란 생각에 정치적 연대가 약해진 것 아닐까.
/정수현기자 박신영인턴기자 value@sedaily.com [음원 협조=월간 윤종신·미스틱엔터테인먼트]
◇시리즈 더 보기
<1>청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0가지(직업 편)
<2>청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0가지(회사 편)
<4>어른, 그들이 말하지 않는 14가지(소통 편)
<5>어른, 그들이 말하지 않는 14가지(회사 편)
<6>어른, 그들이 말하지 않는 14가지(꼰대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