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홍 특사를 만난 자리에서 북핵 문제를 놓고 “지금은 압박과 제재 단계에 있지만 어떤 조건이 되면 ‘관여(engagement)’로 평화를 만들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홍 특사를 15분간 직접 만나 이같이 말했다고 홍 특사는 기자들에게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언급하면서 ‘평화’라는 단어를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단 북한과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전제를 달았다.
이는 북측의 태도 변화에 따라서는 미국이 현재의 대북 압박 기조를 대화 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다. ‘최대의 압박과 관여’라는 기존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까지 대북 제재와 압박에 초점을 맞춰온 데서 한발 물러나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문재인 정부와 중국이 견지해온 북핵 해법과의 접점을 찾기 위한 미국 측의 태도 변화를 예고한 것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감지되는 이 같은 변화는 트럼프 정부가 대북 포용에 무게를 두는 문 대통령의 정책 방향을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지만 한편으로는 ‘러시아 커넥션’으로 궁지에 몰리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반도 이슈를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내에서 옴짝달싹하기 어려워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최대 안보 위협으로 일찌감치 지목한 북한 문제를 전면으로 앞세워 자신의 리더십을 과시하려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 문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 대해 “굉장히 좋은 느낌을 받았다”고 평하고 홍 특사가 전달한 문 대통령 친서에 대해서도 “친서가 아름답다”고 감탄하며 “아름다운 친서를 보내줘 고맙고 잘 읽어보겠다”고 화답했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 특사를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접견한 것은 처음으로 알려졌으며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실세로 꼽히는 제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함께 배석하는 등 예우도 극진했다.
홍 특사는 면담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고 전했으나 별도로 40여분간 회담을 가진 맥매스터 보좌관에게는 “사드 배치에 대해 국내 절차상 논란이 있고 국회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얘기했다”면서 “비용 문제는 제기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한국의 사드 배치에 그런 절차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홍 특사는 전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