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 불법 유턴과 네거티브 규제

전인식 대한상공회의소 규제혁신팀장



내비게이션 없는 운전을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원하는 곳까지 정확히 안내해주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교통법규 위반으로 인한 과태료 걱정도 없다. 단점이라면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정도다. 맛집 탐방차 들른 어느 도시에서 목적지를 지나치니 어김없이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서 돌아오란다. 차량이 드문 곳이라 적당히 유턴하다 단속에 걸려 낭패를 보고 말았다. 내비게이션 말대로 하지 않은 후회도 컸지만 별다른 위험도 없는 곳까지 왜 유턴을 금지해놓았는지 하는 의문도 컸다.

불편해도 안전을 위해 법을 촘촘히 만드는 게 맞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법을 조금 느슨히 하고 개인의 재량을 넓혀주는 것도 딱히 틀린 것 같지는 않다. 실제 영국의 경우 사고위험이 높은 일부 지역만 유턴을 금지하고 여타 지역은 운전자의 판단에 맡긴다. 우리 교통법규가 유턴할 수 있는 장소(positive list)를 정하고 그 외는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방식이라면 영국은 유턴할 수 없는 장소(negative list)만 정하고 그 외는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인 것이다. 국가별 문화나 여건에 따라 선택하면 될 일이다.


4차 산업혁명 대비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규제방식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별 4차 산업혁명 적응 순위에서 한국은 139개국 중 25위로 경쟁국에 크게 밀린다. 전문가들은 규제가 걸림돌이라고 한다. 새로운 산업 분야를 개척하는 데는 기업의 자율과 창의가 중요한데 우리는 여전히 ‘정한 것만 하라’는 식으로 규제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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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예가 유전자 치료 분야다. 유전자 치료의 연구범위를 암 등 주요 질병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고 소비자가 의료기관 경유 없이 검사를 의뢰할 수 있는 대상도 탈모·비만 등 12개로 제한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연구나 사업이 어렵다며 해외로 ‘규제 피난’을 간다는 얘기가 나온다.

다행히 새 정부는 신산업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겠다고 한다. 물론 개인정보나 생명윤리·안전 등 신중히 접근해야 할 과제도 많다. 그렇다고 날로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우리 기업만 손발을 묶어 둘 수는 없다. 기업의 자율성은 최대한 보장하되 책임도 강화하는 방향으로 규제의 틀을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전인식 대한상공회의소 규제혁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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