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가장 편당 비행 시간이 긴 항공 노선의 비행 시간은 17시간 30분이다. 지난 2월 개통된 뉴 질랜드의 오클랜드-카타르의 도하 간 노선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곧 깨질 것이다. 조만간 19시간짜리 싱가포르-뉴욕, 20시간짜리 시드니-런던 노선이 개통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초장시간 항공 여행은 효율과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승객들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기도 하다. 이런 항공 여행, 과연 공공 보건에 악영향은 없을까?
물론 항공 여행이 건강에 미치는 위험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게다가 1시간 더 비행기에 머물러 있는 다고 건강에 큰 위험이 오는 것은 아니다.
항공우주 의학 협회의 전 회장이자 항공우주의인 패넌시 앤절론은 “물론 비행시간이 1시간 더 늘어난다고 건강에 크게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장시간 비행에 나서기 전에는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비좁은 좌석에 오래 앉아 있으면 불편할 뿐 아니라, 심부정맥 혈전증이 일어나기 쉽다. 심부정맥 혈전증이란 피가 잘 순환되지 않아 다리 속 혈관에 혈전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을수록 위험은 더욱 커진다. 최악의 경우에는 혈전이 튀어 나와 폐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다행히도 그런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일어서서 돌아다니거나 다리를 굽혔다 펴주면 그런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
앤절론에 따르면 “승객들은 3~4시간마다 한 번씩 일어나서 기내를 돌아다닐 필요가 있다. 또한 자리에 앉아서 바닥에 발뒤꿈치와 발 앞끝을 교대로 대며 다리를 까닥거리기만 해도 심부정맥 혈전증의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단, 비행 중에 쉽게 찾기 마련인 음료수인 소프트 드링크, 술, 커피는 피하는 것이 좋다. 이뇨제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에 오줌을 많이 배출시킨다. 앤절론 에 따르면 “장시간 비행을 나서기 전날에 수분을 충분히 섭취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비행기 내의 공기는 매우 건조해 인체에서 수분이 빠져나가기 쉽다. 때문에 세균을 잡아주는 점액막도 마르기 쉽다. 그렇게 되면 다른 승객으로부터 감기나 그보다 더 심한 전염병이 옮기 쉬워진다. 앤절론은 “비행시간이 오래 흐를수록 다른 승객들과의 노출도는 늘어나게 되며, 그러면 감기 등에 전염될 확률도 높아진다.”고 한다.
따라서 만약 옆자리에 탄 승객이 환자라면 정말 재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항공기의 공기 순환 장치를 통해 병원균이 퍼진다는 생각은 근거 없는 미신에 불과하다. 독일 쾰른 대학의 마취과 교수이자 독일 항공우주 의학회의 회장인 요헨 힝켈바인은 “객실 내 공기 순환과 흐름은 매우 정밀하게 조절되어 있다. 따라서 두 줄 떨어진 곳에 환자가 앉아 있더라도 그 사람의 병이 옮을 위험은 보통은 그리 크지 않다.”
식탁, 화장실, 기타 세균이 묻어 있고 접촉할 확률이 높은 표면에는 오히려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항공사에서는 비행 후 이런 표면을 닦아낸다. 앤절론은 “경험에 따르면 대형 항공사에서는 장시간 비행을 한 항공기 내부는 가급적 철저히 청소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여행시 물티슈나 소독제를 휴대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가급적 기체 내부를 만지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우주선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다. 비행을 한 번 할 때마다 탑승자들은 미세한 우주 방사선에 노출된다. MIT의 항공우주공학자인 스티븐 바레트는 “비행기를 많이 탈수록 더 많은 방사능에 노출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항공 여행객들이 1년 동안 받는 방사능 수치는 권장치 이내다. 바레트는 승무원들이 노출되는 방사능 수치를 계산해 보고 이렇게 말한다. “장시간 항공 여행을 매우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권장치 이상의 방사능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건강에 문제가 될 수준은 아니다.” 이만한 방사능의 구체적인 유해성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밝혀진 바가 없다고 그는 말했다.
조종사와 승무원들은 하늘에 머무는 시간이 일반인보다 매우 길기 때문에, 미국 질병관리예방본부는 이들을 방사능 노동자로 분류하고 있다. 질병관리예방본부는 승무원들의 장시간, 고공, 극지방 상공 운항 시간을 제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리고 항공기 내의 기압은 해발 기압보다 낮다.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밀도가 낮은 공기는 노인 또는 심장질환자나 기타 환자들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결국 비행시간이 길수록 건강에 문제가 생길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최신 여객기들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에, 탑승객들 중 누군가가 응급 상황을 당할 확률도 그만큼 높다.
힝켈바인은 말한다. “여행은 갈수록 대중화되어, 질환이 있는 노인들도 갈수록 편리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건강치 못한 사람들에게 이상적이지 않은 기내 환경 설정, 갈수록 고령화되어 이런 저런 질환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 항공기 내에서 움직이지 않고 음료수도 거의 마시지 않는 여행 태도라는 좋지 않은 3박자가 구비되었다.”
얼마 정도나 비행하면 안전치 않은 걸까?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없다. 개별 여행객의 몸 상태에 따라 다르다. 힝켈바인은 말한다. “그러나 내가 볼 때는 12~14시간까지는 누구나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만약 그 이상 비행하게 되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항공기에서 발생하는 의료 문제의 약 절반은 기절이나 어지럼증 등의 심장 질환이다. 비행 중 응급 상황 발생 확률은 계산에 따라 다르지만 승객 1만 명~4만 명 당 1명꼴이다.
항공기에는 응급 상황을 대비해 제세동기 등의 의료 도구와 장비들이 구비되어 있다. 앤절론은 “장시간 비행을 하는 항공기에서는 누구나 무전기를 통해 지상의 의사와 교신할 수 있다. 나도 기내에 환자가 발생한 조종사들과 교신, 문제 처리 방법과 항로 변경 여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내에서 환자가 발생했을 때 쓰는 기록 서식을 갖춘 항공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힝켈바인은 말한다. 그는 기내에서 의료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사용할 표준 서식과 국제 기록 양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 것이 구비되어야 비행 중 기내에서 의료 문제를 발생시키는 주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승객들은 가장 긴 비행시간을 자랑하는 노선도 문제없이 이겨낸다. 앤절론의 말이다. “대형 항공사에서는 승객들을 안전하게 나르고 있다.”
사실 항공기가 가장 큰 건강상의 악영향을 끼치는 대상은 승객이 아니다. 항로 아래, 항공기로부터 무려 수 km 아래 지면에 있는 사람들이다.
바레트는 말한다. “항공기로 인해 건강에 가장 악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항공기에서 나온 배출물에 노출된 지상의 사람들이다.” 그가 동료들과 함께 추측한 바에 따르면 항공기로 인한 대기 오염으로 인해 매년 16,000명이 죽는다고 한다. 항공기 배출물은 폐암과 심폐 질환의 원인이 되며. 이착륙은 물론 순항 고도를 비행하는 항공기에서도 배출된다.
그러나 초장시간 비행은 중간기착지가 있는 루트에 비하면 배출물을 덜 생성한다. 바레트의 말이다. “건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직항편이 나을 수 있다. 고공에서 나온 배출물도 지상의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항공기 이착륙과 유도로 주행 시 나온 저공 배출물은 사람들의 생활 공간과 더욱 가까운 곳에서 배출되므로 건강에 미치는 타격이 더욱 크다.”
항공기로 인한 오염을 줄이기 위한 화끈한 해결책 중에는 전기 항공기가 있다. 전기 항공기는 비행 중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기 항공기는 유감스럽게도 가장 긴 비행거리를 자랑하는 기술은 아니다.
바레트의 말이다. “전기 항공기의 항속거리는 잘해봐야 1,852km다. 그러니 전기 항공기는 장시간 비행에 사용되기가 힘들다. 이렇다 할 실질적인 답은 보이지 않는다.”
비행이 건강에 가하는 위험 요소는 거의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몸으로 느낄 수 없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 / by Kate Baggal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