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는 김영란법 개정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의 뜻이라고 보고 있다. 김영란법은 유지 또는 폐지, 개정에 대한 찬반 여론이 동시에 존재해 ‘힘’을 가진 대통령이 의견을 제시해야 일관된 방향성을 가진 논의가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주자이던 지난 1월 “농축수산물의 경우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농축수산업이 위축될 뿐만 아니라 유통에 종사하는 영세상인들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도 이달 2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영란법)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면서 “취임하면 곧바로 검토하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이 후보자는 전남도시자 시절에도 농축수산 농가 피해가 우려된다며 김영란법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여러 차례 낸 바 있다.
이 같은 문 대통령과 여권의 분위기로 볼 때 김영란법 개정의 최우선 목표는 1차 산업과 관련 유통업에 종사하는 영세상인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범위를 보다 넓히면 외식업 등 내수 전반의 위축을 막는 것이 법 개정의 방향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은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 등을 대상으로 하며 이 법의 시행령은 음식물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등 이른바 ‘3·5·10’을 한도로 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은 시행령 개정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뤄졌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3·5·10’을 ‘5·10·10’으로 상향하면 고가 음식을 파는 식당과 농축수산 및 화훼업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농축수산업계는 선물 가액을 10만원으로만 올려도 명절 때 한우나 굴비를 소포장 선물세트로 만들 수 있다고 호소했고 화훼 농가 역시 한도를 10만원으로 올리면 경조사 화환과 승진 축하 난 판매가 위축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권익위가 시행령 개정을 통한 가액 상향이 아닌 법 개정 검토 필요성을 국정자문위에 보고하면서 수술의 범위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농축수산물을 법 적용 대상에서 빼는 내용의 법 개정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보고 있다. 농축수산물과 농축수산 가공식품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가 애매하고 고가 농축수산물이 새로운 청탁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축수산물을 제외할 경우 외식업계가 반발할 것도 뻔하다.
전문가들은 법 적용 대상 직종을 축소하는 쪽을 보다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고 있다. 공직자와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할 게 아니라 ‘공직자’로 법 적용 대상을 한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여론의 거센 반발이 나올 것으로 예상돼 법 개정 동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