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지난 24일 가인의 소속사 미스틱엔터테인먼트가 내보낸 공식입장에서였다. 당시 미스틱엔터테인먼트는 “가인이 건강상의 이유로 부득이하게 행사 불참을 결정했다”며 “병원 측의 권유로 입원 치료를 한다”고 밝혔다. 전혀 문제 될 것 없는 입장 발표였다. 일반 직장인들도 아프면 병가를 내는 것이 당연한 권리. ‘쾌차 하세요’ 정도의 댓글이 달리면 될 문제였다.
그런데 공식 입장을 담은 기사의 댓글 방향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가인이 입원하게 된 이유가 임신 때문 아니냐는 것. 과거부터 적지 않은 여자연예인들이 휘말렸던 논란 중 하나다. 더군다나 가인은 현재 배우 주지훈과 공개연애 중인 상태. 임신한 것 아니냐는 추측성 댓글은 물론 그로 인해 파생된 성희롱 댓글도 적지 않았다. 눈살 찌푸려지는 광경이었다.
가인은 이에 가만있지 않았다. 3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임신 관련 내용이 언급된 댓글을 캡처해서 올렸다. ‘사람들 왜 그러냐, 아프다면 아프구나 그냥 그래라. 제발 또 무슨 결혼이니 임신이니 하고 있냐’는 댓글에 ‘가인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연예계는 하도 더러워서 비밀리에 임신해서 애 낳고 또 아무렇지 않게 복귀한다’는 답글이 달려있었다.
해당 댓글은 ‘가인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라고 전제했지만, 전체 댓글의 방향은 그렇지 않았다. 가인이 정확한 병명을 알리지 않은 것을 탓하며 그를 비롯한 여자연예인들에게 화살을 돌렸다. 결국 가인은 진단서까지 공개해야만 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진단명: 폐렴, 공황 발작을 동반한 불안장애, 불면증’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동안 여자연예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아왔다. 이는 가인이 추가적으로 올린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가인은 “모든 여자연예인들이 산부인과를 숨어 다녀야 합니까. 내과나 외과는 그냥가면서”라며 “임신은 축복할 일입니다. 근데 전 임신이 아니구요. 모든 여자연예인 분들이 당당히 병원을 갔음 합니다”라고 답답한 심경을 전했다.
가인의 글이 여자연예인들의 고충을 대변했다. 연예인이 아닌 일반 여성들 중에서도 산부인과에 대한 편견어린 시선 때문에 병원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연예인들은 어땠을까. 눈길이 무서워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삶,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삶이 과연 인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여자연예인들은 ‘인간답지 못한 삶’을 참아야만 했다. 좋지 않은 일로 화제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긴 기간을 별다른 대응 없이 인내했다. 그러나 루머가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이 견뎌야하는 정신적 고통, 이미지 실추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잠잠해지기는커녕, 수위가 더욱 세지는 상황이었다. 드디어 연예인들의 대응이 다른 국면을 띄기 시작했다.
올해 초, 인터넷 방송 BJ에게 상습 성희롱 피해를 받은 아이유의 소속사 로엔엔터테인먼트는 “여성 아티스트에 대한 성적 희롱 및 악의성 짙은 비방 등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불건전한 표현들로 이를 공개할 시 아티스트 본인 및 가족, 팬들께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돼 공개할 수 없었다”며 그동안 침묵했던 이유를 밝힌데 이어 “선처 없는 강력한 법적 대응을 통해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와이스, 에이핑크 등 걸그룹들도 마찬가지의 입장을 밝혔다. JYP엔터테인먼트와 플랜에이엔터테인먼트는 각각 ‘악성루머, 허위 사실 및 인신 공격성 발언, 성희롱 수위에 해당하는 모든 게시글’과 ‘여성으로서는 도저히 견디기 힘들 정도의 성적수치심을 발생시키는 매우 충격적인 내용의 댓글’에 법적 절차를 토대로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플랜에이 측에서는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한 타인의 비방행위를 감수해야만 했던 지위에서 탈피하겠다”며 “단순히 에이핑크 및 연예인으로서의 일이 아니라 여성 전체에 대한 모욕행위로서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며 이 같은 문제가 특정 연예인에 국한된 것이 아닌 사회적 화두임을 시사했다.
가인은 이번 일에 대해 “고소할 생각은 없다”고 했지만, 소속사 미스틱엔터테인먼트는 “가인을 향한 악성 댓글과 관련, 회사 입장에서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만약 소속 아티스트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악성 댓글 작성자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할 의도가 있는 것을 암시한 부분이다.
여자연예인에게 보이는 성적 모욕의 수위는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수준. 이제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며 ‘선플’을 독려하는 시대는 끝났다. 악플러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개화할 것을 기다리기에는 피해가 너무나 크다. “무심코 던진 돌은 본인에게 바위로 되돌아 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
가인이라고 이번 해명이 쉬운 일이었을까. 본인 입으로 루머를 언급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앞으로도 더욱 많은 여자연예인들의 ‘당당한 대응’을 응원하는 바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