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결혼한 직장인 이모(36) 씨는 올해 초 한 기혼녀와 만남을 가졌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대낮에 만난 두 사람은 식당에서 술 몇 잔을 주고 받은 후 인근의 모텔로 향했다. 스마트폰 ‘랜덤채팅 앱’으로 대화를 나누며 시작한 관계가 불륜이라는 돌아오지 못할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차를 써가며 낮에 만나 불륜을 저질렀다. 밤이면 서로의 배우자 곁으로 돌아가 가정에 충실한 연기를 하는 중이다.
스마트폰 랜덤채팅 앱이 불륜의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메마른 이들에게 대화의 장을 마련해 주려는 앱의 원래 목적은 온 데 없다. 기혼자가 불륜 상대를 찾는 앱으로 성격이 변한 지 오래다. 신분 확인 절차 없이 가입이 가능해 익명성이 보장되고, 다른 기혼자와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해서다.
앱 내에서 이뤄지는 대화를 살펴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다운로드 횟수가 100만을 넘어선 T 채팅앱에는 기혼임을 밝히고 불륜 상대를 찾고 있음을 암시하는 프로필을 가진 사용자가 태반이다. ‘서울입니다. 낮에 봐요.’라는 내용부터 ‘39세, 187cm, 88kg.’ 같이 본인의 외형을 설명하는 형식까지 그 종류는 다양하다.
가입하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만큼 간단하다. 20대 남자인 기자가 30대 중반의 기혼 여성으로 가입해도 아무 제약이 없었다. 사용자의 프로필은 서로에게 모두 공개되는 시스템이다. 가입과 동시에 쪽지가 쏟아졌다. 5일 동안 700통이 넘는 쪽지를 받았을 정도다. “안녕하세요. 37세, 180cm, 74kg. 서울 기혼, 외모 스타일 매너 겸비 증권맨이에요. 두근두근 달달한 데이트 할까요?”와 같은 쪽지는 양반 수준이다. “낮저밤이 스타일, 삶에 활력소 돼줄 분 찾아요”부터 “화끈 훈남입니다. 비밀 지키는 연애 하고 싶어요”까지 직설적이고 퇴폐적인 내용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답을 하면 대화는 더 노골적으로 변한다. 기혼자가 맞느냐는 질문에는 자녀의 사진이나 결혼사진까지 바로 보내왔다. 한 번 답장을 해주면 만나보자거나 사진을 보내달라는 등의 요청이 계속된다. 이런 식으로 시작된 대화가 잘 풀릴 경우 오프라인 만남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간은 주로 대낮. 회사에 반차휴가를 내거나 자녀 등교가 끝난 후를 이용하는 것이다. 밤에는 평상시처럼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배우자로서는 불륜을 의심하기 쉽지 않다.
사용자가 늘면서 비슷한 앱 역시 많아지는 추세다. 7일 기준 안드로이드에는 245개, 애플스토어에도 100여개의 랜덤채팅 앱이 등록된 상태다. 대부분은 가입자의 신원을 확인하지 않는다. 불륜을 목표로 한 기혼자들의 방문은 그래서 끊이질 않는다. 지난 2015년 간통법이 폐지된 것도 이런 현상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다. 만에 하나 불륜을 들키더라도 형사 처벌을 피할 수 있어서다. 이에 대해 김미영 서울가정문제상담소장은 “간통죄 위헌 폐지 이후 외도에 대해 합리화하려는 인식 때문에 (채팅앱으로 인한 피해 상담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며 “특히 상대방에 대해 확인하는 절차 없이 간편하게 이뤄지는 랜덤채팅의 경우 성중독증에 쉽게 빠져들게 해 이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를 막을 대책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앱의 특성상 사용자의 기록을 저장하지 않는데다, 대화 내용 역시 개인 정보인 탓에 확인하기 어렵다. 앱 자체에 제재를 주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불륜 알선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서다. 가입자의 신원 확인 절차를 무조건 거치도록 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거나 앱 내부적으로 불륜이 일어나는 채팅을 차단하지 않는 이상 지금과 같은 상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법무법인 한음의 한승미 이혼전문변호사는 “간통법 폐지 이후 불륜 행위에 대한 죄의식이 옅어진 게 근본적 원인”이라며 “최대 위자료 수익을 높이는 등 법적 제한을 더 강화하지 않는 이상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순구·이종호기자 soon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