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무한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심우(心友·마음의 벗)이고 마음이 어지럽거나 삶이 흔들릴 때 안기면 평온과 생기를 얻게 해주는 안정제이자 활력소입니다. 이지러진 자아를 회복시켜주고 새 삶의 지혜와 깨우침을 주는 스승이기도 하죠.”
북한산 정상 백운대(836.5m)를 40년에 걸쳐 4,500회 등반한 노산악인 하정우(85)씨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어림잡아 1년에 120회, 월 10회, 주 2회가량 끊임없이 다닌 셈이다.
그는 “등산에 횟수가 뭐 그리 중요하고 또 무슨 자랑거리가 되겠느냐”며 “한 번을 오르더라도 진정으로 산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씨의 백운대 등정 4,500회 기록은 그가 산행일기를 체계적으로 작성한 지난 1976년부터의 기록이다. 백운대까지 오르지 않고 도중 하산한 산행은 적지도 않았다. 산행일기를 쓰기 전 5년간도 백운대 등정 60여회를 포함해 백두산·한라산·지리산·설악산 등 전국 200곳의 명산에 올랐으니 총산행은 5,100회를 넘어선다. 지리산과 설악산은 종주 5회를 포함해 각각 25회·30회 올랐다. 일본 북알프스는 야리가타케(3,180m)-오쿠호다가타케(3,190m) 종주를 포함해 4회 등정했다.
일본 홋카이도 다이세쓰산 등정, 안나푸르나 트레킹, 말레이시아 키나발루와 대만 옥산, 중국 황산·태산 등 세계 굴지의 산을 ‘80대’의 나이에 올랐다. 산에 올라 쓴 시조와 산행기를 모아 ‘산정무한 엮은 애산송-10년 산길의 편안한 행복’이라는 책으로도 엮어냈다. 책에서 그는 자신이 밟은 모든 산을 시로 묘사했다.
1933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하씨는 1953년 고시행정과(4회)에 합격해 20대 후반 경상도 지방의 군수를 지냈고 30대에는 부산시 국장을 지냈다. 민주공화당 정책위 전문위원, 국회 전문위원, 한국증권거래소 수석부사장을 지냈고 아세아투자자문 대표이사를 끝으로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빛나면서도 치열한 인생을 산 하씨는 30대 후반인 1971년부터 등산을 시작한 것에 대해 “공직생활을 하면서 삶이 팍팍하다고 느꼈고 그래서 주말마다 쫓기듯 어렵게 산에 다녔다”면서 “산은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지상 최고의 예술작품 같다”고 말했다.
하씨는 “체력이 뒷받침된다면 백운대 등정 5,000회를 이루고 싶다. 언젠가는 묻히게 될 산에서 삶이 끝나고, 그래서 죽는 순간 내 영혼이 산에 묻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