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방송되는 KBS1 ‘KBS스페셜’에서는 ‘오래된 기억, 6.15 남북정상회담’ 편이 전파를 탄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 한 달 사이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5차례를 기록했다.
한반도의 위기감이 점점 고조되고 있는 현재.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6월 15일을 맞아 잊혀진 ‘6.15남북공동선언’의 기억을 되살리고, ‘6.15남북공동선언’이 가지는 현재적 의미를 생각해본다.
▲ 피스메이커 임동원 전 장관이 전하는 6.15 남북공동선언 이야기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외교 안보 분야에서 자주국방을 설계하며 피스키퍼로서의 역할을 해온 임동원 전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후 분단 극복과 통일 이룩을 위해 힘쓰는 피스메이커로 거듭난다.
“당시 정부에서 선전을 하는 대로 (김대중 대통령을) 거짓말쟁이, 과격한 정치인, 빨갱이 이런 식으로만 생각해왔었죠.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거부하러 갔는데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 제가 완전히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예. 모시고 일하겠습니다. 이렇게 됐습니다.“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 통일부장관, 국가정보원장 등을 역임하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추진해 ‘6.15 남북공동선언’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낸 주역, 임동원 전 장관의 증언을 통해 현재 한반도의 상황처럼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던 당시 어떻게 한반도에 평화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는지 ‘6.15 남북정상회담’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 6.15 정상회담 결렬의 위기를 맞다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하지 않는다면 (북한에) 와서 김정일 위원장은 못 만난다. 이런 조건이었어요.“
- 임동원 전 국정원장(당시 대북특사)
6.15정상회담 직전 북측은 김대중 대통령의 금수산기념궁전에 대한 방문을 조건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에 합의했다. 그러나 금수산기념궁전 참배 문제는 남북한 양측에게 있어 양보할 수 없는 민감한 문제였다. 임동원 전 장관은 남한 국민들의 부정적 여론과 김대중 대통령의 지도력 약화를 이유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설득했지만 김정일 위원장은 이 문제에서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남쪽 국민의 정서만 정서입니까? 우리 북쪽 인민의 정서는 생각 안 합니까?“
- 김정일 국방위원장
임동원 전 장관은 서로의 강경한 입장 차로 인해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할 당시까지도 반세기 만에 성사된 6.15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될까 전전긍긍하게 했던 금수산기념궁전참배 문제가 어떻게 해결됐는지에 대한 숨겨진 일화를 공개한다.
▲ 만남과 대화, 한반도 평화 정착의 물꼬를 틀다
“지금 적들은, 외신들, 구라파 사람들은 자꾸 뭐라고 말하냐면 왜 은둔 생활을 하나 나는 외국에 비공개로 많이 나갔는데 나보고 은둔 생활을 한대. 그래서 김 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에서 해방됐다(고 해요). 좋아요. 그런 말 들어도 좋아요.”
- 김정일 국방위원장 / 2000.6.14
남북공동선언 제 2 항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 공통성 인정
“연방제로 즉각 통일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건 냉전 시대에 하던 얘기입니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 / 2000.6.14.
“주한미군이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군대가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군대로 지위와 역할을 변경한다면 환영합니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
6.15남북정상회담의 큰 성과 중 하나는 남북한의 두 정상이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고 공통점을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대화를 통한 남북관계의 개선이 가능한 일임을 방증한 것이었다. KBS스페셜에서는 주한미군에 대한 생각, 남북한 통일방안에 대한 생각 등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한다.
▲ 6.15 남북공동선언의 빛나는 성과, 그러나 지금은
6.15 남북공동선언은 많은 성과를 가져왔다. 분단으로 생이별을 했던 이산가족은 반세기만에야 겨우 다시 만났다. 남북 선수단은 분단 최초로 KOREA라는 이름으로 시드니 올림픽에 공동입장을 했고 남과 북에는 철길이 열렸다.
2003년, 북한의 군사적 요충지였던 개성에는 개성공단이 들어섰다. 개성공단은 분단 이후 대남방송을 하던 남북한 적대적 대결의 장을 경제적, 문화적 교류와 협력과 화해의 장으로 탈바꿈하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남북한 모두에게 큰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독일 동방정책의 설계자이자 집행자인 에곤 바 박사는 남북 간에 있어서 가장 잘한 일로 개성공단을 꼽기도 했다.
“남북 간에 있어서 가장 잘한 일은 개성공단을 만들어서 운영을 한다는 것이다. 왜 독일은 그 생각을 못했을까. 후회가 된다“
- 에곤 바(Egon Bahr) 박사 /독일 동방정책의 설계자 및 집행자
그러나 2016년 2월 10일 개성공단의 가동이 전면 중단되면서 6.15남북공동선언의 마지막 성과마저 찾아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다시 저 공단에 들어가서 우리가 기계소리를 내야 (개성공단이) 그야말로 경제공단, 안보공단, 평화공단이 되지 않을까...“
-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
▲ 한반도의 평화이정표는 다시 세워질 것인가
“우리가 남북관계를 개선하면서 미국과 북한의 관계 개선을 견인해 나갈 때 북한 핵 문제도 해결될 수 있고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임동원 전 국정원장(당시 대북특사)
최근 9년 동안 남북관계는 과거의 진전이 무색하게도 다시 불신과 대결을 일삼던 냉전시대로 회귀했다. 올해 들어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수 차례를 기록하는 등 한반도의 안보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에 평화를 다시 정착시킬 수 있을까?
6.15 남북공동선언 17주년이자 10.4 정상회담 10주년을 맞아 우리 민족이 스스로 세운 한반도의 평화이정표, ‘6.15남북공동선언’을 되돌아본다. 6.15남북공동선언의 의미와 정신은 위기상황에 놓인 우리에게 어떤 통찰과 지혜를 줄 수 있을까.
[사진=KBS 제공]
/서경스타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