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대학은 안전불감증…테러 초동대응 매뉴얼 없어

학생 대피요령·퇴로확보 방침 없어

초중고 대상 매뉴얼 적용하기도

전문가들 "전교 휴교시켜야"

잇단 캠퍼스 내 사고에도 서울권 대학 상당수는 재난·테러에 대응할 안전지침이 매우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연세대와 이화여대가 각각 사제폭발물사고와 물탱크 파열 사고를 겪고도 수업과 시험을 강행한 것을 두고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대학들이 재난 대응에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경제신문이 15일 서울권 10개 대학에 재난대처용 안전지침을 요청한 결과 9개 대학은 예상치 못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원론적인 안전지침 외에 학생들을 대피시킬 공간이나 학사일정 조정 방법, 건물별 퇴로 확보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정해놓지 않았다. 이들 대학이 일부 공개한 안전지침은 ‘재난 발생시 관련 부처에서 회의를 주재한다’,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세운다’는 등 급박한 재난현장과 동떨어진 교직원 행정절차만 나열돼 있었다. 특정 건물에서 폭파가 발생할 시 학생들이 어디로 대피해야 하며 반경 몇 km의 건물들까지 휴교를 시킬 것인지, 학생들 전체에 비상연락망이나 공지는 어떻게 띄울 것인지와 같은 상세한 사항은 전무했다.

일부 대학들은 초중고등학교에 적용되는 교육부 안전지침을 따르고 있다고 말했지만 이마저도 대학이라는 특수한 현장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가령 서울시내 A대학은 교육부의 ‘학교현장 재난유형별 교육훈련 매뉴얼’을 따르고 있다고 밝혔지만 해당 매뉴얼은 폭탄테러 발생시 “교사는 교내방송을 한 후 출석부를 불러 학생들의 인원수를 확인하고 학부모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건물들이 흩어져 있고 학부모와는 일절 연락하지 않는 대학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조항이다. 이와 같은 규정을 언급하며 “정말 이 조항을 따르고 있냐”고 묻자 담당자는 “사실 (매뉴얼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교육부의 ‘학교현장 재난유형별 교육훈련 매뉴얼-폭파테러편’은 테러 발생시 학생들을 복도로 소집해 출석부를 부르며 인원을 파악할 것을 권고했다.△교육부의 ‘학교현장 재난유형별 교육훈련 매뉴얼-폭파테러편’은 테러 발생시 학생들을 복도로 소집해 출석부를 부르며 인원을 파악할 것을 권고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가안전관리집행계획 등 안전지침이 있지만 대부분 상황보고, 비상소집, 회의와 대책 마련과 같은 포괄적 절차를 담고 있다”며 “대학교만을 위한 구체적 휴교·대피방침은 없다”고 밝혔다. 그나마 ‘지진재난위기대응매뉴얼’은 휴교방침을 담고 있지만 이마저도 ‘학교 기관장이 상황을 판단한 후 신속하게 조기귀가를 시키거나 임시휴업을 한다’고 규정해 학교의 휴교 유무를 학교장의 결정에 맡겼다. 화재나 지진, 테러가 발생해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도 기관장 및 교직원들의 회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초기대응이 늦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안전관리지침을 대부분 학교의 안전시설 점검팀에 일임한다는 점도 문제다. 시설·관재팀은 학사관리나 일정 조정에 대한 권한이 없어 재난에 대한 초동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다. 심지어 이마저도 내부 정리가 안 돼 있는 실정이다. 학교 관계자들은 “안전관리를 일절 시설·관재팀이 담당하고 있어 대응지침에 관한 부분은 우리 소관이 아니다”고 답했지만 정작 안전시설 관리팀 관계자들은 “학사일정을 미루거나 중단하는 것은 관재팀이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관련 교직원들과 회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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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각 대학들의 대응방침이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넘어 대학에 특화된 방식으로 마련돼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국내 외국계 학교들은 기술이 파손되거나 문이 잠겼을 시 어느 문을 부숴야 하는지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조항을 마련해 놓는다”며 “재난이 발생하면 판단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대학처럼 학사일정·건물 지형 등이 건물마다 다 다른 곳은 건물별로 대처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며 “책상 밑으로 숨으라거나 비상구로 숨으라는 등의 원론적 지시는 위기 상황에선 쓸 데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영미 분쟁지역전문PD는 “미국이나 중동대학의 경우 사고 발생 시 타 건물도 일괄 휴교한다”며 “휴교는 상황판단이 끝난 후 위험한 상황에서 한해서만 하는 게 아니라 판단을 할 시간 동안 추가적인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내리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연세대는 지난 13일 제1공학관에서 사제폭발물 폭파사고가 났지만 사고가 난 건물에서 2과목의 시험을 강행해 학생들의 반발을 샀다. 이화여대도 1일 학생회관 옥상에 있던 물탱크가 파열돼 천장 일부가 무너졌으나 곧바로 타 건물의 물탱크를 전수조사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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