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지난 4월 시내 35층 이상 건물 182개를 대상으로 불시 소방 안전점검을 벌였다. 앞서 2월에 발생한 동탄 주상복합 메타폴리스 화재에 대한 후속 조치였다. 결과는 무려 47개(25.5%)에서 불량이 지적됐다. 서울시가 해마다 고층건물의 소방조사를 하고 있지만 이번 불시 점검에서 드러난 불량률은 지난해 9.6%의 세 배 수준으로 치솟았다. 드러난 문제점도 스프링클러 미작동, 경보설비 불량, 방염 미처리 내장재 사용 등 다양했다.
전국적으로 아파트를 포함한 고층건물이 잇따라 세워지고 있지만 안전의식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대형 참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4일 영국 런던의 24층 주상복합건물 화재가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15일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현재 국내 30층 이상 고층·초고층 건물은 모두 3,266개다. 아파트가 2,701개로 가장 많고 이어 복합건물 451개, 업무시설 60개, 공장 40개, 숙박시설 10개, 기타 4개다. 50층 이상 초고층건물도 107개가 있는데 역시 아파트가 71개로 가장 많다.
국내 30층 이상 고층건물은 2007년 286개에서 2011년 959개, 2013년에는 1,836개, 2015년 2,577개로 급증했다. 올해는 6월 현재 3,266개에 이른다.
고층건물이 우후죽순식으로 늘고 있지만 방재 규정과 안전의식은 부족한 실정이다. 고층건물의 화재위험이 부각된 것은 2010년 부산 해운대의 38층 주거용 오피스텔 우신골든스위트의 화재사건이다. 4층에서 시작된 불이 20여 분만에 옥상까지 번졌다. 정부는 2012년 건축법을 개정해 30층 이상 건물 외벽에는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재 소재를 의무화했다.
초고층건물만 위험한 것은 아니다. 2015년 경기 의정부의 주상복합 10층 아파트 화재로 5명이 숨졌다. 1층에서 시작된 불은 가연성 벽면을 타고 번졌다. 다시 관련법이 개정됐고 이제는 6층 이상 건물도 난연재를 쓰도록 했다. 다만 이런 규정들은 시행 이전에 허가된 건물에는 적용되지 않아 사고 위험요소를 그대로 안고 있다.
법률 규정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화재는 크게 늘었고 방재의식은 여전히 희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층건물 화재는 2014년 107건(초고층 11건), 2015년 107건(8건)에서 지난해 150건(8건)으로 늘었다. 또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에서 경보기나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허술한 방재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소방 분야 한 전문가는 “강화된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예전 건물들이 문제”라며 “시설 노후화를 피할 수 없는 만큼 사용자의 적극적인 보완과 관련 당국의 철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국 주상복합 건물의 화재 소식이 전해지자 국민안전처는 오는 19일부터 한 달 동안 국내의 모든 고층건물에 대한 합동 소방안전 점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손정호 국민안전처 소방제도과장은 “고층건물 관계자의 초기대응능력을 키우려는 차원”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