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외국인의 증시 지배력이 확대되면서 외국인의 수급에 따라 코스피의 등락이 결정되는 날이 늘어나고 있다. 탄탄한 기업 실적과 글로벌 대비 저평가된 매력에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계속 사들이면서도 대외 이벤트에 원·달러 환율이 상승(원화가치 하락)하는 구간에서는 환차손을 우려해 과감하게 차익 실현에 나서는 모습이다. 원·달러 환율은 수출기업의 실적 개선과 글로벌 자금의 위험자산 선호로 올 들어 1,110~1,130원대의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박스권 안에서 변동성이 커질 때마다 ‘외국인의 순매도 증가→지수 하락’의 경로를 타고 상승장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A주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시장(EM) 지수에 편입된 것도 중장기적으로 외국인 수급에 악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21일 서울경제신문이 상승장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지난 4월 이후 원·달러 환율이 연속 사흘 이상 상승했던 구간의 외국인 순매도와 지수 간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원화가 약세일 때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순매도는 늘고 지수는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4월3일 원·달러 환율이 1,115원30전에서 11일 1,145원80전으로 2.73% 급등할 때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4,802억원어치를 내다 팔았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2,167.51에서 2,123.85로 2.02% 하락했다. 환율이 0.8% 상승한 5월17~19일 사흘간 외국인의 순매수는 748억원으로 둔화됐고 코스피는 0.2% 하락했다. 이어 환율이 0.97% 오른 6월9~16일에는 외국인이 2,003억원 순매도했고 지수는 0.83% 하락했다.
이 같은 흐름은 투자기업의 주가 상승 외에 환차익까지 고려한 외국인의 투자 성향 탓으로 해석된다. 원·달러 환율 하락(원화 강세)이 예상되면 나중에 달러를 팔 때 이익을 볼 수 있어 주식을 사들이는 요인이 되지만 반대로 환율이 상승하면 환차손이 발생해 매도심리를 자극하게 된다.
이날 외환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전날보다 8원60전 오른 1,144원에 거래를 마쳤다. 4월19일(1,140원20전) 이후 두 달 만에 1,140원 고지를 다시 밟았다. 코스피는 전날보다 0.49%(11.70포인트) 떨어진 2,357.53에 거래를 마쳐 이틀 연속 하락했다. 외국인이 1,847억원어치를 팔며 지수 하락을 이끌었다. 간밤에 유가 하락에 따른 글로벌 증시 부진과 중국A주의 MSCI 편입 소식에 투자심리가 위축된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당국은 MSCI EM 지수를 추종하는 글로벌 자금 규모를 고려할 때 국내 증시에서 유출될 자금 규모를 약 6,000억원에서 4조3,000억원 정도로 추산했다. 하지만 시장전문가들은 이들 요인 외에 원화가치 하락도 외국인의 매도세를 이끌었다고 보고 있다. 유가 하락은 지속되고 있고 중국A주의 MSCI 편입도 예견된 이벤트라 이날 외국인의 순매도를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기호 케이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올 들어 상승장이 지속되고 환율도 낮은 박스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환율이 급격하게 오르는 구간에서는 외국인의 차익 실현이 이어지고 있다”며 “달러 약세의 흐름이 한순간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변동성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올 초 1,200원 초반대까지 올랐던 원·달러 환율은 국내 증시에 외국인의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며 안정을 찾았다. 5월 들어서는 1,110~1,130원의 낮은 박스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의 발언이 달러화 강세를 자극하며 원·달러 환율도 꿈틀거리는 양상이다.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 연은 총재는 20일(현지시간) “저금리가 금융 안정성 우려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하루 전에는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은 총재가 “경기 확장기가 상당히 오래간다는 점을 확신한다”며 달러 강세를 부추겼다. 오는 28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라는 미국의 압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 향후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는 이벤트들도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