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조차 생소한 백금(플래티늄)과 금속 팔라듐이 올 들어 급격히 몸값을 키우며 원자재 투자처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플래티늄에서 추출하는 팔라듐은 휘발류 엔진의 배기가스 감축 촉매제로 사용되며 최근 탄소에너지의 사용축소 움직임 속에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라면 팔라듐이 16년 만에 플래티늄 가격마저 추월할 수 있다고 평하고 있다.
팔라듐은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22일(현지시간) 기준 전날보다 0.38% 오른 온스당 887.4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팔라듐 가격은 올 들어 30.32% 상승하며 5년 최고치인 905.13달러에 빠르게 근접하고 있다.
캐나다 경제전문주간지 파이낸셜포스트(FP)에 따르면 블룸버그가 집계하는 30여 개 주요 원자재 상품 가운데 올해 팔라듐의 가격 상승률이 이달 둘째 주까지 1위를 차지했다. FP는 “팔라듐은 올해 상승률 경쟁에서 알루미늄·돼지고기 선물을 포함한 33개 원자재를 넘어섰다”며 “주요 원자재 시장에서 그 어떤 것도 팔라듐 성과보다 좋지 못하다”고 평했다. 팔라듐 가격을 추종하는 미국 상장지수펀드(ETF) ‘피지컬팔라듐쉐어스’ 가격도 올해 29.87% 올랐다.
이처럼 팔라듐 가격이 치솟으면서 팔라듐이 2001년 이후 처음으로 ‘자매’ 금속인 플래티늄 가격을 추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팔라듐과 플래티늄은 각각 가솔린차와 디젤차의 배기가스 유해성분을 무해화하는 촉매변환기로 쓰인다. 하지만 지난 2015년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사건으로 인해 ‘클린 디젤’의 실체가 없다는 게 드러난 이후 디젤차의 인기가 급감하고 있어 ‘팔라듐가 고공행진’의 주요 배경이 되고 있다.
실제 팔라듐과 달리 플래티늄 가격은 올 들어 2.3% 상승하는 데 그쳤다. 22일 종가는 923.95달러다. 두 금속의 가격 차는 올 초 222달러에 달했지만 22일 36달러까지 좁혀졌다. 여기에 한동안 상승세를 탔던 금 가격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이달 금리 인상 이후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줄어들며 주춤하고 있어 팔라듐의 매력을 더 높이고 있다. 투자분석기관인 노아캐피털마켓은 “팔라듐의 펀더멘털(기초여건)은 원자재 가운데 가장 우수하다”며 “가까운 시간 내에 플래티늄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팔라듐의 인기요인으로는 세계 주요국에서 배기가스에 제약을 가하면서 상대적으로 유해물질 배출이 적은 휘발류 자동차가 다시 환영받고 있는 점이 꼽힌다. 2년 전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에 이어 최근 제너럴모터스(GM)가 디젤 트럭 배기가스 조작 의혹으로 피소당하는 등 가솔린차에 호재로 작용하는 이슈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특히 서유럽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디젤차 수요 감소가 두드러지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디젤차는 미세먼지 배출의 주범으로 꼽히며 퇴출 위기에 처했다. 반면 테슬라 등 차세대 자동차 제조사들이 집중하는 전기차는 아직 상용화하기에 가격이 부담스럽고 충전시설이 제대로 갖춰져야 한다는 제약이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레이더들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자동차 시장 트렌드를 살피고 있다”며 “오슬로와 같은 대도시들의 자동차 규제로 미세물질 배출을 우려한 유럽 소비자들이 디젤차에서 가솔린차로 갈아타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팔라듐은 치아 보철, 외과 수술용 기구, 각종 전자재료 등에도 쓰인다. 특히 수소를 잘 흡수하고 통과시키는 성질이 있어 수소 에너지가 상용화될 경우 팔라듐의 가치는 더욱 부각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전문가들은 팔라듐 상승세에 투기 세력 등이 가세하고 있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FT에 따르면 팔라듐 투기 규모는 지난 6개월 간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 자동차 시장이 판매 둔화 조짐을 보이는데도 팔라듐 가격이 별다른 조정을 받지 않은 이유도 투기성 거래가 한 몫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팔라듐은 아직 다른 원자재와 비교해 거래 규모가 작아 가격 급등락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독일 커머즈뱅크의 유진 와인버그 원자재리서치 총괄은 “투기 세력이 팔라듐 상승과 플래티늄 하락에 동시 베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팔라듐은 주로 남아프리카와 러시아에서 생산된다. 하지만 생산규모 등이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어 다른 문제로 꼽힌다. FT는 “팔라듐 시장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러시아가 정확한 재고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정량적 평가가 어렵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