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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열'로 스크린전쟁 뛰어는 이준익 감독]"'말·생각을 행동으로 보여준 박열...너무 멋진 조선인 아닌가"

'사형 쟁취한' 박열의 잔상 오래 남아...결국 영화로 제작

반일감정 자극하는 장면 대신 두 주인공에 온전히 집중

100미터 달리기 하듯 숨가쁘게 촬영...배우·스태프에 감사



수백억원대 여름 대작들이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는 ‘개봉 전쟁’ 한복판에 소규모 영화 ‘박열’로 도전장을 내민 이준익(58·사진) 감독. 제작비 20억 원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박열’로 그는 규모와 장르에 상관없이 어떤 작품이든 일필휘지로 만들어내는 감독으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23년 간토(관동) 대지진 이후 조선인 6,000여 명을 학살한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일본 내각이 희생양으로 삼은 독립운동가 박열과 그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의 실화를 담은 이 영화를 만든 이 감독은 “일제시대 스물두 살의 박열은 신념을 표현했고 행동했다”며 “인간의 본질은 말이 아니라 선택과 행동에 있다”고 말했다. 어느덧 대가에 반열에 오른 이준익 감독을 28일 ‘박열’의 개봉에 앞서 서울경제신문이 만났다. 다음은 이 감독과의 일문일답.

-2000년에는 ‘아나키스트’를 제작했고, 이번에는 아나키스트 ‘박열’이다. 아나키스트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나?


△1995년 ‘아나키스트’를 준비하면서 많은 책을 읽었다. 스물두 살의 박열이 일본 내각에 의해 대역죄인으로 몰렸지만 굴하지 않고 오히려 ‘사형을 쟁취’해냈던 모습에 대한 잔상이 오래 남았다. 제국주의의 중심 도쿄에서의 이런 행동은 객기 같지만 신념 없이는 불가능하다. 박열은 ‘개새끼’라는 시의 은유로 신념을 글로 표현했고, 법정에서 신념을 말했고, 그리고 행동했다. 인간의 본질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행동에 있다. 어떤 이는 말은 정의롭게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결과를 보면 정의 롭지 않은 행동을 하기도 한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그들의 생각과 말 그대로를 행동하고 선택했다. 이들이 신념을 당당하게 밝힌 것은 어떤 사상이고 어떤 신념에서 기인한 것인가를 따라가 보니 아나키즘적 사상에 맞닿았더라.

-‘아카키스트’, ‘동주’(2016)에 이어 ‘박열’까지 일제시대 시리즈물 같다. 일제시대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나?

△아픔의 역사, 패배의 역사를 외면하거나 왜곡하면 그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면으로 바라봐야 그 프레임을 깨고 벗어날 수 있다. ‘동주’에서는 알 수 없는 주사를 맞고 후쿠오카의 감옥에서 죽어가던 동주를 통해서 제국주의의 부당성을 증명해냈고, ‘박열’에서는 6,600여 명의 조선인을 학살한 것이 외신으로 보도되면서 국제 사회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니 국면 전환을 위해 박열을 마녀사냥한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드러내 보였다.

-충실한 역사적 고증이 화제가 되고 있다. 혹시 감독이 만들어낸 건 없나?

△만든 게 생각이 안 난다. 고증과 고증 사이에 고증의 영역이 아닌 공백 즉 창작의 영역을 메웠을 뿐이다. 정신과의사의 정신감정, 면회 왔던 작가, 당시 신문 등 모두 고증을 거쳤다. 심지어 오뎅집에서 메뉴를 보고 “이거 사회주의 오뎅이잖니?”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진짜 메뉴에 사회주의라는 오뎅 이름이 있다.


-‘3·1운동’ 등 관객들을 감정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장면을 담지 않고 대사 한 줄로 표현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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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라는 인물에 집중하고 싶었다. 반일 감정을 일으키기 위한 장면은 원하지 않았다. 박열의 첫 대사도 이거였다. “내 일본의 권력에 대해서는 반감이 있지만, 민중들에게는 친밀감이 있지.” 박열의 무죄를 주장한 일본 변호사 후세 다츠지(2004년 일본인 최초 대한민국 건국훈장(애족장) 수여), 후미코의 자서전을 쓴 사람도 친밀감이 든다. 박열이 소속됐던 불령사에도 일본인이 6명이 있었고, 조선인 단체만이 아닌 아나키스트 단체였다.

-제작비 20억 원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었나? 거장이자 달인으로 보인다.

△완성도가 높다고 스스로 말하면 큰일 난다. 그런 자기 미화가 어딨겠나. 그건 개봉하고 관객들이 평가해줄 거고. 거장, 달인 이런 표현도 나를 죽이는 거라 생각한다. ‘박열’은 6주 동안 24회 차로 하루에 10신씩 막 몰아쳐서 찍었다. 몰입해서 100m 달리기하듯 숨 막히게 찍었는데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역량이 뛰어난 거다. 예산 안에서 효율성을 내는 방법은 몰아찍기뿐인데 현장에서 고민할 시간도 없고, 고민은 이미 시나리오를 쓸 때 끝냈다.

-박열, 가네코 후미코 그리고 불령사 아나키스트 조직원들이 낭만적이다.

△님 웨일즈의 ‘아리랑’이라는 책에 조선인 혁명가들이 ‘낭만적이다’라고 딱 적혀 있다. 영화에서도 그렇잖나. 조선의 권력자들이 자신의 윤택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핍박받는 사람들을 외면하지만, 박열 등 아나키스트는 그들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잖아요. ‘제일 말 안 듣는 조선인’ 박열은 법정에서도 ‘사형을 쟁취’해내고 자신의 신념을 당당하게 주장했던 그들 너무 멋있지 않나?

-포털 사이트에 박열의 정보를 보니 아내 가네코 후미코라고 돼 있다. 이후 재혼은 안 했나? 그랬다면 정말 낭만적이다.

△미안하다, 재혼을 했다. 그럼 낭만적인 게 아닌가?(웃음) 출옥하고 1947년 동경 특파원 장의숙 여사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박영일)·딸(박경희)를 둔다. 이분들의 후손 중 한 명은 육사를 나온 군장성 출신으로 지금은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다.

사진제공=메가박스 플러스엠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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