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거느렸다. ‘푸른 군대’라고 불렸던 칭기즈칸의 기마군단은 유라시아 대륙을 종횡무진 누비며 국가들을 복속시켰다. 놀라운 점은 칭기즈칸의 병력이 10만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가장 많은 군사를 동원했을 때도 20만명을 넘지 않았다는 게 역사가들의 추정이다. 그 정도 병력으로 당시 인구 2억~3억명에 달하는 유라시아 대륙을 굴복시켰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다. 칭기즈칸의 삶을 되짚어보면 믿기 힘든 기적을 일군 원동력이 절박함이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 부족장이었던 부친이 독살된 후 생사를 넘나드는 숱한 고비를 넘겼고 두려움과 절박함의 교차점에서 그는 강철처럼 단련됐다.
최근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의 행보를 보면서 칭기즈칸을 떠올린 것은 ‘절박함의 파동’이 기자에게까지 전달된 까닭이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백과사전이 소수의 전유물이고 전과마저 없는 친구들을 보면서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백과사전을 꿈꾸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KAIST 석사를 마친 후 지난 1992년 삼성SDS 연구원으로 입사했고 기술로 꿈을 이뤄내기 위해 국산 검색엔진 개발에 도전했다. 1999년 사내벤처로 분사한 네이버는 몇 년 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보기술 기업으로 성장했고 지금은 애플·구글 등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공룡들과 4차 산업혁명의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그가 강연에 나설 때면 가장 많이 쏟아내는 단어가 있다. “두렵다” “절박하다”는 말이다. 3년 전 강연에서 그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 두렵다. 회사 설립 후 언제 가장 힘들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저는 늘 올해가 가장 힘들다고 얘기한다”며 “15년간 회사를 하면서 매년 망할 것 같고 15번 창업한 느낌”이라고 했다. 지난해 7월 라인의 미국·일본 동시 상장을 자축하는 자리에서는 “상장 비결은 절박함이었다”며 “막대한 자본과 기술로 밀어붙이는 글로벌 기업들과 벌인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네이버를 절박하게 만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렇다. 이해진의 절박함은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어둡고 음침한 터널 안에 주저앉지 않았다. 스스로를 튕겨내는 용수철처럼 절박한 마음으로 터널 밖 태양을 향하고 있다. 지난해 코렐리아캐피털에 1억유로(당시 약 1,233억원)를 출자했고 얼마 전에는 프랑스 소재 세계 최대 스타트업 인큐베이팅센터 ‘스테이션F’에 전용 입주 공간 ‘스페이스 그린’을 열었다. 최근엔 미래에셋대우와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맞교환하기로 하면서 인공지능(AI)과 금융에서 시너지를 창출할 단초를 마련했고 AI 연구소 제록스리서치센터유럽(XRCE)을 인수하기로 했다.
4차 산업혁명은 플랫폼의 전쟁이다. 가진 놈, 강한 놈이 모든 것을 갖는 ‘승자독식’이다. 네이버와 경쟁하는 애플이나 알파벳(구글)은 각각 글로벌 시가총액 1위, 2위 기업이다. 시가총액 28조원 수준인 네이버와는 체급 자체가 다르다. 하지만 기적을 믿고 싶다. 2000년대 초반 엄청난 자금력과 브랜드를 무기로 한반도에 상륙했던 야후·라이코스와의 싸움에서 ‘다윗의 기적’을 일궈냈던 것처럼 이번에도 ‘절박함’이 가장 센 무기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줬으면 한다. 이해진의, 네이버의 절박함을 응원한다. jmin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