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사진) 분쟁지역 전문 PD는 4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테러를 무조건 아랍인과 무슬림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PD는 18년 동안 요르단·이집트 등 아랍권 분쟁지역을 전문적으로 취재한 분쟁지역 전문가다. 취재 당시 국경지대의 이슬람국가(IS) 대원들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이야기를 나눈 김 PD는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한 젊은이라기보다 가정과 사회에서 상처를 입은 어린아이에 가까웠다”고 회상했다. 대원들 다수는 코란을 모르거나 아랍어를 공부하지 않았고 사후세계에 대한 기대보다는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오히려 이들을 ‘영광스러운 죽음’으로 끌어당긴 것은 절망적인 현실이었다. 김 PD는 “IS 대원들은 ‘힘든 일 있냐’고 묻기만 하면 폭포수 쏟아내듯 아픔을 쏟아냈다”며 “왕따, 사회로부터의 차별과 격리 등이 주된 이유였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5월 맨체스터 테러를 일으킨 범인은 리비아 출신으로, 불안정한 정국 탓에 부모와 오랜 기간 떨어져 있었다.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은 이스라엘과의 기나긴 영토 분쟁에 지쳐 폭탄 조끼를 입었고, IS에 가담한 18세 ‘김군’은 평소 가족들과 격리돼 SNS에 “이 나라와 가족을 떠나고 싶다”고 올렸다.
국내 사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김 PD는 “테러의 주체와 장소를 빼고 나면 테러가 발생하는 메커니즘 자체는 국경을 막론하고 비슷하다”며 “사회적 불만을 가진 소수가 자신의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고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대량 살상을 선택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범인 홀로 테러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자생적 테러’를 거론하며 “한국처럼 시민들의 불안감과 압박감이 심하고 대학·취업 등 인정받기 위한 투쟁의 목표가 비슷한 나라일수록 그것을 얻지 못했을 때 좌절감이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국내에서도 한 걸그룹의 팬미팅에 폭발물 협박 전화가 걸려오고 연세대에 사제 폭발물이 터지는 소동도 있었다. 김 PD는 “일반 시민들은 그래도 좌절감을 딛고 사회의 주류에 속하려 부단히 애쓰지만 처음부터 2등 시민이 된 이민자 자녀들은 물러설 곳이 없다”며 “아이들의 박탈감이 극에 달해 무엇을 손에 들 지 모른다”고 손사래를 쳤다.
김 PD는 시한폭탄 같은 사회 분위기를 달래기 위해 범세계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비행기와 인터넷으로 연결된 요즘 시대엔 빈부격차나 대량실업을 일국(一國)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테러기법까지도 온라인으로 공유하는 세상에선 ‘나만 경제성장하고 나만 안전하면 된다’는 접근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장기 경기 침체와 이주민 문제를 국제사회에서 폭넓게 논의해야 하는 이유다. 그는 “한 나라의 정부가 경제와 안보를 각자도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더불어 잘 사는 방법’을 고민해야만 전세계적 스트레스 상태를 다스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테러 발생시 대처방안에 대한 현실적 조언도 잇따랐다. 김 PD는 “테러를 원천봉쇄하겠다는 비현실적 기대를 버려야 한다. 차라리 테러 발생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대피 요령을 만드는 편이 낫다”며 “100명 이상 모인 장소에서의 테러 대응 지침을 만들어 국민들 몸에 밸 때까지 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