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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TUNE FEATURE|돈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에너지 혁명

THE BEST ENERGY REVOLUTION MONEY CAN BUY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독일은 재생가능 에너지 발전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그러나 이 부유한 국가마저 치솟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면, 다른 국가들이 그들의 뒤를 따를 수 있을까?








디터 더마이어 Dieter Durrmeier 가문은 수 세대에 걸쳐 아주 오랫동안 옵핀겐 Opfingen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가축을 사육해왔다. 옵핀겐은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 근처에 있는 독일 남부의 언덕 지역이다. 더마이어 가문은 수 십 년에 걸쳐 환경에 적응했고, 심지어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내기도 했다. 지난 1963년 더마이어의 부친은 정부의 저리 대출을 받아 136에이커 규모의 농장을 붐비는 마을에서 시내 외곽으로 이주시켰다. 1986년에는 소 사육을 중단하고 부정기적인 사업으로 전환을 하기고 했다. 부유한 도시 거주자들의 말을 키워주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가문이 최근 꾀한 변화가 가장 높은 수익성을 내고 있다. 아직 아스파라거스와 포도를 재배하며 말을 사육하긴 하지만, 더마이어 가문은 현재 햇빛에서 가장 높은 이익을 거둬들이고 있다. 하늘에서 나오는 이 ‘작물’은 독일인들의 후한 금전적 지원 덕분에 더마이어가 토지에서 재배했던 그 어떤 것보다 더 안정적이고 더 수익성 높은 현금을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어느 추운 겨울날 밤, 더마이어는 붉은색과 초록색으로 된 플란넬 *역주: 면이나 양모를 섞어 만든 가벼운 천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는 진흙이 묻은 부츠를 신고 말에게 먹이를 주다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헛간 처마 아래에서 담소를 나눴다.

작업 공간인 건물 4곳 중 1곳의 지붕에는 그가 보조금을 받아 설치한 유리 및 금속 재질의 태양 전지판이 있다. 그는 사무실 컴퓨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태양 전지판의 전력 생산을 관리하고 있다. 더마이어는 이 태양 전지판으로 연간 4만 유로(약 4만 2,000달러) 정도의 이익을 꾸준히 내고 있다. 이는 그가 전체 농장운영을 통해 올리는 이익의 약 40%에 이른다. 건장한 이 대머리 남성(62)은 태양 발전으로 인한 뜻밖의 횡재를 설명하면서, 자부심과 당혹스러움을 동시에 드러냈다.

더마이어는 정부 정책에 대해 “우리에겐 매우 좋은 사업이지만, 독일인들에겐 아주 나쁜 사업”이라고 말했다. 이 정책은 간헐적으로 비추는 햇빛을 통해 그의 지갑만 두둑하게 불려줄 뿐이다. 독일의 태양발전 보조금 계획은 더마이어가 태양광 전지판으로 생산하는 킬로와트시(kw/h)마다 정가를 책정해 지불하고, 이를 전력망에 판매해준다. 이 정책은 그가 태양광 발전을 시작했을 당시, 일반 전기요금의 몇 배에 달했던 가격을 20년간 그대로 보장해주고 있다.


독일 엠스란트 Emsland의 RWE 핵 발전소. 독일은 수 년 내 핵 발전소를 폐쇄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독일 엠스란트 Emsland의 RWE 핵 발전소. 독일은 수 년 내 핵 발전소를 폐쇄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는 10여 년 전 해당 보조금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너무 좋은 조건이라 의구심이 들었다. 보조금은 경제 전체로 봤을 때, 전반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반대했다. 하지만 보조금이 나오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내 신념과는 어긋나지만 사업가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재생 에너지 혁명을 시작한 독일은 이를 성취하기 위해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독일의 친환경 정치인들은 친환경 유권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지난 10년 동안 ‘에네르기벤데 Energiewende’로 알려진 비범한 에너지 전환 정책을 진행해왔다. 그 중심에는 다양한 재생가능 에너지 보조금이 있다. 이 보조금은 한 때 틈새 시장이었던 태양광과 풍력 기술 수준을 극적으로 끌어올렸고, 그 과정에서 비용을 줄이기도 했다. 일부의 경우에는 화석 연료보다 경쟁력이 더 높았다.

발 빠른 독일의 넉넉한 지원에 고무된 미국과 중국, 인도 등 후발 국가들은 현재 대규모로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설치하고 있다. 재생가능 에너지가 기후변화 해결에 크게 기여한다면, 역사는 에네르기벤데를 글로벌 리더십의 훌륭한 모범사례로 판단할지도 모른다.

에네르기벤데의 근본적인 야심은 믿기 어려울 만큼 놀랍고 철저하게 독일스럽다. 그 정신은 아우토반 Autobahn과 현대 건축, 매끈한 BMW와 메르세데스 벤츠를 만들어 온 국가 기술력을 반영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에네르기벤데는 블랙 포리스트Black Forest *역주: 독일 남서부 슈바르츠발트의 애칭으로 숲이 울창해 검은 숲이라고 불린다를 숭배하고, 유기적 농업을 선도했으며, 여전히 괴테의 자연 칭송 시를 추앙하는 사회의 환경적 이상을 떠올리게 한다. 옮음과 그름의 모든 측면에서, 독일 문화의 도덕적 자신감도 보여주고 있다. 18세기 후반 낭만주의와 1930년대 나치즘을 창시했던 이런 문화가 오늘날에는 세계에서 가장 관대한 난민 수용 캠페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포부로 인해 독일은 피를 흘리고 있다. 치솟는 비용이 국가의 의지를 시험하고 있다. 유력 정치인들, 심지어 강력한 친환경파로 인식되는 인사들조차 앞다퉈 지출의 고삐를 죄고 있다. 이들이 지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기적에 가까운 독일의 행보는 ‘심장이식 수술의 환경 버전’으로 기억될 지도 모른다. 의심할 여지없이 값진 노력이지만, 최상위 부유층을 제외한 나머지 이들에겐 ‘언감생심’이 될 수 있다.

에너지 전환 정책은 기술적인 관점으로만 볼 때 이미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이 정책은 독일의 공학 기술이 자연을 다룰 수 있으며, 지상의 비청정 에너지 대신 하늘의 청정 에너지로 산업 경제의 주요 부문을 가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독일은 충분한 양의 재생가능 에너지를 생산해 국가 전력소비의 32%를 충당했다. 전세계를 놓고 볼 때 상당히 높은 비율이다.

독일은 이를 통해 대체 에너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의구심 중 하나를 해소했다: 풍력과 태양광 발전은 의존하기에 신뢰도가 지나치게 떨어진다는 회의론이 그것이다. 비판가들은 바람 없는 날이나 갑작스러운 구름이 풍력과 태양광 발전을 저해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국가 에너지 공급의 일정량 이상을 맡기기엔 불안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은 그토록 불규칙한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를 갖고도 세계에서 가장 신뢰성 높은 전력망 중 하나를 계속 운영하고 있다. 세계 4위 경제 강국인 독일에서 정전은 도착시간을 어긴 열차나 맛없는 맥주만큼이나 드문 현상이다.

물론 화석연료도 여전히 중요하다. 화석연료가 없으면 독일 경제도 서서히 멈출 것이다. 하지만 독일은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획기적인 변화를 향한 첫 기반을 공고히 다져왔다. 10년도 채 안 돼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대개 50년 단위로 투자비용을 측정하는 에너지 분야에서, 이 정도 기간은 눈 깜박할 정도의 시간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독일 시민들에게 막대한 부담을 주고 있다. 독일은 지난해 재생가능 에너지에 250억 유로(260억 달러)를 지출했다. 이 중 대부분인 230억 유로는 소비자들의 전기세 할증료로 지불됐다. 이 할증 요금 상승은 평균 독일가구의 전기세가 폭증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지난해 한 가구가 지불한 전기세 1,060유로는 2007년 대비 50% 급증한 금액이다).

재생가능 에너지 전환 정책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전통적인 방식(석탄, 원자력, 천연가스 등)으로 전기를 생산해왔던 기업과 지역사회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전통적인 전력원은 독일을 유럽 1위 경제 대국으로 유지시킨 원동력이었다. 독일의 거대 전력 생산업체들은 지난 수년 간 태양광 발전이 그들의 안정성과 높은 수익성을 앗아가는 상황을 공포에 질린 채 바라보고 있었다.

이 기업들의 상위 부유층 고객들 수백 만 명은 보조금을 지원받아 지붕에 태양광 전지판을 설치했다. 전력을 생산하는 이 새로운 소비자 군단, 일명 ‘프로슈머’ *역주: 소비는 물론 제품개발, 유통과정에까지 직접 참여하는 생산적 소비자들은 독일의 기존 대형 전력업체들이 결코 현실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던 세력이었다.


석탄 국가에서 재생가능 에너지가 부상하다 : 독일은 석탄국가임에도 전력의 3분의 1을 재생가능 에너지원에서 얻고 있다. 다른 주요 경제국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하지만 독일에선 풍부한 갈탄이 여전히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독일이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힘든 주된 이유이다.석탄 국가에서 재생가능 에너지가 부상하다 : 독일은 석탄국가임에도 전력의 3분의 1을 재생가능 에너지원에서 얻고 있다. 다른 주요 경제국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하지만 독일에선 풍부한 갈탄이 여전히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독일이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힘든 주된 이유이다.



프로슈머들은 집에서 만든 태양광 전기를 앞세워 독일의 전력 시장으로 물밀듯이 밀려들고 있다. 그 결과 업체들이 전력을 사고 파는 독일의 ‘도매’ 에너지 시장에서 전기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전기의 도매가 하락 탓에 독일의 상당수 가스 연료 및 원자력 발전의 경제성이 감소했다. 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이익 마진을 확보할 만큼 충분히 높은 가격에 전기를 팔 수 없게 되었다. 최종 결론은 불을 보듯 뻔했다: 대형 에너지 회사의 주가가 급전직하했다.

독일의 전통 에너지 산업과 이에 의존하는 마을과 도시들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비용이 크게 떨어지고 있어 독일이 재생가능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려 하고 있다. 독일은 지난해 국가 전력의 13%를 공급한 원자력 발전소들을 안전성 문제로 폐쇄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 우려 때문에 국가 전력의 40%을 생산했던 석탄 화력발전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각각의 움직임은 ‘역사적인 전환’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들이 한데 어우러져 독일의 전통적인 전력발전업체에겐 자체 혁신을, 정부 당국에겐 좀 더 저렴한 재생가능 에너지의 생산을 더욱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이 성취한 재생가능 에너지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환경 목표 달성은 여전히 제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현재 독일의 친환경 정책을 뒷받침하는 목표-지구온난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있다-에는 다소 의구심이 있어 보인다. 독일은 보다 공격적인 국제기후 목표치 설정을 오랫동안 지지해왔다. 2020년까지 자국의 탄소 배출량을 1990년보다 40% 낮은 수준으로 감축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담대한 목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측정지표들에 따르면, 2015년 독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증가했다. 지난해에도 증가했을 가능성이 높다. 목표했던 2020년이 다가오고 있지만, 독일은 탄소배출량을 1990년 수준 대비 27%밖에 줄이지 못한 난처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독일의 내수용 보조금 탓이다. 풍력 및 태양광 발전이 더 많이 이뤄짐에 따라 세계 에너지 시장에도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러시아산 가스는 비싸진 반면, 미국산 수입품이 밀려 들어 석탄 가격은 떨어졌다.

이런 상황이 맞물려 독일 발전 업체들은 자국 석탄 중 특히 저렴하고 오염 수준이 높은 갈탄(lignite)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독일의 재생가능 에너지 추진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3년 아랍의 석유 금수 조치 여파로 독일이 수십 곳의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정책을 펼치자 그 반발로 사업 추진이 시작됐다. 당시 원자력 반대 열기는 냉전으로 둘로 나뉜 독일에서 존재론적이고 함축적인 의미를 가졌다. 동독과 서독은 소련과 미국의 핵무기가 배치된 최전방이었다. 파트리크 그라이헨 Patrick Graichen은 “대다수 국민들이 ‘세계 3차 대전이 발발하면 독일인이 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당시 소년이었던 그는 이제 45세가 돼 베를린에 거점을 둔 비영리단체 아고라 에네르기벤데 Agora Energiewende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이 단체는 재단들의 지원을 받아 독일의 재생가능 에너지 전환 정책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1983년 신생 정당이었던 녹색당은 반핵 정책을 앞세워 의회에서 몇 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1986년 동쪽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Chernobyl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 후, 독일 내 반핵 세력의 공포심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미국에선 체르노빌 사고가 그저 뉴스거리였지만 독일에선 이 사고가 그 세대를 강타했던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누출된 방사능이 도시와 농장 지역에 걸쳐 감지되고 있었다.

독일의 현대식 재생가능 에너지 정책은 2000년이 돼서야 실제 동력을 얻기 시작했다. 사민당과 녹색당 연합정부로 구성된 독일 정부는 해당 이슈를 놓고 수 년간 논쟁을 벌인 끝에, 그 해 원자력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선언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원자력 공백을 메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석탄 대신 재생가능 에너지를 지원하는 정책(feed-in-tariff *역주: 발전차액 지원제도)을 함께 통과시키기도 했다.

독일은 자연 조건상 태양광 발전의 주요 지역은 결코될 수가 없다. 베를린은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캐나다 캘거리 Calgary와 거의 같은 위도에 있다. 독일에서 가장 햇살 좋은 지역들도 매년 시애틀 정도의 햇빛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지난 2010년까지 수백 만 명의 시민들이 보조금에 이끌려 지붕에 태양 전지판을 설치했다. 그 결과 독일은 세계 최대 규모의 태양광 시장이 되었다.


보조금은 그 구조상 금액이 매년 줄게 되어 있다. 기술 발전도 예측하기 어렵다. 태양 전지판 가격은 법안 제정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하락했다. 그 결과 독일에서 태양 전지판을 설치한 사람들의 이익 마진이 크게 불어났다. 이 때문에 더 많은 사업들이 진행됐고, 결과적으로 독일 납세자들이 감당해야 할 보조금 액수가 크게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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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이를 우려한 독일 정치인들이 2010년 말 보조금 삭감을 명령했다. 그러나 이 발표는 엉뚱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태양광 발전업자들이 보조금 지급 중단 전에 더 많은 사업을 추진한 것이었다. 2010년 기준으로 전 세계 태양광 전지판의 44%는 독일에 설치되어 있다(독일의 육지면적은 미국 몬태나 Montana 주와 거의 같다). 독일 내 태양 전지판 설치는 2011~2012년에도 계속 증가했다. 그러자 정치인들은 2012년 이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개혁 법률을 제정했다. 그러나 이 보조금들의 보증기간은 20년이나 된다. 호황기에 설정된 보조금은 2030년대에 소멸되기 때문에 그때까진 독일 경제에 남아 발목을 잡을 것이다. 마치 뱀에 잡아 먹힌 생쥐가 뱀의 몸통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듯 말이다.

50헤르츠 50Hertz *역주: 독일의 4대 송전망 회사 중 한 곳 가관할하는 지역은 끊임없이 변하는 풍력과 태양광의 단점을 관리해주는 독일의 기술적 성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업체는 독일의 최대 전력망 중 한 곳을 정부 규제 하에 독점 운영하고 있다. 50헤르츠의 구역은 발트해 연안에서부터 체코 국경선까지 독일의 북동사면에 걸쳐 있다. 독일에선 대개 그렇듯, 회사 이름도 엔지니어들에게 최적화돼 있다: 50헤르츠는 유럽 전력망의 전기 주파수를 의미한다.

2015년 50헤르츠 관할 지역에서 생산된 재생가능 에너지는 전력 소비량의 49%에 이를 정도로 충분히 많았다. 그 중 38%는 풍력과 태양광이 생산했다. 가장 큰 비중의 에너지원이었다. 백발의 CEO 보리스 슈히트 Boris Schucht는 어느 날 오후 필자와 커피를 마시며 “전 세계에서 간헐적 재생에너지가 이렇게 높은 밀도를 보이는 곳은 이 곳 뿐”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이에 대해 “재생 가능 에너지가 전력 공급에서 큰 몫을 차지하면서도, 높은 수준의 전력체계 안정성까지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회색 맞춤 정장을 차려 입은 그는 베를린의 주요 기차역 건너편에 있는 신축 유리건물 본사 내의 고층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슈히트는 원자력 엔지니어 출신이다. 그는 최근 ‘한 전력 시스템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재생가능 에너지를 수용할 수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방문하는 외국 대표단을 자주 접견하고 있다. 그는 대표단들의 궁금증에 대해 ‘최신 기술과 뛰어난 엔지니어링 기법의 조합’이라는 답을 제시하고 있다. 슈히트는 “내가 에너지 업계에 첫 발을 디뎠을 때만 해도 전력망 사업은 가장 매력 없는 분야였다. 그런데 지금은 가장 섹시한 비즈니스가 됐다. 우리 회사는 완벽하게 섹시하다”며 활짝 웃었다.

50헤르츠의 중심부에는 사내 전력망 제어실이 들어서 있다. 이 제어실은 베를린 동부의 평범한 외곽지역 노이엔하겐 Neuenhagen의 할인 식료품점 근처 부지 내 작은 회색 건물에 위치해 있다. 제어실에 들어가려면 벽에 고정된 파란 센서-출입자의 손 혈류 패턴을 감지한다-에 손바닥을 대야 한다(이 센서는 지문 센서보다 더 높은 수준의 보안 유지가 가능하다. 물론 테러리스트라면 출입이 인가된 회사 담당자의 손가락을 잘라 지문인식기에 대고 들어간 후 전력망을 훼손할 수 있다). 제어실 내부에는 50헤르츠 전력망을 여러 가지 배율과 방향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전자스크린이 벽을 둘러싸고 있다. 스크린 좌측에 있는 기둥 형태의 디지털 측정계가 실시간으로 전력망에서 생산되는 풍력과 태양광의 양을 보고하고 있다.

군터 샤이브너 Gunter Scheibner가 이 전력망 제어실을 관리하고 있다. 그는 50헤르츠와 그 전신 기업에서 총 40년을 근무해왔다. 샤이브너는 확실히 지루했을 법한 프로세스 관리 일은 하며 초기 직장생활을 보냈다. 중앙집중 전력 발전소의 스위치가 켜지면 전기가 생산됐고, 생산된 전기는 관리가 용이하게 일정한 흐름에 따라 고객들에게 송전되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렇지가 않다. 50헤르츠는 바람이 불고 햇빛이 쬐는 방식, 그리고 시기를 정확하게 예측해야 한다. 이 회사는 현재 7개 업체로부터 풍력 생산 예측 데이터, 5개 업체로부터 태양광 생산 예측 데이터를 구입하고 있다. 풍력 데이터의 정확도는 96~98%, 태양광 데이터 정확도는 이보다 약간 낮은 93~95% 정도를 나타내고 있다. 태양광 예측이 좀 더 어려운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태양광 측정이 풍력보다 늦게 시작됐기 때문에, 예측 과학에서도 태양광의 역사가 짧다. 태양광 설치물은 풍력 발전소에 비해 숫자가 많고 크기가 더 작기도 하다. 안개와 눈처럼 풍력 생산과 무관한 많은 변수들이 태양광 전력 생산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지난 2015년 3월 20일 오전, 정확한 예측의 중요성이 더 강조된 한 사건이 벌어졌다. 현지 시간 기준 오전 8시 30분 직후 일식이 일어났다. 유럽을 뒤덮은 당시 개기일식으로 해의 85% 정도가 가려졌다. 태양광 발전은 약 90분 동안 6기가와트 정도 감소했고, 이후 13기가와트 만큼 다시 상승했다. 이 정도 양은 6개 대형 원자력 발전소가 멈췄다가 12개 발전소가 다시 가동된 것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정전은 발생하지 않았다. 치밀한 계획 덕분이었다. 개기일식은 6개월 전 이미 예측되어 있었다. 샤이브너와 그의 동료들은 그 후 태양광 발전의 감소·증가 예측치에 대응하기 위해 열심히 전략을 구상했다. 50헤르츠는 독일의 다른 주요 전력망 사업자들과 함께 독일 전기시장의 다양한 업체들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수 차례 개최하기도 했다. 발전업체와 거래업체들이 다른 전력원을 충분히 사고 팔 수 있게 함으로써 개기일식 시점의 갑작스러운 태양광 변화에 대응하도록 했다.

그들은 개기일식이 발생하자 계획했던 바를 실행에 옮겼다. 샤이브너는 “아무런 사고 없이 시스템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기일식 때 풍력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수반됐다면, 50헤르츠도 이에 대처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운이 좋았다”고 시인했다.

샤이브터는 이런 유형의 문제가 독일의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더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자연의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를 섬세한 공법으로 대응하는 비용이나 난이도는 결코 낮을 수가 없다. 샤이브너와 그의 동료들은 특히 바람이 강하게 불거나 햇볕이 밝게 내리쬘 때, 시스템 주파수가 회사 이름처럼 50헤르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세심한 신경 써야 한다.

전력망 사업자들은 독일 법에 따라 프로슈머들에게 그들이 생산한 풍력과 태양광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50헤르츠에겐 전체 설치물에서 생산되는 발전량의 급증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몇가지 밖에 없다. 회사는 기존 전력업체들에게 생산량 감소를 지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석탄과 가스, 원자력 발전소의 수익성을 저해하는 조치다. 그런데 그마저도 충분치 않을 때가 있다. 50 헤르츠는 이럴 경우 풍력 및 태양광 운영자들에게 전력망 송전을 중단하라고 지시를 한다. 그럼에도 50헤르츠는 법에 따라 재생가능 에너지업체들에게 전기 값을 지불해야 한다.

이런 조치는 공학적 관점에서 ‘혼잡 관리’라 불린다. 그러나 쉽게 말하면 돈 낭비다. 50헤르츠는 2015년 혼잡관리에 3억 5,100만 유로를 썼다. 독일 정부는 전력망 운영 업체들에게 지출에 대한 최소 환급금을 보장한다. 독일 소비자들이 재생가능 에너지의 증가 및 감소분에 적응하기 위해 지출하는 50헤르츠와 다른 전력망 사업자들의 비용 수백만 유로를 대주고 있는 셈이다.

독일은 현재 송전시스템의 업그레이드로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 생산의 대규모 증가분을 감당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50헤르츠는 신규 라인을 추가하고 기존 라인을 보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폴란드, 체코와 맞닿은 독일의 경계선 지방에 ‘변위기(phase shifter)’라는 장치들을 설치하고 있다. 이 기계는 국경선 너머로 전력 과잉분을 보다 쉽게 주고 받게 해주는, 개폐가 가능한 일종의 고급 밸브다. 50헤르츠는 재생가능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대형 배터리 설치도 추진 중이다.





50헤르츠의 CEO 슈히트는 이에 대해 “어려운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도심 불빛이 사무실 아래에서 반짝이는 순간, 그는 ‘전력라인 보강’이라는 회사 슬로건 그 이상의 목표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우리는 향후 행보를 명확히 해야 한다. 전세계에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져 결국 승자와 패자가 갈릴 것이다. 실로 엄청난 변화”라고 강조했다.

독일의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가장 큰 패자는 과거 전통적인 에너지에 기반을 두었던 기업 및 지역사회들이다. 독일의 거대 전력생산업체 RWE AG의 CEO 위르겐 그로스만 Jurgen Grossmann은 2012년 1월 한 회의에서, 독일의 태양광 발전은 “알래스카에서 파인애플을 재배하는 것과 다름 없는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는 그의 CEO 사퇴가 이미 발표된 상황이었다. 그로스만은 그 해 여름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 후에도 비유에 쓰였던 독일의 파인애플은 잘 자라고 있다. RWE는? 그렇지 못하다.

RWE는 지난해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재생가능 에너지 조직(그로스만의 재임 시절 투자가 시작됐다)을 이노기 SE Innogy SE라는 별도 법인으로 분사시켰다. 집중 투자할 수 있는 재생가능 에너지 주식을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RWE는 이노기 지분의 77%를 여전히 소유하고 있으며, 석탄·가스·원자력 발전이라는 오랜 사업모델도 유지하고 있다. 시장의 선호도는 분명했다. 신재생기업 이노기의 시가총액은 3월 초 기준 189억 유로(200억 달러)로, 전통적 에너지 모기업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상황이다.

RWE 이사회의 구조조정 기획을 도운 베테랑 임원 토마스 비르 Thomas Birr는 독일의 재생가능 에너지 전환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됐다고 말했다. 필자는 비바람이 불던 어느날 오전, 독일 서부 석탄지역의 전통적인 중심지 에센 Essen에 있는 전 RWE 본사 건물에서 그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비르는 순전히 수익성 측면에서만 보면 태양광 프로젝트가 “화석연료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젠 더 이상 기존 비용으로 석탄 발전소를 지을 수 없다. 우리는 원자력 발전에 대해선 언급도 하지 않는다. 원자력은 가격 경쟁력에서 완전히 뒤처졌다”고 덧붙였다.

이것이 세계 최대 전통에너지 기업 중 한 곳의 고위 임원이 던진 놀라운 메시지다. 달리기와 승마를 즐기는 비르는 18년 전 석유업계에서 RWE로 옮겼다. 올해 51세인 그는 “탈중심화된 재생가능 에너지가 관련 업계를 그야말로 뒤흔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이노기의 ‘혁신 허브’ 구성을 기획하고 있다. ‘혁신 허브’는 청정 에너지 벤처 캐피털 펀드 등을 포함하는 사업이다. 그는 실리콘밸리 창업가들의 모습과도 일부 닮아있다: 짧은 헤어스타일에 최신 유행의 두꺼운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있다. 그는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기계 경제’, ‘파괴적 디지털’ 같은 표현들을 자주 사용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눈 에센 최고층 건물은 최근 모회사 RWE를 제치고, 자회사 이노기 본사로 새 단장을 했다. 필자가 방문한 날 건물 입구에는 ‘우리는 선구자가 될 것’이라 쓰여 있는 파란색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E.ON은 RWE와 함께 전통적으로 독일의 양대 대규모 전기 생산업체였다. E.ON도 지난해 재생가능 에너지와 전통적 에너지 부문으로 사업을 재편했다. E.ON의 CFO를 역임한 클라우스 샤퍼 Klaus Schafer는 현재 E.ON의 석탄 및 가스자산 부문을 소유·운영하고 있는 유니퍼 SE Uniper SE의 CEO를 맡고 있다. 그는 독일의 장기 탄소절감 목표에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접근 방식은 “매우 공격적”이다. 독일이 절감 목표치를 충족하기 위해 재생가능 에너지를 추진해온 방식 그대로다. 그는 “앞장서서 해야 하고, 더 많은 비용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E.ON은 재생가능 에너지를 계속 강조하는 정부 의도를 감안해 조직을 2개로 분할했다. 샤퍼는 “어떻게 신규 석탄 발전소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태양광 발전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한 기업체가 어떻게 이런 상반된 목표들을 확실히 추진할 수 있겠는가?”라고 다소 과장된 표현으로 반문했다. 과거 E.ON의 경영을 지배했던 질문을 반복한 것이었다. 그는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E.ON의 신 에너지 사업체의 시가 총액은 이노기와 RWE처럼 3월 중반 150억 유로(160억 달러)를 기록했다. 구 에너지 기업 유니퍼 시가 총액의 세 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독일 연방 경제·에너지부 라이너 바케 장관은 에네르기벤데의 정치적 대부이다.독일 연방 경제·에너지부 라이너 바케 장관은 에네르기벤데의 정치적 대부이다.



독일 연방 경제·에너지부 라이너 바케 Rainer Baake 장관은 전력업체들에겐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을 냉철한 인물이다. 에네르기벤데의 정치적 대부가 있다면 그가 바로 바케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독일 정부 고위 관료와 환경 기구 고위직을 번갈아 역임해왔다. 그는 생태운동가의 ‘심장’과 깐깐한 협상가의 ‘결기’를 모두 갖추고 있다. 큰 키와 마른 체형을 가진 그는 파란 눈, 짧게 자른 머리, 세심하게 다듬은 흰색 수염이 특징이다. 얼핏 보면 나이가 약간 많은 스팅 Sting *역주: 영국의 싱어송 라이터 처럼 보인다.바케는 필자에게 “전력회사들이 성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는 어느 날 오후, 그의 우아한 에너지부 사무실에서 만났다. 독일에선 흔한 구미 베어 Gummy Bears 젤리가 테이블 위 그릇에 가득 담겨 있었다. 벽에는 그의 부인이 아프리카에서 찍은 대형 사진 2장(사자와 재규어)이 걸려 있었다.

바케는 지난 2000년 환경부에서 유사한 고위직을 역임할 당시, 정치적 협상을 주도해 독일의 발전차액 지원제도를 이끌어낸 바 있다. 그는 에네르기벤데의 군살을 빼고 보다 더 깐깐하게 운영하기 위해 20년 가까이 노력을 기울여왔다.

바케는 재생가능 에너지 보조금 비용을 감축하는 개혁을 단행, 많은 환경운동가들을 화나게 하기도 했다. 독일은 대형 신규 풍력 및 태양광 사업에 대해 획일적인 지원금을 계속 지급하는 대신, 보조금을 경매에 붙이기 시작했다. 이 제도는 다른 국가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독일은 이런 경쟁을 통해 비용을 낮출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원자력 발전소를 최종 폐쇄하고 탄소를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고 있는 정부 방침을 선도하면서 전력업계와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있다. 이 조치 때문에 독일은 발전소를 조기 폐쇄하는 전력업체들에게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독일의 기후 정책에 또 다른 비용이 수반되는 셈이다.

바케는 자신이 하는 일의 상징적 중요성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 독일이 성공한다면, 그 ‘리더십 효과’는 지구에 실제로 미치는 영향력을 훨씬 넘어설 것이다. 바케는 “독일의 탄소배출량을 0으로 낮춘다고 해도 전세계 기후에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은 전세계 탄소 배출량의 겨우 2%만 배출한다. 이란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중국은 24%, 미국은 13%를 차지하고 있다. 바케는 “독일의 진짜 목표는 본보기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정책은 경제적이고효율적인 방식으로 실행돼야만 한다. 그러면 다른 국가들도 따라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디터 더마이어는 지금 자신의 농장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그가 처음 헛간에 설치했던 태양광 사업은 2024년까지 세금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다. 더마이어는 독일 정부가 태양광 발전 보조금을 설계한 방식대로 회사를 운영한다면, “사업주는 곧 파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그는 가능하다면 기꺼이 더 많은 태양 전지판을 설치할 생각이다. 하지만 그의 농장에서 전력망으로 향하는 전력선이 최대 한도를 초과했고, 지금은 지붕에 설치할 자리도 없는 상황이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 / BY JEFFREY BALL

JEFFREY 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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