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물구경...산구경...일석이조 충북 진천] 천년의 세월을 건너는 농다리...깊은 사색에 잠기다

고려 초기 축조 이후 옛모습 그대로

6·25전쟁 관련 전설 등도 깃들어

초평호 한눈에 볼수 있는 농암정 등

농다리 수변 탐방로도 볼거리 가득

만뢰산생태공원서 '야생초 꽃놀이'

보탑사 3층 목탑 오르면 감탄 절로

고려 초기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농다리는 천년 넘게 세금천의 유속과 수량을 견뎌내며 그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려 초기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농다리는 천년 넘게 세금천의 유속과 수량을 견뎌내며 그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어디를 갈까.’ 고민은 여행지를 선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막상 여행지를 골랐어도 해당 여행지의 관광명소를 고르는 일이 만만찮다. 시간과 체력이 유한하다는 핑계를 대지 않더라도 끌리지 않는 여행지를 무리해서 방문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된 일이기 때문이다.

산 좋고 물 좋아 생거(生居)라는 단어가 따라붙는 충청북도 진천은 그런 점에서 고마운(?) 여행지였다. 가끔 일이 있어 중부고속도로를 달릴 때마다 이름부터 특이한 다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농다리’. 빠른 속도 탓에 처음에는 ‘롱다리’로 읽었다. ‘얼마나 길길래 다리 이름이 저럴까.’ 그렇게 여러 차례 눈과 마음을 간지럽혔던 그 다리를 가장 먼저 찾았다.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 앞을 흐르는 세금천에 놓인 농다리 앞에 서면 우선 다리의 견고함에 놀랄 수밖에 없다. 고려 초기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농다리는 천년 넘게 세금천의 유속과 수량을 견뎌내며 그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수많은 전설이 깃들어 있는 농다리를 관광객이 건너고 있다.수많은 전설이 깃들어 있는 농다리를 관광객이 건너고 있다.


비결은 교각의 모양과 축조 방법에 있다. 돌의 뿌리가 서로 물리도록 쌓았으며 속을 채우는 석회물의 보충 없이 돌만으로 건쌓기 방식으로 쌓아 장마에도 유실되지 않고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홍병상 해설사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농다리와 비슷한 다리를 만들려고 했지만 유속을 견디지 못하고 쉽게 무너진 경우도 있다”며 농다리의 견고함을 자랑했다.


천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만큼 농다리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다. 6·25전쟁이 일어난 해 농다리가 울었다는 전설, 장마에 농다리 상판이 뜨면 나라에 큰일이 일어나고 훌륭한 인물이 죽거나 기상 이변이 생긴다는 전설 등 내용도 가지가지다. 생각보다 길지 않은 93.6m의 다리를 건너면서 해설사로부터 들은 농다리의 전설들을 생각하면 해설사가 한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돈다. “농다리는 역사를 이어주는 다리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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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세월과 역사가 깃들어 있어도 다리 하나뿐이라면 심심하기 마련이다. 농다리 수변 탐방로는 다양한 선택지를 준다. 초평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농암정·인공폭포·등산로 등 온전히 하루를 보낼 만한 수많은 볼거리들이 즐비하다.

농다리에서 물 좋고 산 좋다는 진천의 향기를 오롯이 느꼈다면 잠시 쉬어가는 코스로 종박물관을 방문해도 좋을 듯싶다. 국내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조사된 진천 석장리 고대 철 생산 유적지가 있는 진천에 건립된 종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종박물관으로 농다리에서 20분 정도 차로 달리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실제 종이 전시돼 있지는 않지만 1층 상설전시실에는 통일신라·고려·조선·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범종이 전시돼 있어 한국 종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2층에는 한국 종의 제작 과정을 볼 수 있는 장소도 마련돼 있다.

비구니인 지광·묘순·능현스님이 창건한 보탑사 경내에 자리 잡은 3층 목탑.비구니인 지광·묘순·능현스님이 창건한 보탑사 경내에 자리 잡은 3층 목탑.


깊은 산을 찾아 산이 좋은 진천의 모습을 좀 더 진하게 느끼고 싶다면 보탑사를 추천한다. 보탑사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만뢰산자연생태공원에 들러 다양한 야생초를 보며 꽃놀이를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금낭화, 돌단풍, 노루오줌, 초롱꽃, 기린초, 꽂뱀의 꼬리 등 다양한 야생초들이 야생초 화원에 펴 있다. 야생화의 향기를 코끝에 새긴 채 차로 5분 정도 이동하면 보련산(寶蓮山) 자락에 있는 보탑사가 보인다. 고려 시대 절터로 전해지는 곳에 비구니인 지광·묘순·능현스님이 창건한 보탑사 경내로 들어서면 이름 모를 꽃들이 이곳을 찾는 이들을 먼저 반긴다.

그렇다고 아기자기한 멋만 있는 사찰은 아니다. 사찰 가운데로는 황룡사 9층 목탑을 모델로 만든 3층 목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높이는 42.71m로 상륜부(9.99m)까지 더하면 총 높이가 무려 52.7m에 이르는데 이는 14층 아파트와 맞먹는 높이다. 1992년 대목수 신영훈을 비롯한 여러 부문의 장인들이 참여한 불사를 시작해 1996년 8월 3층 목탑을 완공했고 그 후 지장전·영산전·산신각 등을 건립하고 2003년 불사를 마쳤다. 강원도산 소나무를 자재로 해 단 한 개의 못도 사용하지 않고 전통 방식을 고수해 지어졌다. 1층은 대웅전(199㎡), 2층은 법보전(166㎡), 3층은 미륵전(136㎡)으로 이뤄져 있다. 장엄함에 시선을 빼앗겨 3층 목탑을 한동안 바라보다 내부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은 못하고 있었지만 이곳 주지인 능현스님의 권유로 내부로 발을 들였다.

보탑사 3층 목탑에서 바라본 풍경.보탑사 3층 목탑에서 바라본 풍경.


대웅전에는 사방불(동방 약사우리광불, 서방 아미타여래불, 남방 석가모니불, 북방 비로자나불)이 배치돼 있으며 법보전에는 윤장대(輪藏臺·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회전하도록 만든 책장)를 두고 팔만대장경 번역본을 안치했고 한글법화경을 총 9톤의 돌판에 새겨놓았다. 미륵전에는 화려한 금동 보개 아래에 미륵삼존불을 모셨다. 2층과 3층 외부에는 탑돌이를 할 수 있도록 난간이 설치돼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사찰”이라는 주지 스님의 이야기가 거짓이 아님은 목탑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보면 알 수 있다. /글·사진(진천)=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

박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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