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제공=서울시·서울대 인권센터 |
1944년 9월 어느 날, 중국 윈난성 숭산의 한 민가 건물 앞에 몹시 겁에 질린 위안부 여성 7명이 서 있다. 중국군 장교가 위안부 1명과 대화를 나누고 있고, 나머지 여성들은 초조하고 두려운 표정으로 침묵하고 있다. 모두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맨발로 서 있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로 있다 생존해 연합군 포로로 잡혀 온 여성이다. 1944년 9월께 아시아·태평양 전쟁은 일본의 패전으로 치닫고 있었다. 일본군이 점령한 중국 숭산은 미·중 연합군에 탈환됐다. 이때 일본군 위안부로 있던 24명 중 10명이 생존해 연합군 포로로 잡혔다.
1944년 당시 한국인 위안부의 모습을 촬영한 영상이 73년 만에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시와 서울대인권센터 정진성 교수팀은 5일 중국 숭산에 포로로 잡혀있던 위안부 7명을 촬영한 18초짜리 흑백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은 당시 미·중연합군으로 활동했던 미군 164통신대 사진대 배속 사진병이 1944년 9월 8일 직후 촬영해 소장했던 것이다. 시와 서울대 연구팀은 2년 여간 기발굴된 문서와 사진 등을 분석해 관련 정보를 추적하고,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필름 릴(reel) 가운데 수백 통을 일일이 확인해 영상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껏 문서와 사진, 고령 위안부 생존자의 증언만이 한국인 위안부 참상을 증명하는 유일한 자료로 활용돼 왔다. 대중에 공개된 기존 위안부 영상 역시 영국의 임페리얼 워 뮤지엄이 소장한 중국인 위안부를 담은 2편의 영상이다. 한국인 위안부를 실제 촬영한 영상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이번 성과가 유의미한 셈이다.
이번에 영상이 처음으로 발굴되면서 일본군이 위안소를 운영했다는 입증 자료가 더욱 탄탄해진 것으로 분석된다.
연구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영상 자료는 학술적 가치가 매우 뛰어나다 말할 순 없지만, 문서와 사진을 통해선 알 수 없었던 행동·몸짓 등을 통해 인물 간 관계와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추정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선 여전히 일본 정부와 일본군의 공문서가 압도적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어 국내 연구자들의 문서 접근이 어려운 상황인데, 이 같은 해외 조사를 통한 자료 발굴은 그래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연구팀은 중국 룽링에서 일본군 위안소로 활용했던 건물을 촬영한 영상도 함께 공개했다. 그랜드 호텔, 게이샤 호텔이라고 불렸던 2층짜리 이 건물을 담은 영상은 미·중 연합군이 룽링을 점령한 직후인 1944년 11월 4일 53초 길이로 촬영된 것이다.
영상 발굴은 서울시가 진행하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관리사업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연구 관련 예산을 끊거나 삭감하자 서울시가 서울대 연구팀에 예산을 지원해 발굴 사업을 해왔다.
한국·중국 등 8개국 14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제연대위원회는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유네스코에 2,744건의 기록물을 신청했으며, 올해 9월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다. 서울시는 발굴된 위안부 영상자료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도움이 되도록 힘을 보태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