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한수원 이사회를 거수기로 만든 원전 공사 중단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중단 요청을 받은 시공회사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해당 건설회사들은 한수원 이사회의 의결도 거치지 않은데다 공사중단 기간의 피해에 대한 배상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공사부터 먼저 중단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건설회사들은 공사를 중지할 합리적 사유가 없다는 내용의 반박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절대적 ‘을의 신분’인 건설회사가 대규모 공공발주처를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런 후유증과 혼란은 익히 예고돼왔다. 원청업체 소속 직원들이야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일용직 근로자의 생계는 막막하다고 한다. 공론화 기간인 3개월만 공사를 중단해도 손실액은 1,00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원전 폐기가 최종 결정되면 2조6,000억원의 매몰비용이 든다. 공사 잔량을 포기해야 하는 시공사 손실과 원전을 대체할 신재생에너지 비용을 제외한 것이 이 정도다. 원전을 유치한 울주군 지역주민과 한수원 노조는 한수원 이사회가 공사중지 결정을 의결하면 배임의 책임을 묻겠다며 벼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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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 지경이 된 데는 정책 결정 과정의 구조적 결함 탓이 크다. 위에서 결정하고 아래로 내려보내는 식이다 보니 꼬인 것이다. 국무조정실은 지난달 27일 탈원전을 공론에 부치자며 공사중단을 결정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가 한수원에 ‘협조요청’을 하자 덤터기를 쓴 한수원은 이를 시공사에 그대로 전달한 것이다. 산업부는 한수원에 포괄적 감독권을 행사한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지만 원전규제 당국이 아닌 감독권자가 공사중단 명령을 내린 것을 두고 절차적 정당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수원 이사회가 13일 재소집될 예정이다. 결론은 뻔하니 한수원 이사회가 졸지에 거수기로 전락할 처지다. 이건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러고도 절차적 정당성을 입에 올릴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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