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륜차 시장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간 30만대 규모에 달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만대 수준으로 대폭 축소됐다. 대림자동차의 이륜차사업부 매각이 계속 실패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코라오그룹 역시 S&T모터스를 인수해 국내 이륜차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쪼그라든 시장에서 힘을 못 썼다.
여기다 외국산 브랜드의 시장 진입은 경쟁을 대폭 확대했다. 2005년 7만3,056대를 생산했던 대림자동차는 10년만에 3만대 수준으로 생산량이 줄었고 KR모터스 역시 1만대 가량이 줄어든 1만8,855대 생산에 그쳤다. 1980년대부터 생산돼 국산 이륜차의 대표 모델로 자리 잡았던 ‘시티 시리즈’모델조차 국내 판매량이 연 1만대를 간신히 넘길 정도다. 연간 3,498대를 판매하던 혼다코리아는 1만4,505대로 판매 2위 자리를 노릴 정도로 성장했다. 특히 주력인 상용(배달용) 시장에선 혼다 외에도 2000년 중반부터 밀려온 중국과 대만산의 위협은 국산 이륜차시장을 고사시켰다. 국내뿐만 아니라 동남아 등 해외 시장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밖에 고가의 레저용 이륜차 시장은 BMW, 할리데이비슨, 두카티, 가와사키 등 해외 제조사가 차지했다. 자연스레 대림자동차와 KR모터스는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여력도 없는 상태로 전락했다.
대림자동차와 KR모터스 모두 위기 돌파를 위해 신제품 출시와 해외진출을 확대 등을 추진했지만 내수 시장에서의 부진, 저렴한 중국·대만산과의 경쟁이 발목을 잡았다. 해외수출을 늘리려 안간힘을 썼지만 중국과 대만 저가 이륜차보다 가격경쟁력이 부족했고, 일본의 기술력과 시장 지배력을 뛰어넘기는 어려뒀다.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는 판단은 두 곳 모두 절박했다. IB업계에 따르면 이번 거래 성사를 위해 오세영 코라오그룹 회장이 직접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오 회장은 지난 1997년 라오스에 진출한 이후 20여년만에 코라오그룹을 라오스의 대표 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오 회장과 코라오그룹은 라오스의 ‘정주영’, 라오스의 ‘현대’라고 불릴 정도다.
코라오는 창립 당시 본업이었던 자동차 조립판매부터 바이오에너지, 전자·유통, 건설, 금융, 레저 등의 폭넓은 사업을 꾸려가고 있다. 라오스에 등록된 자동차 20여만대 중 절반가량이 코라오가 판매한 한국 자동차일 정도다. 오 회장은 코리아(Korea)와 라오스(Laos)를 합쳐 회사 이름을 지을 만큼 코리아 프리미엄에 대한 자신감이 강한 인물로 유명하다. S&T모터스를 인수한 이후 KR모터스로 사명을 변경한 것도 코리아를 상징한다는 뜻에서였다.
오 회장은 한국 제품에 대한 동남아시아의 신뢰가 상당히 높다는 점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경우 이륜차 한류바람이 충분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KR모터스가 단순히 해외에 한국산 이륜차를 직접 수출하는 것에서 벗어나 현지에서 원하는 모델이나 디자인, 성능 등을 구상한 후 그대로 제작해 판매해 왔다는 점도 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KR모터스는 스쿠터 V1과 언더본(엔진이 차체 뼈대 아래에 있는 설계방식) 바이크 V2를 라오스에 출시하는 등 동남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전략형 모델로 호평을 받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대림자동차 이륜차사업부에 대한 인수 의지를 피력한 기업은 있었지만 무산됐다”며 “이번 KR모터스의 대림자동차 인수는 국내 이륜차 산업을 발전시키려는 두 회사의 의기투합으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송종호·유주희기자 joist1894@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