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남 광양 산업단지 내 건설자재 기업 B사에 근무하는 김동수(31·가명)씨는 주말만 기다린다. 회사 근처에는 PC방이 없어 주말이 돼서야 광양 시내에 나가 게임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출신인 김씨는 “이직하기 전에는 친구들과 평일 저녁에 자주 팀플레이 게임을 했었는데 이곳 회사 근처에는 PC방이 없는 탓에 평일에는 엄두도 못 낸다”며 “차 타고 나가면 금방이라고 하지만 경제적으로 아직 중고차를 살 여유도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시간만 20분이고 버스 탑승 시간은 40분이라 시내에 나가려면 1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덧붙였다.
#2. 연일 폭염이 이어졌지만 에어컨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생산 작업 현장의 직원들은 쉽게 지친다. 광주 광산구 평동일반산업단지 내 기아자동차 협력사 C기업에서 생산직으로 근무하는 박선영(26·가명)씨는 “냉방시설이 잘 가동되지 않아 땀 닦기에 정신이 없고 뜨거운 공기 때문에 숨 쉴 때도 답답하다”며 “대기업 협력사이다 보니 다른 중소기업에 비해 안정적인 매출이 나고 있어서 연봉은 3,500만원으로 높은 편이지만 이직 생각이 자주 드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낮은 임금은 청년층이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는 이유로 가장 먼저 꼽힌다. 하지만 변변한 PC방이나 원룸 하나 없는 황량한 공단 주변 여건이나 소음·열기를 견디기 힘든 열악한 일터 환경이 청년들을 중소기업에서 더욱 멀어지게 하고 있다.
특히 지방 기업이 많이 모여 있는 산업단지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그동안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환경개선사업을 벌였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단지는 전국적으로 8만개가 넘는 기업이 입주하며 약 200만명의 고용을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14년 한국산업단지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산업단지 인근 대학생의 절반은(47%) 편의시설 부족·교통 불편·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산업단지 내 취업을 기피하고 있다. 생활의 필수요소인 주거·보육·문화·체육시설과 대중교통 또는 통근버스 시스템 등이 마련돼 있지 않은 곳은 부지기수다.
전국 산업단지 중 통근용 전세버스 운행허용 산업단지는 34개(국토교통부 고시)지만 그중 실제로 통근버스를 운행하는 산업단지는 10개에 그친다. 또 2015년 12월 산업입지연구소에서 발표한 ‘산업단지고용환경개선 수요조사’에 따르면 혁신산업단지의 평균 종사자 수가 약 8만5,000명인 것에 비해 내 평균 기숙사형 오피스텔의 수용인원은 578명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울산 남구 소재 선박 부품 제조기업 A사 대표는 신입직원 채용에 어려움을 겪자 최근 회사 근처에 별도로 기숙사를 만들었지만 신입직원을 뽑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A사 대표는 “회사 주변에 제대로 된 카페나 편의시설이 없어서 울산 시내에 나가려면 차를 타고 20분 정도 가야 하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의 선호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며 “기업 입장에서도 할 만큼 했는데 정부에서 좀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지방 산업단지에 있는 기업들은 구인난에 시달리다 인재 확보를 위해 수도권으로 이전하고 있다. 세종과 충북 제천·오송 등지에서 연구소와 생산공장을 운영하던 화장품 ODM 업체 한국콜마는 내년에 서울 서초구 내곡동으로 이사를 완료할 계획이다. 한국콜마 관계자는 “회사가 급성장하며 매년 100명 넘는 신입직원을 뽑고 특히 연구인력이 30%를 차지할 만큼 인재가 중요한데 연구소가 지방에 있다 보니 채용이 어렵다는 점이 사옥 이전의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밝혔다. 그는 “원룸촌이나 구내매점 100개가 생기는 것보다 스타벅스나 영화관 하나 있는 지역을 젊은 사람들은 더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과 청년에 대해 각종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과 더불어 일터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청년 고용률 증대의 해법이라고 말한다. 한정화 전 중소기업청장(한양대 교수)은 “중소기업 취업 활성화를 하려면 단순한 인건비 지원보다는 근로자의 주거와 교육 여건이 개선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에 나서야 한다”며 “산업단지 내에 사립학교 교육존을 만들어 국제중학교를 유치하고 어학연수 프로그램도 지원하는 등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