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사진)는 국민배우라 할 수 있다. ‘괴물’과 ‘변호인’ 등 1,000만 관객을 두 번이나 동원한 영화에 출연해서만이 아니다. ‘공동경비구역 JSA’, ’살인의 추억’, ‘효자동 이발사’, ‘괴물’, ‘밀양’, ‘의형제’,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 ‘사도’, ‘밀정’ 등에서 그는 부성애 절절한 아빠, 엄격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 군인, 경찰, 이발사, 사랑에 빠진 평범한 남자 등 모두 한 시대를 관통하고 대변하는 ‘우리’를 연기해 깊은 공감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의 목격자가 돼 관객들에게 그날의 일들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거액을 준다는 말에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로 내려갔다가 광주의 비극과 참상과 마주하게 된 택시운전사 김만섭의 실화를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만섭 역을 맡은 송강호를 13일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응어리로 남아 있는 37년 전 광주의 비극을 되새기는 것은 물론, 앞으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이 영화 ‘택시운전사’의 최종적 지향점이 아닌가 싶어요.” 그가 영화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이렇게 우리가 광주 민주화 운동을 대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았다.
영화는 아내가 일찍 세상을 떠나 홀로 딸을 키우는 만섭의 일상에서 시작한다. 1980년대 거리를 뒤덮은 화염병 연기와 대학생들의 시위 행렬은 군부 독재 시절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담았지만 먹고 살기 바쁜 만섭에게는 손님을 쫓는 반갑지 않은 존재고, 대학생들의 시위는 비싼 돈 들여서 공부해야 할 학생들의 쓸데 없는 짓으로 보일 뿐이다. 하루 종일 일을 하지만 월세가 10만 원이나 밀린 만섭은 1980년대를 살았던 평범한 시민을 대표한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라는데 언제쯤 광주의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해할 만큼 영화는 만섭의 일상을 깊게 그리고 길게 다룬다. 송강호는 이에 대해 광주를 바라보는 만섭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시선이기 때문에 광주로 들어가기까지의 이 긴 ‘사설’이 중요하다고 했다. “광주를 빨리 만나고 싶은데 왜 이렇게 사설이 기냐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동안 ‘꽃잎’, ‘화려한 휴가’ 등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와 ‘택시운전사’가 다른 점은, 독일 기자의 눈, 광주가 고향이 아닌 사람의 눈, 외부자의 시선이라는 것이죠. 광주의 진실을 우리가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평범한 사람, 광주가 고향도 집이 있는 곳도 아니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본 광주의 진실을 보는 거니까요.” 광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관계도 없는 제3자가 목격한 광주가 얼마나 충격적이었을지를 영화는 이렇게 만섭이 광주를 목격하게 될 때까지의 긴 시간으로 표현해낸다.
영화는 영문도 모른 채 참상을 당하는 피해자들과 이들을 돕는 시민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돈을 벌려고 광주에 왔고 광주를 목격하고 나서는 빨리 떠나고 싶었지만 총에 맞고 쓰러진 시민들을 모른체 하지 못하는 만섭을 비롯해 먹을 것을 나눠주던 아주머니, 환자들을 병원으로 실어나르던 광주의 택시운전기사, 독일 기자의 취재를 모른 척 해줬던 군인들까지. ‘택시운전사’가 주는 감동과 울림도 바로 이러한 보편적인 인간애와 따듯함이다. “만섭과 힌츠페터가 광주를 빠져나가는 부분에서 카레이싱 장면이 나와요. 이들이 무사히 서울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광주 택시운전기사들이 군인들을 막아주는데 이런 건 실화는 아니고 다른 장면과 톤도 다르지만 당시 광주 시민과 택시운전기사들의 마음을 영화적으로 담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택시운전사’는 너무나 아프게 희생당한 광주시민을 위로하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당시 고통을 받으면서 작전을 수행했던 군인들에 대한 마음을 담기도 했어요. 만섭과 힌츠페터가 무사히 빠져나가도록 모른척 해주는 중사(엄태구 분) 이야기는 시나리오에서 가장 맘에 드는 장면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 영화는 이 모든 분들에게 바치는 헌사와 같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사진제공=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