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유발 하라리 "AI, 최악의 불평등 시대 만들 것...적절한 규제 필수"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유발 하라리 '호모데우스' 국내 출간 간담

엘리트 AI·생명공학 기술 독점땐

'신' 맞먹는 능력...수십억명에 영향

시장·기업 자율규제 맡겨선 안돼

정부·대중의 신기술 이해도 높여

공포 대신 기술발전 관심 유도해야

13일 서울 정동 이화여자고등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사피엔스’ ‘호모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13일 서울 정동 이화여자고등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사피엔스’ ‘호모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공지능(AI)은 폭발적인 힘을 가진 기술인 만큼 이런 기술을 시장이나 기업이 스스로 규제하도록 맡기는 것은 위험합니다. 정부나 대중이 AI의 개발과 규제에 훨씬 더 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 등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는 13일 서울 중구 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AI는 수십억 명의 사람을 실직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고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세상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며 “결국 신기술의 출현이 몇몇 엘리트의 손에 힘을 집중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국내에 번역 출간된 ‘호모데우스’는 생명공학과 AI기술의 결합으로 스스로 ‘신’이 된 인류가 정치·사회·문화·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통찰하는 책이다. 하라리 교수는 “여기에서 말하는 신은 은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생명을 창조하고 파괴하는 ‘신(God)’이 된다는 것”이라면서 “신의 능력을 갖춘 인간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I는 수십억 명을 실직 상태로 몰아넣어 전혀 쓸모없는 계급을 만들어낼지도 모릅니다. 독재정권을 출현시킬 수도 있고 데이터 알고리즘으로 인간을 통제할 수도 있죠. 경제적 계급의 차이가 생물학적으로 설명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습니다. 어떤 형태가 됐든 역사상 인간이 창조한 사회 중 가장 불평등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제도’가 “매우 흥미롭고 잠재력도 많은 실험”이라면서도 국가 간 격차를 해소하는 데는 풀어야 할 난맥이 많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하라리 교수는 “예를 들어 섬유 생산을 100% 자동화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면 한국이나 핀란드·미국 같은 나라는 부자가 되겠지만 값싼 노동력으로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방글라데시·과테말라 같은 나라는 위기에 처할 것”이라며 “이때 한국이나 핀란드·미국에서 세금을 더 걷어 다른 나라 국민을 돕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라리 교수가 내놓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AI와 로봇이 소수의 인간에게 엄청난 힘을 주고 인류의 대부분은 힘을 뺏기게 되는 경우’다. 과거의 엘리트들에게는 군사력이나 노동력이 필요했지만 AI와 로봇이 노동력을 대체하는 21세기 엘리트들은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의료나 복지 서비스에 투자할 필요가 없게 된다는 것도 그가 내다보는 잿빛 미래의 일부다. AI에 대한 적절한 규제를 역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라리 교수는 “AI와 생명공학의 결합으로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와 정치력을 잃고 산업을 지배하는 몇몇 엘리트의 손에 힘이 집중될 수 있다”며 “바람직한 규제를 위해서는 정부와 대중이 신기술에 대해 교육받고 기술 발전에 관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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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하라리 교수는 이해가 아닌 무지·공포에 기반을 둔 과잉 규제를 경계했다. 그러면서 지적한 것이 AI가 고통이나 사랑·쾌락·증오 등을 느끼게 되는 이른바 의식을 갖게 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제로에 가까운데도 이에 대한 공포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국내 독자들에게 지옥의 묵시록을 읊는 예언자처럼 알려져 있지만 그는 스스로를 미래학자라 칭하지 않는다. “미래학자는 여러 가지 사실로 한 가지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한 가지 역사적 사실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역사학자일 뿐”이라는 것. 인류가 미래사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그는 현재로는 “답이 없다”고 했다. 다만 “미래를 맞을 세대에게 당장 20~30년 후 쓸모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려운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기보다는 변화하는 시대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최선”이라고 조언할 뿐이다.

“우리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 여러 가지 지식을 갖고 있지만,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미래를 예측할 능력이 적은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은 혼돈·무지·변화의 상태에 대처하는 법이죠. 구체적인 정보나 기술을 가르치는 데 집중하기보다 정신적 균형이나 유연성을 기르는 데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차기작에서는 무엇을 다룰까. 하라리 교수는 “과거와 미래를 다뤘으니 ‘오늘(present)’에 관한 책이 되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13일 서울 정동 이화여자고등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사피엔스’ ‘호모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13일 서울 정동 이화여자고등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사피엔스’ ‘호모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 교수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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