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관리 서비스 분야의 우버’로 불리는 눔(NOOM)의 한국 대표를 맡으며 전문 최고경영자(CEO)로 화려하게 이름을 알렸다. 이후 구글 캠퍼스 서울이 문을 열자 멘토단으로 합류해 구글 캠퍼스에 초창기 입교했던 스타트업들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그의 다음 행보를 궁금해했다. 그가 다시 ‘내 회사’를 차렸다. 이미 창업한 회사의 CEO로 가거나 벤처 투자사에 합류하는 선택지도 많았지만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길을 가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지난해 서비스를 시작한 맞춤 금융상품 추천 서비스 핀다의 이혜민(34) 창업자 겸 대표 이야기다.
이직으로 소속을 바꾸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그는 네 번의 창업으로 각기 다른 회사를 차려 연쇄 창업가(Serial Entrepreneur) 타이틀을 얻었다. 하지만 매번 창업한 회사에서 지금 잘하고 있는 게 중요하다며 연쇄창업자라는 말이 거추장스럽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대표였을 것 같은 그에게도 직장생활의 추억은 있다. 고려대 서어서문학과에 입학한 뒤 전공에 매이지 않고 법학 전공을 비롯해 사회학, 심리학, 경영, 경제학 다양한 수업을 들었다. 학점이 아니라 재밌어서 수업을 듣다 보니 국제 대회, 컨퍼런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등 다양한 무대에도 연이 닿게 됐다. 이렇게 다양한 대외활동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손사래를 친다.
“저희 때는 이런 활동도 기회가 다양했어요. 자랑할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요새는 이런 활동들이 경쟁도 치열해지고 스펙이라고 부르더라고요”
◇ 5년 차 직장인 사표를 내던지다… 창업가의 길
“졸업 후 STX 지주회사에 입사해 해외 신사업 발굴 업무를 5년 가까이 했어요. 업무 특성상 권한이 많이 주어지는 편이었지만 아쉬웠죠. 마침 ‘로켓인터넷(Rocket Internet)’이라는 독일의 벤처 투자·육성 회사에서 인큐베이팅을 받을 기회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당시는 스타트업이라는 말도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이어서 이름만 듣고 회사 사람들은 건전지 만드는 회사로 가느냐며 걱정하기도 했어요(웃음)”
그렇게 로켓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2011년 화장품 정기구독(섭스크립션) 서비스인 ‘글로시 박스’를 창업했다. 그때 함께 한 공동창업자가 꽃 정기구독 서비스 ‘꾸까’의 창업자가 된 박춘화 대표다. 이후 2012년 유아용품·유기농 식재료 정기배송 서비스 ‘베베앤코’를 창업하고 2013년에는 정세주 대표가 창업한 눔의 한국 대표를 거쳤다.
창업을 하기까지 먼저 창업에 도전했던 남편의 영향도 컸다. 어느 날 메신저로 연락이 온 중학교 친구는 창업을 하기 위해 한국에 돌아왔다고 말했다. 창업이라는 세계를 알게 됐고 그 친구와 사귀게 되면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창업을 지켜보게 됐다. 그가 2009년 고급 레스토랑 전문 소셜커머스 베스트플레이스를 창업한 뒤 로켓인터넷 코리아, 그루폰 코리아를 거쳐 현재 기업정보 공유 서비스 잡플래닛을 창업한 황희승(33) 대표다.
둘은 삼년 전 결혼을 했다. 연애 시절 그들의 데이트는 함께 제휴 업체를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고 영업을 하고 거기서 때로는 시식을 하는 등 일과 데이트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이 대표는 남자친구의 사업에서 막히는 부분을 같이 해결하려고 아이디어를 보태거나 소소한 컨설팅을 해주기도 하는 일에 재미를 느꼈다. 창업이 매 순간 수많은 문제에 부딪히는 일인데 이를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간단하게 풀어내는 일들이 재밌다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각자의 사업영역에 대해서는 서로 관여하거나 이야기하는 일도 피하게 된다고 한다)
보통 창업을 할 때는 본인이 평소에 관심을 가지거나 전문성이 있는 아이템을 중심으로 시작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 그래서 수많은 이들이 나는 아직 아이템이 없다는 이유로 창업을 먼 일로 미뤄둔다. 네 번이나 창업을 한 그는 어땠을까.
“저는 제 나이 또래가 진짜로 관심을 가질 만한 것들을 아이템으로 잡았어요. 저희가 문제라고 느끼고 이를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에 소비자들도 공감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20대부터 보면 처음에는 자신을 꾸미는 일에 관심을 갖다가 좋은 먹거리들, 건강 관리 등에 관심갖는 시기를 거치지 않나요. 또 인생에서 결혼 등 중대사를 앞두면서 모든 관심은 ‘돈’으로 모아지고요”
실제로 그의 창업 아이템들도 화장품 정기구독에서 유기농 식재료·유아용품 배송으로, 다이어트와 건강관리, 재테크로 옮겨갔다.
◇ “금융정보를 발품 팔지 않고도 쉽게 얻을 수는 없을까”
핀다를 창업하게 된 계기도 대학생 때 국내에서 처음 출시된 온라인 예금 상품에 가입했던 전력이 있을 정도로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것도 한몫했지만 이에 불을 댕기게 된 건 불쾌한 경험 때문이었다.
작년에 이사를 하면서 전세금 때문에 대출을 추가로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당시 눔에서 나와 백수였던 이 대표가 시간이 많아 대출을 알아보기로 했다. 인터넷상에는 정보가 많지 않아 발품을 팔기 위해 은행 영업점 10곳을 찾았지만 허탕이었다. 절반은 이 대표가 직장이 없어서 상담을 해주지 않았고 그나마 상담을 한 곳도 나중에 대출 당사자인 남편이랑 오라며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사실 정보가 널려있는데도 왜 이렇게 얻기가 힘들까. ‘누구나 쉽게 발품을 팔지 않아도 정보를 모아주는 건 어떨까’하면서 그간 대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다 잡고 물어보게 됐죠”
사실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 대표 하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대부분 사업성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장기기억 속에 방치해두다가 나중에 이 대표의 기사를 보면서 무릎을 치는 정도로 끝났을 것. 사업화하는 과정에서는 이 대표의 개인기가 빛을 발했다. 호기심과 추진력. 이 대표가 학생이었다면 생활기록부에 ‘이 학생은 자기주도학습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능동적으로 답을 찾는 스타일이다.
핀다를 창업하기 위해 구상할 때도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한 사람은 누가 있을까’, ‘지금까지 안 됐다면 왜 안 됐을까’, ‘다른 나라에서는 어떠한 서비스가 있을까’, ‘관련된 규정은 무엇이 있나’, ‘무엇보다 시장성이 있는가’ 등으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을 때 방어할 수준이 될 만큼 아이템을 구체화했다.
◇ “목표나 목적만 뚜렷하면 방법은 여러 번이라도 바꿀 수 있다”
핀다는 ‘당신에게 맞는 금융상품을 1분 안에 추천드린다’는 것을 목표로 대출을 비롯해 투자, 카드 상품의 정보를 제공하고 소비자들에게 맞는 상품을 추천한다. 이를 위해 시티은행을 비롯해 삼성카드, 신한카드 등 카드사들, 루프 펀딩 등P2P(개인간 거래) 기업과 제휴를 맺고 정보를 제공받고 있다.
“처음에는 이름이 지금처럼 핀다도 아니었고 맞춤 금융상품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도 아니었어요. 사업 내용도 굉장히 많이 수정됐어요. ‘이런 서비스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투자자들과 많이 대화를 하는 편이에요. 투자자들이 안될 것 같다고 할 때도 ‘안 되는구나’하고 넘기는 게 아니라 왜 안된다고 보는지, 안되는 부분이 제 능력적인 부분인지, 시장성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를 계속 물어보고 제가 할 수 있는 형태를 찾아내요”
보통은 자존심 때문에, 지적받는 일에 익숙지 않아서, 창업자가 우유부단하게 비칠지 우려돼 완성된 상태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면 이 대표는 피드백 받는 일에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그는 “목표나 목적만 뚜렷하다면 방법을 바꾸는 일에는 주저함이 없다”며 “방법에 대해서는 피드백을 받아들이는데 방향성은 잘 바꾸지 않는다. 방향성이 확실한 부분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받는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대출을 비롯해 예·적금,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머니마켓펀드(MMF), 가상화폐 등 90개에 달하는 금융상품에 가입돼 있다. 고객에게 추천을 하기 위해서라도 무엇이든 다 해보는 편이다. 그는 “어떻게 가입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고 사람들이 왜 이런 평가를 내리는 지 직접 느껴봐요. 좋지 않다는 평이 나와도 해보죠”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자연스럽게 분산투자가 되다보니 수익률도 좋느냐고 물으니 “전 분산투자의 힘을 믿는 편이에요”라며 웃었다.
이는 그의 경영스타일이기도 하다. 사실 금융 쪽 커리어가 없다보니 스스로도 헤맬 때가 많다. 그는 “하다보면 노하우든 뭐든 방법은 생긴다”며 “리뷰나 분석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볼 때는 바로 이것저것 해본다”고 말했다. 사실 팀원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도 ‘일단 이것저것 해보자’라는 말이란다.
아직은 대출 외에는 상품을 바로 추천할 수 있는 기능은 없지만 이달부터 국내 최대 간편 송금 서비스 ‘토스’ 플랫폼에 2030 금융 소비자를 위한 신용카드 맞춤 추천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리고 있다. 토스 앱 상에 카드사용 내역이 뜨고 그 밑에 이용자가 관심 카테고리를 클릭하면 그에 맞는 카드를 추천해주는 형태다. 이는 핀다의 원천기술인 알고리즘에 따라 작동한다.
핀다는 이용자들의 자산, 금융 로드맵에서도 건강검진처럼 중간점검을 해주고 인생에 거쳐 크고 작은 케어를 해주는 게 목표다. 그는 “앞으로는 이용자들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일들이 있을 때마다 이러한 상품으로 이렇게 재테크를 했으니 이제 이러한 점들을 유의해서 다음 목표를 달성해보라 등 개인의 건강관리처럼 2030 소비자의 맞춤 관리를 맡고 싶다”며 포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