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의 한 사립대학에 자녀를 입학시킨 김모(51)씨는 딸의 등록금을 카드로 결제하려다 A사 카드가 아니면 납부가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김씨는 새로 발급받은 카드로는 한도가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냈다. 김씨는 대학마다 등록금을 납부할 수 있는 카드 종류가 다르다는 얘기를 듣고 학교 측에 문의했지만 정확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특정 신용카드사와 계약해 등록금 결제에 대한 독점권을 주는 대신 카드결제 수수료를 리베이트로 받아온 대학 100여곳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번에 적발된 대학 중에는 일부 국립대 등 전국의 상당수 대학이 포함돼 학생과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A 카드사 등 국내 대형 5개 신용카드사 법인과 계약 담당자 5명을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0일 밝혔다. 경찰은 또 이들과 계약하고 16억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받은 대학을 교육부와 금융감독원 등 관련 기관에 통보했다.
A사 등은 지난해 4월부터 B 대학 등에 결제된 등록금 2,000억원에 대한 리베이트로 총 16억원을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카드사들은 사업영역 확보 및 신규 회원 유치, 등록금 카드할부 시 발생하는 수수료 등 추가수익을 위해 대학에만 카드 수수료 반납 등의 특혜를 주는 불법 등록금 카드 수납 계약을 체결했다.
대학들은 적게는 60만원에서 많게는 1억4,000만원까지 리베이트를 받았으며 기부금이나 학교발전기금 등의 명목으로 회계처리해 교비로 사용했다. 카드사들은 감독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정상적으로 등록금 카드결제 수수료를 입금받은 뒤 각 대학별 등록금 결제 총액의 0.7∼2% 상당을 기부금으로 가장해 대학에 돌려주는 수법을 썼다.
경찰 조사 결과 신용카드사 입장에서는 대학으로부터 받은 수수료 일부를 리베이트로 되돌려주는 대신 대학생들을 잠재고객으로 유치할 수 있어 뒷거래를 유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신용카드사는 대형 가맹점과 거래하기 위해 수수료율을 낮춰주는 등 부당하게 보상금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정부는 시행령을 개정해 해당 조항을 적용받는 대형 가맹점의 기준을 전년도 매출 1,000억원 이상 법인에서 3억원 초과 개인 또는 법인으로 확대했다.
경찰 관계자는 “여신전문금융업법이 개정되기 전에 카드사들이 잠재고객 확보를 위해 관행적으로 해오던 행위를 법이 개정된 후에도 계속해왔다”며 “리베이트가 법인 계좌로 입금됐기 때문에 개인이 아닌 대학을 관계기관에 통보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다른 카드사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있는지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