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바세나르의 교훈

오철수 수석논설위원

노사정 대타협 성공하려면

정권 초부터 적극 의지 갖고

노사간 균형 잡아 주는게 중요

오철수 수석 논설위원


“앞으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제 우리의 새로운 도전은 경제에서의 민주주의입니다.”

지난 6월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광장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서 경제 민주주의를 역설했다. 부의 극심한 불평등을 바로잡지 않으면 민주주의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제시했다. 노사정 등 모든 경제 주체가 조금씩 양보하고 짐을 나눌 때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이라는 것이 문 대통령의 생각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사회적 대타협을 실현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1982년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네덜란드 병을 치유한 ‘바세나르협약’을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 뤼트 뤼버르스가 43세의 나이에 총리로 취임했던 1982년 네덜란드 경제는 거의 파산상태였다. 1970년대 과도한 복지지출과 오일쇼크 등으로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면서 투자심리는 위축됐고 거리는 실업자들로 넘쳐났다. 이때 뤼버르스 총리가 추진한 것이 바세나르협약이다. 협약은 크리스 반 빈 경제인연합회 회장과 빔 콕 노총 대표 간의 회동을 통해 타결됐지만 그 이면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있었다. 뤼버르스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노사가 임금 억제에 타협하지 않으면 정부가 개입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하고 공무원 임금부터 동결시켰다. 총리의 압박에 눌린 노사는 타협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되는 것은 뤼버르스 총리의 균형 잡힌 행보다. 그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노사 모두로부터 양보를 얻어냈다. 노조는 임금 인상 억제에 동의했고 사측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결국 총리가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취임 초기부터 균형 잡힌 자세로 노사를 설득한 것이 네덜란드의 병을 치유하고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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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사회 대타협을 보면 다소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바세나르협약에서 보듯이 주요 개혁은 정권에 힘이 있는 시기인 집권 1년 이내에 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특히 5년 단임 대통령제인 우리나라의 권력 구도에서는 뒤로 갈수록 정책 추진력이 떨어진 사례를 우리는 무수히 봐왔다. 문 대통령은 6월22일 일자리위원회를 처음 주재하면서 양대 노총을 향해 “노동계를 대접할 테니 1년만 시간을 달라”고 호소했다. 1년 뒤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지금처럼 고공행진 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도 1년 뒤를 기약한다는 것은 자칫 사회적 대타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노사정 대타협에 성공한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 첫해인 1988년 초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낸 것도 처음부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정부의 스탠스다. 친노동계 성향의 새 정부가 들어선 후 노조 측은 정권 창출에 힘을 보탰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놓으라고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잔뜩 주눅이 들어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노동계 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여기에 양쪽을 조율해야 할 정부는 노동계 달래기에 여념이 없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최저임금 인상 등 최근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은 온통 노동계에 힘을 실어주는 내용뿐이다. 기업들이 신명 나게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상태에서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산 측면에서 경제는 노사라는 두 날개로 난다. 만일 두 날개 가운데 어느 한쪽이 원활하게 펴지지 않으면 경제는 제대로 굴러갈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과거 김대중 정부에서처럼 노사정 대타협을 이뤄내려면 한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바로잡아 줘야 한다. 정부의 균형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노사정 대타협은 성공하기 힘든 법이다. /csoh@sedaily.com

오철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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