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법적 지위 불안했던 공론화委..."석달내 결론은 애당초 무리"

법정기구 원자력안전委 결정

공론화委서 뒤집을 근거없어

佛서도 원전 비중축소 법안

공공 토론에만 8개월 걸려

"빠듯한 일정에 예고된 수순"



탈(脫)원전을 놓고 벌어진 사회적 갈등을 공론 조사 방식으로 풀겠다는 목적으로 출범한 공론화위원회가 도리어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불안한 법적 지위뿐 아니라 3개월간 위원회 구성부터 공공토론, 최종보고서 작성까지 끝내야 하는 빠듯한 일정 탓에 예고됐던 전철을 밟았다는 평가도 있다. 더욱이 신고리 5·6호기 일시 건설 중단으로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고 있어 기간을 늘려 잡을 수도 없어 향후 3개월간 이런 양상은 반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론화위는 지난 27일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를 하게 될지 안 할지는 우리 위원회가, 또는 조사 대상자들이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는 지난달 말 시민 배심원단을 꾸려 신고리 5·6호기의 존폐를 결정하겠다는 정부의 발표와는 달랐다. 혼란이 커지자 청와대는 28일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에 대한 공론화위의 어떤 결정이 나오든 청와대는 그 결정에 따를 것”이라고 했다. 논란을 조기에 진화하겠다는 의도다.

전문가들은 예상된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무엇보다도 공론화위가 신고리 5·6호기의 운명을 결정한 법적 근거가 없다. 공론화위는 이달 17일 제정된 국무총리 훈령을 근거로 24일 출범했다. 하지만 훈령에는 공론화위가 ‘공론화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한다’는 포괄적 규정만 있을 뿐 시민 배심원단의 결정이 어떤 법적 지위를 갖는지에 대한 규정이 없다. 법정 기구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기존 결정을 번복할 법적 근거가 없는 셈이다. 공론화위가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권고’ 수준으로 역할을 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공론화위를 법정 기구로 둔 선진국에서도 공공토론의 결과가 법적 구속력을 갖지는 않는다. 1995년 바르니에 법을 제정해 독립 행정기관인 ‘국가공공토론위원회(CNDP)’를 운영하고 있는 프랑스에서도 공론화위의 역할은 권고에 그친다. 판단의 주체는 해당 사업자이거나 혹은 정책당국이다. 공론화위가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면피용’ 아니냐는 비판의 근거가 되는 이유다. 국민의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결국 정부는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공론화위를 구성해 원전 건설 중단 여부 결정의 책임만 떠넘기려 했던 것”이라며 “시민들이 참여해 의견을 모으니 민주적인 결정 방식이라고 여론전을 펼쳤지만 명분을 만들기 위한 위원회 구성에 불과했다”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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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또 있다. 공론화위 구성부터 공공토론, 최종보고서 작성까지 불과 3개월의 시한만 주어졌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CNDP가 특정 사회적 갈등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토론특별위원회(CPDP)’를 구성하는 데만 4개월을 쓴다. 특별위가 구성된 후 길게는 6개월 동안 공공토론 준비를 하고 최장 4개월 동안 공공토론이 벌어진다. 필요할 경우 2개월을 연장한다. 더 나아가 최종보고서 작성에 주어지는 시간도 2개월에 달한다. 길게는 18개월의 충분한 시간을 주는 셈이다. 실제 2012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이 공약을 통해 원전 비중을 줄이겠다고 약속하면서 불거진 ‘에너지 전환’ 법안은 로드맵 마련에서 최종보고서까지 정확히 1년의 기간이 걸렸다. 공식적인 공공토론에만 8개월가량이 소요됐다.

정부도 공론화에 얼마나 많은 준비와 시간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다. 2012년 정부가 마련했다 폐기된 ‘국가공론화위원회’ 법안도 공공토론의 기간만 6개월로 잡고 있다. 정부는 다만 신고리 5·6호기는 일시 건설 중단으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최대한 빨리 결론을 내리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건설 공정이 멈춰 있는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결론을 내리는 게 맞다”고 말했다. 결국 남은 공론화 기간에 혼란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계의 한 전문가는 “공론화 계획 자체가 급조됐고 경험이나 이론적 배경도 없다 보니 시행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잘 대처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일정이 빠듯한 만큼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김상훈기자 류호기자 ksh25th@sedaily.com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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