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미술관에 들어온 거미 '공존의 사회' 그리다

[토마스 사라세노 개인전]

거미줄과 9개의 거대한 구

우주·미래도시 관계망 표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내년 3월25일까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한창인 토마스 사라세노의 ‘행성 그 사이의 우리’ 전시 전경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한창인 토마스 사라세노의 ‘행성 그 사이의 우리’ 전시 전경


미술관에 거미가 들어왔다. 아래가 뚫린 투명한 유리 상자 속에 들어있는 거미는 스피커에서 퉁퉁 터져 나오는 저주파 음에 따라 거미줄을 짓고 있다. 보다 정확히는 스피커가 울릴 때 미세하게 풀썩이는 먼지의 양·크기·속도가 알고리즘을 통해 소리와 진동으로 전환돼 거미를 자극하고, 거미는 그에 반응하듯 집을 짓는다. 2,317㎡에 달하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복합 1관은 가뜩이나 넓고 유난히 검고 어두워, 거미는 마치 광활한 우주 속을 살아가는 생명체 마냥 미미하다. 대신 거미가 움직이는 궤적은 맞은편 검은 스크린에 형광 파란색으로 거대한 선드로잉을 그려간다. 허블망원경으로 촬영한 우주먼지가 꼭 이런 거미줄 모양이라 하니 신비감은 더 증폭한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토마스 사라세노의 개인전 ‘행성 그 사이의 우리’ 중 실제 거미가 집을 짓는 모습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토마스 사라세노의 개인전 ‘행성 그 사이의 우리’ 중 실제 거미가 집을 짓는 모습


미술과 건축, 자연과학을 넘나들며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를 연구하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세계적 작가 토마스 사라세노(44)의 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신작 커미션 개인전이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김성원 아시아문화원 전시사업본부 예술감독이 기획했다.


스스로 ‘거미와 사랑에 빠졌다’고 하는 작가는 환경문제를 극복하고 인류가 살아갈 미래도시, 인간중심의 사고로 전개된 근대를 탈피해 인간 아닌 생물체 모두가 공존하는 사회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거미를 수집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벌써 10년째, 12개 거미종이 만든 300개 거미망을 연구실에 소장하고 있는 ‘괴짜’ 예술가다. 작가는 “거미줄이 아름답지만 그 생성 원리가 더 매혹적”이라며 “특히 거미의 사회성으로 접근하면 하나의 거미줄 안에서 여러 거미들이 살거나, 우두머리 기질이 있는 거미가 지배적 거미줄을 치면 식민 경향이 있는 거미들이 그 아래에 자리를 잡아 상생하는 거미종도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거미가 집짓는 방식과 이주행태가 인간과 닮은 면이 있고 거미줄을 통해 어떻게 관계망을 형성하는지 볼 수 있다”면서 “거미줄의 움직임, 스크린의 궤적을 보며 어디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소통과 관계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토마스 사라세노가 설치한 유리상자 속 거미가 집을 짓는 궤적은 맞은편 검은 스크린에 거대한 그림으로 투사된다.토마스 사라세노가 설치한 유리상자 속 거미가 집을 짓는 궤적은 맞은편 검은 스크린에 거대한 그림으로 투사된다.


거미는 관객을 놀라게 하지만, 시선을 압도하는 건 9개의 거대한 구(球)다. 사라세노는 화석원료를 사용않고 공기·태양열·바람으로만 날아다닐 수 있는 일종의 열기구 ‘에어로센(Aerocene)’를 고안했다. 나사(NASA),프랑스우주항공국 등과 협력해 제작한 이 에어로센을 백팩에 넣고 다니다 원하는 순간 공기를 집어넣으면 바람을 따라 옮겨다닐 수 있는데, 이를 이용해 7명이 멕시코에서 2시간 15분간 하늘을 날아다닌 기록도 있다. 작가는 에어로센을 기반으로 사람들이 부유하며 살아가는, 땅이 아닌 구름 위를 돌며 살아가는 ‘클라우드 시티’를 미래도시로 제안한다. 전시장을 꽉 채운 9개의 둥근 풍선은 태양계의 아홉 행성을 은유한다.

관객에게 우주 한복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듯한 경험을 주는 전시장을 가리키며 작가는 “거미와 먼지라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존재를 각각의 행성 요소로 인식하게 하면서 얼마나 우리가 인간과 다른 종의 언어를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면서 대화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져본 것”이라며 “나는 미래를 밝게 보지만 그저 꿈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에 이것을 어떻게 구현할까를 투쟁하듯 고민해야 할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25일까지.

/광주=글·사진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한창인 토마스 사라세노의 개인전 ‘행성 그 사이의 우리’ 전시전경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한창인 토마스 사라세노의 개인전 ‘행성 그 사이의 우리’ 전시전경


조상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