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스페인 보물선을 찾아라



1715년 7월 31일 새벽의 어둠에 잠긴 카리브 해. 폭풍우와 사투를 벌이던 스페인 선단 11척이 가라앉았다. 초대형 허리케인이 선단을 덮친 것이다. 스페인 선단이 쿠바 아바나 항구를 출항한 일주일 전, 바다는 잔잔해서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출항 닷새째부터 강풍과 격랑, 폭우를 만났다. 선원들은 필사적으로 인근 육지로의 접안을 시도했으나 결국은 암초와 높은 파도에 바다로 빨려 들어갔다. 선원 1,500여 명은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12척 선단 가운데 오직 한 척만 살아남아 비보를 전했을 뿐이다.

스페인 선단은 왜 태풍의 계절에 항해를 강행했을까. 여느 때와 달리 급하게 선단을 꾸려 바다에 나선 이유는 본국의 재촉 때문. 스페인 왕위계승전쟁(1701~1714년)으로 돈이 궁해진 왕실은 중남미 식민지에 금과 은을 보내라고 성화를 부렸다. 결국 각종 보물과 남미에서 주조한 금화, 은화를 가득 실은 채 선단은 스페인을 향해 떠날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 보물선단은 위험한 카리브 해 지역을 빨리 벗어나지 않았다. 다른 스페인 선단과 합류하기 위해서다. 대서양 한복판에서 해적선과 맞닥뜨릴 경우에 대비, 선단의 규모를 불린다는 게 화를 부른 셈이다.

구명보트를 타고 오늘날 케이프커내버럴 우주기지 부근의 뭍에 오른 선원들을 침몰 지점에 대한 기록부터 남겼다. 살아남은 단 한 척에게 난파 소식을 들은 인근의 스페인 사람들은 배 여덟 척을 몰고 와 목책을 세우고 창고를 지었다. 암초에 부서진 배들을 뒤져 금은보화를 되찾기 위해서다. 스페인 선원들은 독사와 모기,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4년 동안 바다를 뒤져 은화 500만 개를 비롯해 각종 보물을 찾아냈다. 적하목록에 오른 1,400만 페소 어치의 보물 가운데 절반가량을 건져 올린 것이다. 영국 해적들도 스페인 목책을 기습해 35만 페소가량의 은화를 약탈해갔다.


시기를 잘못 만났어도 스페인 보물선단의 당시 항로는 유럽 선박들이 귀환하는 일반적인 코스였다. 쿠바 아바나에서 멕시코 만류를 따라 북동쪽으로 올라가 영국의 북미 식민지 남단 앞바다에 이르면 무역풍을 등에 업고 유럽으로 빠르게 항진할 수 있었다. 수없이 많은 선박이 오가는 뱃길이어서 침몰하는 배도 많았다. 예고 없이 만나는 허리케인과 암초 때문에 지금까지 이 해역에서 침몰한 유럽 선박이 2,000척에 달한다는 추정도 있다. 선박뿐 아니라 항공기까지 사라진다는 버뮤다 ‘마의 삼각지대’와도 구역이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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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침몰 선박에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인양업자가 따라붙기 마련. 스페인이 철수한 뒤에도 사람들은 더욱 많은 보물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바닷속을 뒤졌으나 귀금속과 은화는 더 나오지 않았다. ‘스페인 보물 선단’ 얘기도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사라져갔다. 스페인 보물선단이 다시금 주목받은 것은 2차 대전 직후부터. 민간에게 대량 불하된 군수물자인 금속탐지기를 이용해 해안에서 금화와 은화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15 달러면 살 수 있었던 금속 탐지기를 들고 무작정 해안가에 나섰던 사람들과 달리 치밀하게 준비한 보물 사냥꾼도 있었다.

미국인 와그너는 10년 동안 도서관에서 옛 문헌을 뒤지고 비행기를 동원해 암초 사이에서 난파선을 찾아냈다. 1959년부터 3년간 500만 달러 상당의 금화와 은화, 중국산 도자기를 건져 올렸다. 2015년에도 브렌트 브리즈번의 가족이 450만 달러에 이르는 보물을 추가로 찾아내 주목받았다. 요즘에도 주변 해안가에는 보물 사냥에 나서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바다 속 보물 건지기’는 돈벌이가 될까. 지구의 바닷속에 잠긴 보물이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러일전쟁 당시 독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러시아 전함 돈스코이호에 실림 금괴만 수백 조원에 이른다는 추정이 있으나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침몰선박의 도자기나 공예품 같이 가격을 책정할 수 있는 보물을 제외한 금과 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적게는 25억 달러부터 많게는 6,000억 달러까지 제각각이다. 이제 발견하거나 발굴할 것은 다 찾아냈기에 더 이상 보물선으로 횡재하기란 더욱 어려워 보인다. 스페인 보물선단을 찾아내 일확천금의 꿈을 이룬 와그너가 보물 사냥꾼들에게 들려준 한마디. ‘어떤 경우든 보물선을 찾으려는 노력과 땀ㆍ세월을 다른 곳에 투자한다면 훨씬 더 성공할 것이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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