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피로회복제’로 불리는 동아제약 ‘박카스’가 누적 판매량 200억병의 대기록을 달성한다. 일렬로 세우면 지구를 60바퀴 휘감을 수 있는 양이다. 120년 국내 제약산업 사상 단일 브랜드로 200억병을 넘어서는 것은 박카스가 처음이다.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박카스의 누적 판매량이 이르면 이번 주 200억병을 돌파한다. 1963년 드링크제로 형태를 바꿔 출시한 지 54년 만이자 1997년 누적 판매량 100억병을 달성한 뒤 20년 만이다. 국내에서 단일 브랜드로 200억개 이상 팔린 제품은 야쿠르트(480억개)·하이트(350억병)·신라면(295억봉)·참이슬(285억병)·초코파이(220억봉) 5종에 불과하다.
박카스의 역사는 19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은 한국인을 위한 자양강장제를 개발했지만 제품명을 정하지 못해 고민에 빠졌다. 문득 독일 유학 시절 함부르크 시청 지하에서 봤던 술의 신 ‘바커스’(Bacchus) 석상이 떠올랐고 우리말로 발음하기 편한 박카스로 이름을 지었다. 첫 제품은 알약(정제)이었다.
알약 박카스는 출시와 함께 돌풍을 일으켰다. 약국에서 100정 포장 단위로 판매했는데 한 달 만에 1만개가 넘게 팔리며 품절 사태까지 빚었다. 그러나 날씨가 더워지자 알약의 외부를 감싸는 껍질(당의)이 녹는 문제가 발생했다. 대량 반품 사태가 발생하며 위기가 찾아왔다. 동아제약은 이듬해 작은 유리병 안에 용액을 넣은 앰플 형태의 제품으로 박카스를 새로 선보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운송 중 용기가 깨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절치부심 끝에 1963년 지금과 같은 드링크 형태의 박카스를 출시했다.
마케팅 전략도 파격과 혁신의 연속이었다. 새 박카스를 출시하면서 대량생산·대량광고·대량판매 전략을 내세웠다. 의사와 약사를 겨냥했던 기존 광고에서 벗어나 TV·라디오·신문·잡지·옥외광고 등을 총동원했고 ‘활력을 마시자’라는 광고 문구로 차별화를 선언했다. 1963년 월평균 35만병 수준이던 판매량이 이듬해 56만병으로 급증하면서 단숨에 동아제약의 간판 제품으로 우뚝 섰다.
우여곡절과 위기도 많았다. 1976년 정부가 ‘카페인 오남용 우려’를 이유로 자양강장제 대중광고를 금지했다. 17년 후인 1993년 규제가 풀리기는 했지만 이 여파로 박카스 매출은 제자리를 걸었다. 1989년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단맛을 내는 용도로 쓰이는 사카린을 발암물질로 규정하면서 시련을 맞았다. 사카린의 유해성은 훗날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동아제약은 박카스에 들어가는 사카린을 천연감미료인 스테비오사이드로 대체하며 위기를 벗어났다.
2000년대 들어서도 위기는 이어졌다. 2001년 광동제약(009290)이 비타민음료 ‘비타500’을 출시하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동시에 ‘레드불’ ‘핫식스’ 등 에너지 드링크가 젊은 세대의 폭발적 관심을 받으면서 박카스의 아성을 위협했다. 경쟁사들의 공세로 한때 박카스의 연간 판매량은 5억병에서 3억5,000만병 수준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동아제약은 지도에 없는 길에 또 나섰다. 2011년 박카스를 일반의약품에서 의약외품으로 전격 변경하고 약국에 이어 편의점과 마트로 판로를 넓혔다. 약국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약국(박카스D)과 편의점·마트(박카스F)를 공략하는 ‘이원화 전략’으로 박카스 신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푼다’ ‘젊음, 지킬 것은 지킨다’ ‘진짜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있습니다’ 등 한국인의 일상을 섬세하게 파고든 광고 문구 역시 누적 판매량 200억병을 이끈 주역으로 꼽힌다.
박카스는 ‘수출 효자’ 노릇도 톡톡히 하고 있다. 1981년부터 수출길에 나섰다. 현재 진출 국가는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유럽·아시아·아프리카 등 40개국이 넘고 수출액도 지난해 600억원을 훌쩍 넘었다.
박카스는 2014년 연매출 2,000억원을 돌파하며 명실상부한 국내 제약사 1위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연간 판매량은 5억병 내외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고 누적 매출액도 4조5,000억원을 넘어섰다. 1897년 국내 1호 의약품으로 출시된 동화약품(000020) ‘활명수’의 120년 누적 판매량이 85억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박카스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