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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초점] “탈출 액션, 국뽕 경계”…‘군함도’에 화난 사람들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몰고 다니더니, 개봉 후에는 더 큰 화제의 중심에 섰다. 영화 ‘군함도’(감독 류승완) 이야기다. 개봉 후 일주일이 지났건만 뜨거운 관심은 당분간 꺼지지 않을 듯하다. 최단 기간 400만 관객을 돌파했음에도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하게 나뉘었기 때문이다.

대형 배급사의 스크린 독점이라는 작품 외적 논란은 접어 둔다고 해도, 내용면에서 분노를 터트리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영화의 무엇을 보고 이다지도 쓴 소리를 늘어놓는 것일까. 우선,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의견이 가장 크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사진=CJ엔터테인먼트


짚고 넘어가자면, 사실 ‘상업성’은 제작 단계부터 예견된 일이다. ‘군함도’는 올 여름 대표적인 텐트폴 영화다. 순 제작비만 220억이 넘게 투자된 데다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등 걸출한 배우들이 출연했다. 손익분기점이 천만 명이라는 진담 섞인 우스갯소리도 줄곧 들렸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모든 기대엔 군함도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가 내재돼 있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기다린 것은 전쟁 영화의 블록버스터적 재미가 아니었다. 가해자는 덮어두려 하는, 그러나 생존자가 남아있는, 아직 100년도 되지 않은 역사를 보여주기 바랐다.

‘군함도’는 일제 강점기 일본 하시마 섬(군함 모양을 닮아 군함도라고 불림)에 강제 징용된 후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실제로도 800여 명의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이 해저 1000m에서 하루 최대 16시간의 노동을 했고, 100명 넘게 사망했다.

그런 만큼 영화 초반부에는 당시 조선인들의 실상을 묘사하려는 노력이 조금이나마 엿보였다. 강제로 끌려와서 맨몸이나 다름없는 복장으로 석탄을 캐고, 채찍을 맞고, 열악한 숙소에서 자고, 벌레가 기어 다니는 밥을 먹고. 여자들은 위안부로 끌려가고.

중반부를 넘으면서부터는 탈출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에 더욱 초점이 맞춰진다. 강제 징용된 이들이 겪었던 비참함보다는 탈출 과정에서의 긴박함과 긴장감을 전하는데 비중을 둔 것이다. 그런데 이 대규모 탈출, 역사에는 없던 일이다.

류승완 감독은 쇼케이스에서 “400여 명이 집단 탈출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부분적으로 탈출 시도가 있었고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지만 대규모 시도나 성공 사례는 없다. 그럼에도 군함도에 있던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고 싶었을 것 같았다”고 영화 속 탈출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러나 상상력을 덧붙이더라도 본질은 흐리지 않아야 한다. 역사에는 없는, 대규모 탈출을 준비하는 영화 속 조선인들의 처지는 실제보다 나아보이도록 왜곡됐다. 탈출하는 과정 또한 치열한 액션장면 중 하나가 됐을 뿐 별다른 의의를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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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유시진 대위’가 적진에 침투해 ‘슈퍼맨 아빠’와 작전을 세우고 배신자를 가려낸 뒤 ‘촛불 든 시민’을 탈출시키는 영화가 됐다. 배경이 반드시 군함도여야만 하는 이유가 없다. 한국사강사 최태성이 역사영화가 아닌 블록버스터급 탈출영화라고 평한 것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사진=CJ엔터테인먼트


군함도는 MBC ‘무한도전’ 등 방송을 통해 최근에서야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아픔의 역사다. 강제 징용되던 슬픔, 핍박받던 처절함, 조국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 군함도 자체만으로도 풀 수 있는 서사가 많은데 탈출을 바탕으로 한 액션영화로 남게 된 점이 아쉽다.

영화적 장치뿐만 아니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류 감독은 역사를 이용해 선동하는 영화처럼 보이지 않게 주의를 기울였다고 밝힌 바 있다. 조선인뿐만 아니라 일본인도 전쟁에 의한 피해자가 될 수 있으므로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겠다고 했다.

국내 영화의 특징 중 하나로 꼽히는 ‘국뽕’을 경계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일까, 영화에는 착한 조선인은 물론 나쁜 조선인도 등장한다. 같은 조선인을 혹독하게 다루고 탈출을 막는 조선인 관리자, 같은 조선인을 위안부로 넘기거나 배신하는 또 다른 조선인 등이다.

전쟁 상황 속 인간 군상을 입체적으로 그리고자 한 것일까. 그러나 감독의 의도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기엔 ‘군함도’가 역사를 기반으로 했다는 것이 걸림돌이 된다. 영화 속 친일 행위자들은 허구의 인물이다. 이들을 굳이 ‘군함도’에 등장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우리 역사 속에 친일파는 분명 존재했다. 그들에 대한 고발과 반성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꼭 ‘군함도’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상의 친일파를 등장시켜 조선인들 사이에 대립구조를 만듦으로써, 실재했던 일본인의 악행은 상대적으로 흐려지게 됐다.

물론 ‘군함도’는 자칫하면 또 다시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수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되새기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군함도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알려야 한다”는 권고를 따르지 않는 일본에게 자극을 주기도 했다.

결국, 아쉬움의 분노다. 역사를 감추고 싶어서 화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강제 징용의 역사가 진정으로 조명되기 원했다. 유명한 감독과 배우가 참여하고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이니만큼 기대도 컸을 터.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감독이 지향한 가치와 관객의 기대 사이에 벌어진 간극이 안타깝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양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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